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뇌과학, 네트워크 이론, 진화론 등은 거의 매주 끊이지 않고 한두권씩이라도 책이 나오는 분야일 것이다. 한달전쯤이던가 <버트스> <호모 루두스> 등 게임이론과 복잡계 이론 등을 다룬 책들이 봇물처럼 한차례 쏟아진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번주에 읽었던 책은 김영사의 책이었는데 그러고보면 김영사에서 나온 진화론 또는 네트워크 이론 관련 책들을 꽤나 많이 접했던 것 같다. 지금 김영사라는 출판사의 이미지는 과학쪽 보다는 종합출판사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로 김영사에서 나오는 책들은 분야가 다양하다. 하지만 김영사가 보유한 과학서의 백리스트가 만만치 않다. 과학전문 출판사를 표방하고 있는 출판사들이 몇몇 있는데 여하튼 김영사는 일찍부터 '대중과학서'를 착실하게 소개해 왔다.
과거 어느 책의 리뷰기사를 쓰면서 '인문서 독자들이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저자가 칼 마르크스와 찰스 다윈이다'라고 쓴 적이 있었는데,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번쯤은 제대로 마주치는 분야가 과학서 분야다.
그냥 '과학서'라고 뭉뚱그려버리고 만다면 과학서 분야를 그만큼 접해보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과학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천문우주에서부터 지구과학, 생물학을 거쳐 과학철학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선 수학책도 과학책과 같은 부류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는듯 하다.
대체로 과학서를 어렵다고 기피하는 사람들도 진화심리학 계통에 있는 생물학 책이나, 이 책처럼 네트워크 이론, 조직이론 등을 따르는 책들-대체로 번역서인 경우가 많다-은 그나마 인기가 높은 편이다. 게중엔 베스트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 회사 선배 한분이 행동경제학인지 진화심리학인지에 관한 번역서를 한권 읽고나서 너무나 재미있었다면서 도대체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길래 이처럼 재밌게 쓸 수 있느냐고 찬탄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최근까지도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도 그렇거니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서술된 번역서의 최대 기여자는 물론 지은이일 것이다. 그러나 전해 듣는 바로는 미국에서도, 그리고 일본에서도 지은이 못지 않게 편집자들의 내공이 그처럼 부드러운 글들이 나오게 하는데 적지 않게 기여를 한다고 한다. 한국 편집자들의 역량이 떨어진다고 말하려는게 절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한국에선 그런 역량이 발휘될 터전이 과연 있기는 한가라는 질문이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뭐, 필자군도 그리 두텁지 않는데 이런 얘길 하는게 우습기도 하지만...
이번주에 읽었던 책은 김영사의 책이었는데 그러고보면 김영사에서 나온 진화론 또는 네트워크 이론 관련 책들을 꽤나 많이 접했던 것 같다. 지금 김영사라는 출판사의 이미지는 과학쪽 보다는 종합출판사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로 김영사에서 나오는 책들은 분야가 다양하다. 하지만 김영사가 보유한 과학서의 백리스트가 만만치 않다. 과학전문 출판사를 표방하고 있는 출판사들이 몇몇 있는데 여하튼 김영사는 일찍부터 '대중과학서'를 착실하게 소개해 왔다.
과거 어느 책의 리뷰기사를 쓰면서 '인문서 독자들이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저자가 칼 마르크스와 찰스 다윈이다'라고 쓴 적이 있었는데,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번쯤은 제대로 마주치는 분야가 과학서 분야다.
그냥 '과학서'라고 뭉뚱그려버리고 만다면 과학서 분야를 그만큼 접해보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과학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천문우주에서부터 지구과학, 생물학을 거쳐 과학철학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선 수학책도 과학책과 같은 부류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는듯 하다.
대체로 과학서를 어렵다고 기피하는 사람들도 진화심리학 계통에 있는 생물학 책이나, 이 책처럼 네트워크 이론, 조직이론 등을 따르는 책들-대체로 번역서인 경우가 많다-은 그나마 인기가 높은 편이다. 게중엔 베스트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 회사 선배 한분이 행동경제학인지 진화심리학인지에 관한 번역서를 한권 읽고나서 너무나 재미있었다면서 도대체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길래 이처럼 재밌게 쓸 수 있느냐고 찬탄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최근까지도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도 그렇거니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재미있게 서술된 번역서의 최대 기여자는 물론 지은이일 것이다. 그러나 전해 듣는 바로는 미국에서도, 그리고 일본에서도 지은이 못지 않게 편집자들의 내공이 그처럼 부드러운 글들이 나오게 하는데 적지 않게 기여를 한다고 한다. 한국 편집자들의 역량이 떨어진다고 말하려는게 절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한국에선 그런 역량이 발휘될 터전이 과연 있기는 한가라는 질문이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뭐, 필자군도 그리 두텁지 않는데 이런 얘길 하는게 우습기도 하지만...
