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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장을 다녀온지 1주일이 넘었는데 아직도 출판계 인사들을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할때면 '프랑크푸르트 잘 다녀왔느냐'는 인사를 받곤 한다. 출판담당 기자에게 해외 출장은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기회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작년에 이어 두번째 가봤다. 솔직히 지난해엔 정신이 없어 뭐가 뭔지 모른채 지나갔다. 그래도 어찌하다보니 라인강변의 뤼더스하임과 그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구텐베르크 박물관이 있는 마인츠를 다녀오기도 했다.

올해는 하루가 온전히 비기에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고 싶었고, 거금의 고속철(ICE) 티켓값을 주고 프라이부르크엘 다녀왔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우연히 발견한 서점에서 남은 상념으로 지난주 '책동네 산책'을 꾸밈으로써 2010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갈무리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출판문화>에 참관기를 써서 보냈는데 그건 조금 이따 나올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번 독일 출장에서 결심한 게 좀 엉뚱하지만 똑딱이보다 윗 수준의 카메라를 사고, 사진촬영을 배우자는 것이다. 아이를 낳을 즈음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사서 좀 찍어 봤지만, 이내 귀차니즘이 발동하면서 '관광지 인증샷' 수준의 촬영실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출장에서 정말 마음에 쏙 드는 풍경들을 발견하고도 그림으로 담아내지 못한다거나, 기사용으로 쓸 요량으로 찍은 사진들이 목불인견의 수준으로 찍혔음을 확인하고서는 제발 그놈의 '귀차니즘'을 좀 벗어나서 사진에 관심 좀 가지자는 결심을 굳혔다. 이런 구차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것은 나름 건질만 하다고 생각해 여기에 올리는 사진들을 보고 야유하지 말아주십사 하는 취지에서다.

[책동네 산책]서점도 사라지기에 아름다운가

“아빠, 오늘 주문했어요?” “응.” “언제 온대요?”

퇴근해서 신발을 벗기도 전에 아들 녀석이 채근이다. 요즘 부쩍 학습만화에 빠져 있는 녀석은 2010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출장을 다녀온 아빠가 변변한 선물을 사오지 않은 것을 빌미로 자기가 심취해 있는 시리즈의 신간을 사준다는 약속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2004년에 태어난 녀석에게 책이란 엄마·아빠가 인터넷에 들어가 주문하면 하루나 이틀쯤 지난 뒤 택배 아저씨가 배달해주는 것이다. 시내의 무지하게 큰 ‘책방’에 나들이 가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주 가끔이다.

나의 부모에겐 일상이었지만 내겐 생소한 대상이 한둘이 아니듯, 나에게 익숙했던 것들 가운데 나의 아들에게 낯설게 다가갈 것들도 많을 것이다. 그 목록의 윗부분에 올라 있는 것 하나가 바로 ‘서점’이다. 물론 소비자에게 책을 공급하는 서점의 역할은 책이 존재하는 한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규모로 치자면 소형서점, 영업 방식으로 보자면 ‘오프라인 서점’의 입지가 좁아지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진다.

지난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것은 도서전 개막 이틀 전 오후였다. 하루가 온전히 비는 스케줄이었다. 그래서 독일에서 유학했던 지인이 추천한 프라이부르크란 곳엘 다녀왔다. 독일 남부의 고풍스러운 대학도시이자 환경도시다. 프라이부르크 대학은 막스 베버, 마르틴 하이데거, 에드문트 후세를, 한나 아렌트, 게오르그 가다머, 프리드리히 하이예크 등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배우거나 가르친 곳이란다.

