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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책동네 산책]전자출판시대의 편집자

아카넷이 번역출간한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의 맨 앞에는 아래 글에서도 인용한 것처럼 매우 재미난 편집자의 서문이 달려 있다. 당시는 내가 출판담당을 하기 전이었고, 출판 편집자라는 사람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매우 인상깊게 남아 있었고, 출판담당을 하고 난 뒤 편집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얘길 몇번 꺼낸 적이 있었다. 아래 글을 쓰려고 책을 다시 꺼내서 편집자 서문을 훑어봤는데 다시 봐도 역시 흥미진진했다.

[책동네 산책]전자출판시대의 편집자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 10점
이사야 벌린 지음, 박동천 옮김/아카넷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박동천 옮김, 아카넷)을 책장 한구석에서 다시 꺼내볼 생각을 한 것은 알고 지내는 출판 편집자가 얼마 전 술자리에서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날 어느 작가와의 출판계약을 해지했다고 말했다. 꽤 유명한 그 작가는 신인이나 다름없었던 10년 전 책을 한 권 내기로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원고가 나오지 않았다. 지루한 줄다리기와 신경전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 사이 작가는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몇 권 냈다. 편집자는 자신이 입사하기도 전에 맺어진 계약이었지만 마지막으로 강하게 채근한다는 차원에서 계약 해지를 언급했더니 당장 그러자는 답변이 왔다고 말했다. 작가는 10년 전 받은 계약금을 출판사 계좌에 입금하고 나서 “이자를 쳐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편집자는 작가에게 화를 내거나 흉을 보지 않았다. 진심으로 아쉽고 씁쓸한 표정이었다.

소주 한잔을 권하면서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 얘기를 꺼냈다. 국내에 <자유론>이라는 제목으로 2006년 출간된 벌린의 책은 1969년 처음 나온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을 기반으로 하는데 2002년 수정증보판을 번역했다. 벌린 얘길 꺼낸 것은 자유에 관해 그가 내세운 유명한 개념인 소극적 자유·적극적 자유를 논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벌린 사후에 나온 <자유론>의 맨 앞에 편집자 헨리 하디의 글이 실렸는데, 이 글은 편집자의 숙명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하디는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이 나오기까지의 지리한 우여곡절을 자세하게 밝혔다. 1909년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벌린은 그의 가족이 러시아를 거쳐 영국으로 이주했는데 옥스포드에서 교육을 받았고 옥스포드의 교수가 됐다. 그는 울프선 칼리지 초대 학장, 영국 학술원 회장 등 학자로서 성공한 삶을 살다가 1997년 작고했다. 벌린이 자신의 저술에 대해 보인 극도의 엄밀성과 게으름은 출판사와 편집자들을 괴롭혔다. 벌린을 사사했고 벌린의 저술에 관한 위탁관리자 가운데 한 명인 하디는 “옥스포드대학 출판사에 보관돼 있는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에 관한 자료철은 좌절, 오해, 이중적 화법, 우유부단, 변덕, 비현실적 기대 등으로 가득 차 있는 비화의 보고와 같다”고 말했다.

논문을 모아 단행본을 내자는 아이디어가 벌린과 출판사 사이에서 1953년 거론되기 시작한 이래 16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야 책이 나왔다. 지연과 독촉, 태만과 읍소, 사과와 협박 등은 저자와 출판사 사이에서 으레 오가는 것이지만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의 경우 상상을 초월한다. 벌린은 서문을 보내놓고 철회하기가 다반사였다. 이미 인쇄기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책의 편제를 바꿔달라고 할 정도였다.

전자책 시대, 자가출판(self-publishing) 시대가 목전에 도래하면서 출판 편집자의 역할과 영역이 좁아지거나 재조정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매체의 성격이 달라지므로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작가 뒤에서 대작 또는 명작의 탄생을 돕고 지휘하는 편집자의 역할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고집불통, 때로는 응석받이 같은 저자 벌린을 편집자들이 인내하면서 적절하게 컨트롤했기에 자유주의의 현대적 고전으로 평가받는 <자유에 관한 네 편의 논문>이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2010.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