새와 개미가 일깨워준 ‘조직운영의 원리’
-동물군집의 경이로운 집단지능, 인간 딜레마의 해법으로 활용
-최상의 의사 소통과 결정 모색
십수년 전 늦가을 시골에 갔을 때였다. 집안 어르신이 오후 늦게 갈 곳이 있다며 다짜고짜 차에 태웠다. 찾아간 곳은 전남 구례의 지리산 자락이었다. 차는 쌍계사 가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늦가을이라 관광객이 그리 많을 이유가 없는데도 앞서 온 차들로 만원이었다. 코앞 봉우리들의 관상을 따져보는 순간이던가. 하늘이 일순 새카맣게 변했다. 해거름의 하늘을 가득 메운 그 물체, 아니 물체들의 거대한 집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민첩하게 하늘을 유영했다. 훗날 읽었는데, 시인 손택수는 ‘쌍계사 되새떼’라는 시에서 그날 내가 본 것을 ‘낮이면 강마을 탁발을 다니고/ 해넘이 하늘 한폭 점묘화를 그리며 돌아온대지’라고 읊었다. 점묘화라. 그렇다. 자그마한 새 수십만마리가 하늘에서 펼쳐 보인 것은 ‘움직이는 점묘화’였다. 눈을 부릅뜨고 봐도 서로 부딪쳐 떨어지는 녀석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정말이지 이런 광경을 한 번 보고 나면 장엄한 자연에 숙연해지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도 겨울 철새인 되새 한 마리와 지능을 겨뤄 보라고 하면 화를 낼 것이다. 당연하다. 나쁜 지능의 대명사인 ‘새 머리’와 인간의 머리를 비교하다니. 하지만 만원 지하철 속 사람들이 이리저리 부딪치고,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매일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수십만마리의 새가 말 그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스마트 스웜(Smart Swarm)>이 말하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스마트 스웜은 ‘영리한 무리(떼)’라는 뜻이다. 원서에 붙은 부제는 이 책의 의도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동물 떼, 무리, 군집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은 원활한 의사소통, 현명한 의사결정을 좀 더 잘할 수 있다’는 취지다. 우리는 새 한 마리, 개미 한 마리, 꿀벌 한 마리는 보잘것없지만 그들의 무리가 보여주는 모습은 경이롭다는 것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새떼가 날아올라 헤엄치듯 하늘을 비행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새들이 주변 6~7마리의 움직임을 추적함으로써 서로 부딪히지 않고 날 수 있음을 밝혀냈다. 6~7마리씩 연쇄적으로 네트워크가 이뤄지는 것이다. 새떼가 보여준 지능은 영화제작에 먼저 응용됐다. 인간종족과 악의 군사 수십만이 전투를 하는 영화 <반지의 제왕2-두개의 탑>의 마지막 장면은 새떼의 비행방식을 활용, 엑스트라의 투입없이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책은 이러한 ‘집단지능’의 실제 구현 모습과 작동 원리, 인간생활에의 적용 가능성 등을 말한다. 주인공은 개미, 꿀벌, 흰개미, 참새이다. 분석의 키워드는 ‘자기조직화’(개체들이 본능적으로 행동을 서로 조정하는 것), ‘지식의 다양성’(집단 내 개체들의 다양한 지식을 경쟁시켜 근사치를 얻는 것), ‘간접 협동’(한 집단의 개체들이 작은 변화에 자극을 받아 어떤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에 자극받아 다른 개체들이 새로운 구조를 창조하는 것), ‘적응 모방’(집단 내에서 개체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움직이는 것) 등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풀어야 할 딜레마는 수없이 많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외판원이다.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는 고객들을 방문해야 한다. 방문해야 하는 고객이 늘어날수록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어떤 경로를 밟느냐에 따라 시간과 경비에 큰 차이가 난다. 이런 사람은 개미 집단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 개미는 먹이를 찾으러 다니는 길마다 페로몬 자취를 남긴다. 뒤따르는 개미들이 페로몬 자취가 더 강한 길, 즉 앞서 더 많은 개미들이 지나간 길을 택할 수 있도록 힌트를 남기는 것이다. 이런 선택이 누적되면서 사물을 옮기기 위한 최적의 경로가 만들어진다. 어떤 지휘자가 지휘하는 게 아닌데도 개미들이 보여주는 이런 놀라운 지능은 물류업계, 네트워크 업계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이번에는 실제 사례다. 2003년 8월14일 미국 오하이오주에선 주 송전선 하나에 합선이 일어나 전력 공급이 끊어졌다. 