프라이부르크 대학에 들렀다가 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골목길을 배회했다. 예쁜 가게를 하나 발견했다. 널찍한 통유리 진열장 안쪽에 진열된 책들이 그곳이 서점임을 알려줬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클래식 음악이 나지막하게 흐르고 주인인 듯한 중년의 남자는 다른 남자와 뭔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3년씩이나 배웠지만 ‘데어(der), 데스(des), 뎀(dem), 덴(den)’ 하는 관사만 몇 개 기억날 뿐 머릿속에서 독일어 단어들이 깔끔하게 지워지는 신비한 체험을 한 터라 서가에 꽂힌 책을 꺼내볼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예쁘게 진열된 책들은 대체로 철학서이거나 괴테 등의 고전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는 질문에 흔쾌히 허락이 돌아왔지만 형편없는 촬영 실력에다 저렴한 똑딱이 카메라가 겹쳐 제대로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저인망식으로 셔터를 눌러대다 보니 불현듯 코끝이 매워졌다. 대형서점, 인터넷 서점의 시대에 동네서점, 오프라인 서점으로 고상하게 남아 있는 모습이 감동스러워서였을까? 아무래도 그 모습이 생동감 넘치는 청년이라기보다는 노인의 허세, 골동품스러운 창백함으로 비쳤기 때문일까? 주인장은 동양인 관광객이 갑자기 서가 앞에서 눈을 자꾸만 깜빡인 것을 눈치챘을까? ‘모든 사라지는 것은 아름답다’고 했다지만 그날 나의 감정은 분명 ‘오버’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초점이 맞지 않거나 노출 조절에 실패해 볼품없게 찍힌 그 서점의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샘이 자꾸만 주책을 부린다.

참고로 그 서점의 이름은 ‘Buchhandlung zum Wetzstein’인데 인터넷 번역기에 돌리니 ‘숫돌서점’이라는 뜻으로 나온다. 농부와 푸줏간 주인이 숫돌에 연장을 가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듯 정신을 벼리게 해주는 숫돌 같은 서점이라는 뜻이 담겼단다. (2010.10.16)

'숫돌서점'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독일어를 모르기 때문에 프라이부르크를 방문지로 추천해주신 분에게 구글링을 부탁했더니 몇가지 정보를 알려주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표방하는 이 서점은 독일에 20군데가 있는데 한 출판사 설립자가 만들었다고 한다. 이 출판사 이름은 일러줬지만 뜻을 모르니 까먹었다. 그런데 이 출판사는 정장, 즉 표지나 제본 등이 매우 고급스럽고 예술적인 책을 내는 곳으로 유명하단다. 숫돌서점에 예쁜 책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띈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베스트셀러나 이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판단하는 좋은 책만 취급하는 방침으로 운영되는 것은 물론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듯 철학과 고전 위주다.

이미 써갈긴 글에 내비친 감정에 대해 덧붙인다는게 좀 구질구질하게 여겨지지만 조금 더 설명하고픈 욕심이 든다. 그 서점은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실용적인 면에서는 뒤쳐지는 것으로 보였고, 모든 서점이 다 숫돌서점처럼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터이다. 출판계가 어렵지 않다고 했던 적은 한번도 없다지만 올가을은 정말 최악이라는 겁에 질린 이야기들을 곧잘 듣는다. 특히 서점들의 타격이 극심해서 지역의 오래된 거점 서점들은 휙휙 나가떨어지고 있단다. 그들에게 숫돌서점처럼 하라는 얘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숫돌서점처럼 하지 않으면 오프라인 서점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모두가 숫돌서점처럼 될 수도 없고 숫돌서점처럼 된다한들 얼마나 대중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느꼈던 것은 것은 이런 아이러니였다. 헌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꿋꿋하게 버텨내고 있는 전국의 오프라인 소형 서점들(1200개 정도가 영업중이라고 한다)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것 같아 찔리기도 한다. 맥락을 봐주십사 하는 수밖에.
 
독일에서 유학했거나 독일을 관광한 한국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았을텐데 인터넷에서 이 서점에 관한 한국어로 된 글은 단 한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좀 의아한 일이다. 심지어 프라이부르크 관광을 추천해주신 분도 자신이 그곳에 6개월간 머문 적이 있지만 숫돌서점은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뭐, 이렇게 말하니까 대단한 것을 보고온양 호들감을 떠는 것처럼 들리는데, 여행지에서의 감상은 사람에 따라 다르니까 딴사람에게 강요할 일은 아니다. 여하튼 숫돌서점은 예쁜 서점의 대명사로 내 마음엔 오래 남을 것 같다.



밖에서 본 숫돌서점의 모습. 서점 앞 길바닥에 전차 궤도가 보인다.


입구로 들어가는 통로의 전시대. 오른쪽 문이 출입구다.

<이하는 '숫돌서점' 서가에 꼿혀있는 예쁜 책들>


 

 

 

 

 

 

 

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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