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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리뷰]황금의 땅, 북극에서 산 30년

체코 출신의 얀 벨츨(Jan Welzl, 1868~1948)이 그린 100여년 전 극북 지역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비롭다. 지금도 극북지역이라고 하면 황량하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연상되는데, 100년 전에도 황량했던 것은 맞지만 오히려 지금보다 사람들이 더 북적였던 것 같다. 마치 북미대륙의 서부개척시대처럼 황금광 시대가 펼쳐졌던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벨츨의 사진을 보니 무척이나 낙천적이었던 사람으로 보인다. 그랬기에 시베리아를 혼자서 횡단하고, 역시 극북 지역에서 동굴을 파고 혼자 사는 생활을 할 수 있었으리라. 안그랬다면 미쳐버리거나, 알코올중독이 되거나 했을 것이다. 얀 벨츨은 책에서 실제로 그런 표현을 하기도 했다.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100여년전 극북 지역의 독특한 자경활동과 사법체계다. 사람들이 띄엄띄엄 사는 지역이고 공권력은 너무나도 멀리 있는 지역이라 도둑과 사기꾼, 살인자가 한번 나타나면 자체적으로 잡아서 처리해야 했다. 그래서 원주민, 이주민 등으로 구성된 커뮤니티 안에서 연대가 형성됐고 사건이 발생하면 다각적 네트워크를 통해 범인들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용의자의 위치가 파악되면 무장한채 추적에 나선다. 붙잡힌 용의자들은 즉결심판에 넘겨진다. 재판에 걸리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오래 서 있으면 모두가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대개는 사형이 선고된다. 자살토록 하거나, 총살하거나, 아니면 태워서 죽인다. 매우 가혹한 방식으로 정의를 지켜나간 것이다.

‘우리는 옛 인디언 사법제도에 따라서 재판을 열었다. 우리에게는 감옥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판결하는 유일한 형벌은 사형이라고 이해하는 게 편하다. 유죄 판결을 받은 이는 사형에 처혀지는 것이다. 그 정도로 가혹한 형벌을 당할 만큼의 죄를 지은 게 아니라면 무죄 방면된다.' (333쪽)

'그 다음에 배심원단이 모여서 간단하게 의논을 거친다. 배심원장은 배심원단이 피고를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한다. 최질의 정도에 따라서 배심원단은 가장 가벼운 처형인 교수형을 선고할 수 있다. 더 무거운 처형은 총살이고 가장 가혹한 처형은 산 채로 화형시키는 것이다. 배심원단에 에스키모의 수가 많다면 이 처형 방법에 숫자를 붙여서 에스키모들의 심각한 고민을 덜어준다. 1번은 온건한 처형, 2번은 더 무거운 처형, 3번이 가장 가혹한 처형이다. 혹한의 얼음 위에서 5분 넘게 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빨리 진행된다.' (336쪽)

'우리는 처형당한 이들을 매장하지 않는다. 총살, 교수형, 독살, 화형을 막론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두고 떠나온다. 늑대와 야생동물들이 곧 나타나서 불운한 에피소드의 모든 흔적을 말끔히 치워버린다. 얼마나 순식간에 청소가 이루어지는지 놀라울 뿐이다. 예를 들어 처형이 오후에 일어난 일어었다고 하자. 이튼날 아침 일찍 그 자리에 다시 가 보면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져진 눈과 발자국 몇 개뿐, 사람의 흔적은 눈곱만큼도 없다. 있어봤자 자그마한 옷 조각뿐이라고 해야 할까.' (343쪽)

지은이는 극북 지역에서도 100살 넘도록 장수하다가 자연사 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지만 역시 흔한 건 '자연사 아닌 죽음'이다.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이 너무나도 가까이 공존하는 지역이라서 그런지 무척 담담하다. 극북 지역 사람들이 믿는다는 '죽음의 새' 이야기도 흥미롭다.

'북극에서는 자연사가 아닌 죽음이 더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사람이 술에 취하면 썰매를 타고 달릴 때 부부주의해지고 사고가 일어난다. 북극해에서 많은 이들이 당하는 사고는 얼음에서 미끄러지거나 야생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 북극이 아니라면 부상을 입은 이가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치료를 받게 되겠지만, 북극에서는 한번 부상을 입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구조의 손길이 도착하기 전에 얼어 죽는 게 흔한 일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 툰드라 지대나 숲에 사냥을 나갔다가 죽는 일이 거의 해마다 일어났다.
자연사를 맞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사람들이 '죽음의 새'라고 부르는 까만 새가 날아온다. 누군가 죽어 갈 때면 이 새가 나타나서 그의 동굴 위에 앉는다고 한다. 그 새는 썩은 생선만 먹고 살기 때문에 에스키모와 북극 정착민들은 그 새가 앉는 곳에서는 누군가 죽는다고 믿는 것이다. 크기가 개똥지빠귀만 한데 나는 그 새가 어디에서 날아오는지 모른겠다. 어디인가에서 날아아 앉은 그 새는 끼익끼익 세 번을 울고 날아간다. 그러면 아주 오래지 않아서 이웃의 누군가가 숨을 거둔다. (316~317쪽)