미국의 전력 공급망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전력을 우회해서 공급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우연찮게도 근처의 화력발전소가 정비 때문에 멈춘 상태였고, 더운 날씨 때문에 전력 사용이 급증하면서 전력 공급체계가 극도로 취약해졌다. 연쇄적으로 전력 공급이 중단됐고 단 몇 시간 만에 북미 역사상 최악의 정전사태로 이어졌다. 조그마한 뉴스 하나가 주식시장 붕괴를 촉발하는 것처럼 점점 더 커다란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전체로 확산돼 버린 것이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선생님’은 나미비아 사막에 사는 흰개미떼다. 건조한 환경에서 사는 이들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크고 정교한 구조를 가진 흙집을 만든다. 큰 것은 3~4m에 달한다. 이들이 만든 흙집의 구조는 매우 융통성 있고, 상보적이다. 연구자들이 한쪽을 무너뜨리면 흰개미들은 신속하게 해당 부분을 폐쇄한 채 보수에 들어간다. 어떤 설계도도 감독자도 없다. 그들의 DNA에 각인된 협동의 방식이 그 무엇보다 훌륭한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전문 방송인 디스커버리 채널 같은 곳에서 단골로 다룰 법한 소재들이 풍부하게 등장하는 이 책의 결론은 ‘집단이 지혜를 모을 때 실수는 상쇄되고 최상의 해답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요사이 다시 유행하고 있는 복잡계 이론, 네트워크 이론을 피부에 와 닿도록 설명했다. 이 책이 몇 년 전에 나왔다면 독자들이 느낄 놀라움과 신선함은 한층 더 깊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여러 차례 인용되듯 위키피디아, 트위터, 유튜브 등 이른바 ‘웹2.0시대’를 이미 경험하고 있는 독자들은 충격이 덜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학 전문 번역가 겸 저술가인 이한음씨가 최신 과학용어들을 뜻이 잘 통하는 한국어로 옮기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2010.9.11)
-동물군집의 경이로운 집단지능, 인간 딜레마의 해법으로 활용
-최상의 의사 소통과 결정 모색
스마트 스웜 - 피터 밀러 지음, 이한음 옮김, 이인식 해제/김영사 |
십수년 전 늦가을 시골에 갔을 때였다. 집안 어르신이 오후 늦게 갈 곳이 있다며 다짜고짜 차에 태웠다. 찾아간 곳은 전남 구례의 지리산 자락이었다. 차는 쌍계사 가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늦가을이라 관광객이 그리 많을 이유가 없는데도 앞서 온 차들로 만원이었다. 코앞 봉우리들의 관상을 따져보는 순간이던가. 하늘이 일순 새카맣게 변했다. 해거름의 하늘을 가득 메운 그 물체, 아니 물체들의 거대한 집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민첩하게 하늘을 유영했다. 훗날 읽었는데, 시인 손택수는 ‘쌍계사 되새떼’라는 시에서 그날 내가 본 것을 ‘낮이면 강마을 탁발을 다니고/ 해넘이 하늘 한폭 점묘화를 그리며 돌아온대지’라고 읊었다. 점묘화라. 그렇다. 자그마한 새 수십만마리가 하늘에서 펼쳐 보인 것은 ‘움직이는 점묘화’였다. 눈을 부릅뜨고 봐도 서로 부딪쳐 떨어지는 녀석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정말이지 이런 광경을 한 번 보고 나면 장엄한 자연에 숙연해지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도 겨울 철새인 되새 한 마리와 지능을 겨뤄 보라고 하면 화를 낼 것이다. 당연하다. 나쁜 지능의 대명사인 ‘새 머리’와 인간의 머리를 비교하다니. 하지만 만원 지하철 속 사람들이 이리저리 부딪치고,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매일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수십만마리의 새가 말 그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스마트 스웜(Smart Swarm)>이 말하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스마트 스웜은 ‘영리한 무리(떼)’라는 뜻이다. 원서에 붙은 부제는 이 책의 의도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동물 떼, 무리, 군집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은 원활한 의사소통, 현명한 의사결정을 좀 더 잘할 수 있다’는 취지다. 