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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리뷰]연산군-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

다시 고백하지만 나는 역사책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류에 속했다. 대학, 대학원 시절까지 남는 시간-대부분의 시간은 술 먹고, 이야기하고, 놀러다니는데 쓰였다- 내 손에 들린 책들은 대체로 국내외의 소설이거나 개론서 혹은 입문서 수준의 철학서, 그리고 사회과학 책이었던 것이다.

역사는 대입시험 준비를 위한 국사공부가 안겨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분야였다. 대학원을 다니며 나름 관심이 가던 국제관계 관련 역사책들을 읽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사, 미국 안보정책의 역사를 읽다보니 냉전의 역사에 대해 다룬 책들을 읽게됐다. 이런 책들은 내가 수강하는 수업들의 보조자료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분야별 역사책들이 이런저런 연유로 내 손에 들어왔다. 특히 이 시절은 국내 출판계에서 미시사 책들이 만개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일본 근현대사라든지, 유럽사 같은 책들이 내 손을 거쳐갔고 지금도 책장에 꽂혀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역사책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닥 맞는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독서의 절대량이 부족했을뿐 내가 역사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얘기다. 이건 내가 출판담당기자를 하면서도 느낀 것이기도 하다. 그간 내가 읽고 소개를 했거나, 리뷰기사를 쓰진 못했어도 관심을 보였던 책 가운데는 역사책이 적지 않았다.

역사책을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들이 꽤 있다. 이미 유명해진 역사 분야 필자들도 많지만 신생출판사이거나 규모가 작은 출판사에게는 역사를 공부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마치 새싹과 같다. 이들이 매달리고 있는 주제들을 잘 스크린 하고 있다가 책으로 낸다. 글항아리 출판사도 신진연구자들의 책들이 좋다.

이 책 <연산군>은 3년전 '평전'으로 저자에게 제안이 들어갔던 것이라고 한다. 결과물은 본격 평전과 연구서의 중간쯤이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전공이 무엇이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여러모로 유리하다. 자신의 전공분야를 비전공자들이 알아듣기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재주는 전공분야의 내공이 깊다고 해서 그대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읽는 이로 하여금 오들오들 닭살이 돋을 정도로 짜릿한 재미를 느끼게 해줄 정도의 역사책을 쓴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경지일 것이다.


왕권과 신권의 충돌, 폭정에 빠진 연산군

연산군 - 10점
김범 지음/글항아리

‘역사학’이 단순히 옛날에 이런 사람이 살았고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기술하는 데 그치는 학문이 아니라고 할 때 역사학자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자세는 귀납적 실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연역적 추론일 것이다. 어느 시대나 인간의 행동과 선택이 그 사회의 구조를 만들고, 구조가 사람들의 행동과 선택을 구속한다. 과거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실증과 추론이 적절히 어우러져야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


연산군에 대한 평전적 연구서인 <연산군-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의 지은이 김범 박사(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모든 말과 글은 사실과 의견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대체로 의견은 여러 사실을 집적한 토대 위에서 형성되고, 그래야만 합리성과 신뢰성을 획득한다”는 말로 이 책을 시작했는데 같은 취지로 읽힌다. 연산군과 그 시대에 대한 학계의 기존 연구, 문학작품 등이 실증이 부족했거나 추론에 문제가 있었다는 문제제기에 다름 아니다.

조선왕조 27명의 국왕들 가운데 단연코 가장 드라마틱한 시대를 연출했던 제10대 연산군(1476~1506·재위 1494∼1506). 다른 왕들처럼 ‘조’나 ‘종’의 이름조차 얻지 못한 조선시대 최대의 폭군 연산군의 삶은 한 편의 그리스 비극을 연상케 한다. 익히 알 듯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는 남편, 즉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이 내린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연산군은 왕위에 오르고 난 뒤에야 생모의 죽음의 전모를 알게 된다. 연산군은 무오사화·갑자사화라는 피의 숙청을 연이어 단행했다. 국왕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러나 국왕이었기에 가능했던 사치와 엽기적인 향락을 추구했다. 결국 ‘반정’(反正·옳지 못한 임금을 폐위하고 새 임금을 세워 나라를 바로잡음)으로 폐위되자마자 병으로 죽었다.


드라마틱한 삶에 더해 성적인 방종이 주를 이루는 연산군의 향락 추구행위는 말초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훌륭한 소재다. 그래서 연산군을 다룬 소설·드라마·연극·영화가 양산됐다. 폭군 네로에 관한 문학작품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이들은 대체로 어머니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연산군의 복수심, 그로 인한 광기에 초점을 맞춘다.