“100년 전 북극에서 조선 여인을 만났다”
-이방인으로서 북극의 족장으로 살았던 체코인 얀 벨츨 탐험기

황금의 땅, 북극에서 산 30년 - 10점
얀 벨츨 지음, 이수영 옮김/천지인

대륙으로 이뤄진 남극과 달리 북극점을 중심에 둔 바다로 이뤄진 북극지역은 ‘오로라’ 하나로도 신비의 대상이다. 북극권에 지천으로 쌓인 눈과 얼음은 외려 따뜻한 느낌을 준다. 코카콜라의 광고에선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바다를 떠도는 유빙 위에선 처연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북극곰은 북극권을 동화적 세계로 상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현실의 북극은 더할 수 없이 혹독한 기후를 품고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고독한 곳이다. 서울에선 눈 감으면 코 베인다던가? 북극에선 눈 감으면 코가 떨어진다. 눈보라 치는 추운 날 바깥에서 얼굴을 잘못 내놓았다간 순식간에 코에 동상이 걸려버려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홀로 길을 가다 다치거나 조난을 당해 죽으면 짐승의 먹이가 되거나 눈과 얼음에 갇혀 썩지 않은 채로 남는다.

<황금의 땅, 북극에서 산 30년>은 100년 전쯤 북극권을 무대로 펼쳐지는 탐험기이자, 민족기술지이며, 콩트집이다. 이 책의 지은이이자 주인공인 얀 벨츨(사진)은 체코 남부 모라비아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시베리아횡단철도 교량 공사장에서 자물쇠공으로 일하다 말 한 마리에 ‘의존해 시베리아를 횡단, 1897년 북극권에 도착했다. 그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새로운 삶을 개척해 인생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보리라는 포부였다. 물론 방랑벽과 모험심이 유별난 그였다.


놀랍게도 벨츨이 시베리아를 여행하고 북극에 정착한 1800년대 말~1900년대 초엔 이 지역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외지인들이 에스키모라고 부르고, 자신들은 이뉴이트로 부르는 북극 원주민들이 있었지만 이들 외에 다양한 인간군상이 이 불모의 땅과 바다에 모여들었는데 이들을 모여들게 한 것은 바로 금이었다. 북극권에서 금맥이 발견되면서 북극판 골드러시가 시작된 것이다. 책 속에는 어느 조선 여인까지 등장한다. 그녀는 정어리잡이 배에 실려 왔다가 현지에 정착한 여인이었다.

벨츨은 금을 찾으려는 부나방 대열에 합류하기보다는 쇠를 다룰 줄 아는 기술과 장사수완을 이용해 차근차근 삶의 기반을 마련해 나갔다. 그리고 앞서 현지에 정착한 외지인들, 그리고 에스키모들에게 동화됐다. 유럽의 가난한 하층민 출신이라 배움은 부족했지만 그는 기억력이 뛰어났고, 영리했으며 무엇보다 순박한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알았다. 결국 그는 ‘곰을 먹은 자’란 별명을 얻게 되고 훗날 에스키모와 정착민의 공동체에서 족장으로 뽑혔다. 벨츨은 잠시 체코로 돌아와 이 책을 구술하지만 다시 북극으로 돌아가 1948년 80세의 나이로 캐나다 북쪽 도슨시티에 묻혔다.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체코인’으로 만들어준 이 책에서 벨츨이 펼쳐놓은 100년 전 북극 사람들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구슬프고, 실소를 자아낸다. 벨츨이 겪는 죽을 고비들은 모험소설을 보는 듯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리고 혹독한 자연에 할퀴거나, 스스로가 친 탐욕과 오만의 함정에 빠져 스러져가는 인간들의 모습은 애석하다.

극한의 세계에서 인간의 삶은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항상 죽음의 문턱을 밟고 살기 때문일까. 북극 사람들은 생사관도 날씨만큼이나 ‘쿨’하다. 앞서 얘기한 코 떨어지는 이야기 한 장면을 보자. 피트라는 사람이 벨츨의 집을 찾아오다가 코에 동상이 걸린다. 코가 자신의 손에 쥐어진 피트는 벨츨에게 총을 건네며 말한다. “리볼버일세. 당장 나를 쏴 주게.” 벨츨의 답이 압권이다. “뭐라고요. 나가서 직접 쏘세요! 나는 내 집에서 아무도 쏘아 죽일 생각이 없습니다.”  (201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