우리는 새 한 마리, 개미 한 마리, 꿀벌 한 마리는 보잘것없지만 그들의 무리가 보여주는 모습은 경이롭다는 것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새떼가 날아올라 헤엄치듯 하늘을 비행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새들이 주변 6~7마리의 움직임을 추적함으로써 서로 부딪히지 않고 날 수 있음을 밝혀냈다. 6~7마리씩 연쇄적으로 네트워크가 이뤄지는 것이다. 새떼가 보여준 지능은 영화제작에 먼저 응용됐다. 인간종족과 악의 군사 수십만이 전투를 하는 영화 <반지의 제왕2-두개의 탑>의 마지막 장면은 새떼의 비행방식을 활용, 엑스트라의 투입없이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책은 이러한 ‘집단지능’의 실제 구현 모습과 작동 원리, 인간생활에의 적용 가능성 등을 말한다. 주인공은 개미, 꿀벌, 흰개미, 참새이다. 분석의 키워드는 ‘자기조직화’(개체들이 본능적으로 행동을 서로 조정하는 것), ‘지식의 다양성’(집단 내 개체들의 다양한 지식을 경쟁시켜 근사치를 얻는 것), ‘간접 협동’(한 집단의 개체들이 작은 변화에 자극을 받아 어떤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에 자극받아 다른 개체들이 새로운 구조를 창조하는 것), ‘적응 모방’(집단 내에서 개체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움직이는 것) 등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풀어야 할 딜레마는 수없이 많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외판원이다.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는 고객들을 방문해야 한다. 방문해야 하는 고객이 늘어날수록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어떤 경로를 밟느냐에 따라 시간과 경비에 큰 차이가 난다. 이런 사람은 개미 집단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 개미는 먹이를 찾으러 다니는 길마다 페로몬 자취를 남긴다. 뒤따르는 개미들이 페로몬 자취가 더 강한 길, 즉 앞서 더 많은 개미들이 지나간 길을 택할 수 있도록 힌트를 남기는 것이다. 이런 선택이 누적되면서 사물을 옮기기 위한 최적의 경로가 만들어진다. 어떤 지휘자가 지휘하는 게 아닌데도 개미들이 보여주는 이런 놀라운 지능은 물류업계, 네트워크 업계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이번에는 실제 사례다. 2003년 8월14일 미국 오하이오주에선 주 송전선 하나에 합선이 일어나 전력 공급이 끊어졌다. 미국의 전력 공급망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전력을 우회해서 공급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우연찮게도 근처의 화력발전소가 정비 때문에 멈춘 상태였고, 더운 날씨 때문에 전력 사용이 급증하면서 전력 공급체계가 극도로 취약해졌다. 연쇄적으로 전력 공급이 중단됐고 단 몇 시간 만에 북미 역사상 최악의 정전사태로 이어졌다. 조그마한 뉴스 하나가 주식시장 붕괴를 촉발하는 것처럼 점점 더 커다란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전체로 확산돼 버린 것이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선생님’은 나미비아 사막에 사는 흰개미떼다. 건조한 환경에서 사는 이들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크고 정교한 구조를 가진 흙집을 만든다. 큰 것은 3~4m에 달한다. 이들이 만든 흙집의 구조는 매우 융통성 있고, 상보적이다. 연구자들이 한쪽을 무너뜨리면 흰개미들은 신속하게 해당 부분을 폐쇄한 채 보수에 들어간다. 어떤 설계도도 감독자도 없다. 그들의 DNA에 각인된 협동의 방식이 그 무엇보다 훌륭한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전문 방송인 디스커버리 채널 같은 곳에서 단골로 다룰 법한 소재들이 풍부하게 등장하는 이 책의 결론은 ‘집단이 지혜를 모을 때 실수는 상쇄되고 최상의 해답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요사이 다시 유행하고 있는 복잡계 이론, 네트워크 이론을 피부에 와 닿도록 설명했다. 이 책이 몇 년 전에 나왔다면 독자들이 느낄 놀라움과 신선함은 한층 더 깊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여러 차례 인용되듯 위키피디아, 트위터, 유튜브 등 이른바 ‘웹2.0시대’를 이미 경험하고 있는 독자들은 충격이 덜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학 전문 번역가 겸 저술가인 이한음씨가 최신 과학용어들을 뜻이 잘 통하는 한국어로 옮기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20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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