학계에서는 연산군이 일으킨 대대적인 숙청인 무오사화·갑자사화가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결에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조선 건국 또는 조선 초기 정변에서 공을 세워 높은 자리를 차지한 집단이 신진 정치세력인 사림파와 충돌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조선 전기사를 전공하고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로 재직 중인 지은이는 이런 해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너무 단선적이고 도식적이라고 평가한다. 당시의 정치구도는 훈구·사림의 프레임보다는 왕권과 ‘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로 대표되는 신하들의 견제권 사이의 충돌이라는 분석틀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은이는 먼저 연산군의 학습기록과 이에 대한 당대의 평가를 통해 연산군이 이성보다는 감성이 풍부한 인물로 분석했다. 학습능력 자체가 다른 국왕에 비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어떤 사안의 인과관계나 맥락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에 결함이 있었다고 본다. 이 결함은 그가 훗날 보여준 행동에서도 유추된다. 연산군은 엄연히 다른 왕권강화와 자의적 권력행사, 개인적 욕망의 실현을 구분하지 않았다.

연산군은 자신의 불행했던 개인사 때문에 부왕과 대비에게 커다란 증오를 드러내며 부왕이 세운 정치적 정립구도에도 큰 불만을 품었다. 유흥과 여색에 대한 그의 탐닉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연산군이 각지에서 불러모은 기생집단의 하나는 ‘흥청(興淸)’이라 불렸는데, ‘흥청망청’은 이러한 연산군의 방탕함을 비꼬아 생겨난 단어다. 아래 사진은 연산군을 영화화한 <왕의 남자>의 한 장면이다.

연산군 시대의 비극은 여러모로 아버지 성종이 물려준 씨앗에서 발아했다. 성종은 연산군의 생모를 비극적으로 죽게 했다. 성종은 관료에 대한 감찰과 국왕에 대한 간언, 여러 사안에 대한 자문을 주요 임무로 하는 삼사를 육성했다. 훈구대신, 즉 개국 공신으로서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전제군주를 꿈꿨던 연산군에게 삼사는 지극히 성가시고 위협적인 존재였다. 삼사는 관료의 임용과 해임 등 인사에서부터 국왕이 공부를 게을리하는 것, 잔치를 너무 즐기고 사치를 하는 것까지 사사건건 잘못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대신들을 빈번하게 탄핵, 대신들과 삼사의 대립도 심각했다. 자연스레 국왕과 대신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한데 재밌는 건 삼사가 하도 딴죽을 걸자 연산군이 자신에게 순종적인 인물들을 삼사 고위직으로 채웠는데, 이들 역시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개인의 성향과 관계없이 삼사라는 자리가 끊임없는 견제와 문제제기를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연산군은 이런 행동을 ‘능상’(凌上·윗사람을 능멸함)이라고 부르며 불만을 표출했다. <연산군일기>에는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이래서야 어찌 국왕 노릇을 해먹겠나. 너희가 왕인지, 내가 왕인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연산군 발언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당시 상황을 현대적으로 비유하자면 국왕과 대신은 대통령과 정부·여당, 삼사는 야당 정도 되는 셈이다. 물론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대신들도 연산군의 폭정에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워지지만 이런 대립구도가 무오사화·갑자사화의 핵심이라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이 책은 연산군과 그 시대에 관한 1·2차 사료를 매우 꼼꼼하게 섭렵하고 있다. 연산군을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의 편수, 연산군 역할을 맡은 배우의 목록까지 나열했다. 최근들어 일부 역사 저술가들이 시도한 연산군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옹호에 대해서도 꼼꼼히 고찰한 뒤 반박했다. 연산군을 달리 보려는 시도는 좋지만 사료 좀 보라는 점잖은 충고가 덧붙여졌다.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극에 달하는 사치와 난잡한 행동 역시 목록으로 증명된다. 당시 국가의 일년 수입이 어느 정도였는데, 사치품을 사들이고 향락을 즐기는데 쏟아부은 재원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비교된다. 그러다보니 후주가 꽤 길어졌다. 요즘 역사책들이 너무 말랑해지면서 흐릿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역사책과 드라마의 차이는 엄연해야 한다.

지은이도 동의했듯 연산군이 ‘정상에서는 벗어난 심리와 정신상태’, 다시 말해 극도의 편집증에 빠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왕조가 시작된 지 100년쯤 지나면서 어느 정도 완성됐던 조선의 제반 체제는 공교롭게도 ‘문제적 인물’ 연산군과 만났고 산산조각으로 해체됐다. 그리고 조선왕조 최초의 반정을 통해 복구되면서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지은이는 이를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는 말로 압축했다. ‘잘 다스려 평화로운 시기와 무질서한 정치로 어지러운 세상이 반복된다’는 고전적 역사관이다. (201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