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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요즘 무슨 책 봐? 대화의 장으로 독서를 끌어내세요

지난주 대학 동기 몇이 오랜만에 술자리를 가졌다. 여섯명이 모였는데 구성이 하도 절묘해 신기했다. 아이 셋을 둔 아빠, 둘을 둔 아빠, 하나를 둔 아빠, 엄마 뱃속에 첫아이가 있는 예비 아빠, 아직 아이를 갖지 않은 친구, 그리고 노총각까지 '가정생활'이 제각각이었다. 대도시 소시민들이 나눔직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던 중 "요즘 이러저러한 책들이 많이 나오더라"고 슬쩍 책 이야기를 꺼냈다. '미끼'를 던져본 것이다.
절친한 친구들을 상대로 몰래 '낚시질'을 시도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연유에서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들이나 과거의 취재원들에게 편집국 문화부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하면 단언컨데 가장 먼저 나오는 반응은 "연예인 많이 보겠네"이거나 "공연 티켓 들어오면 좀 챙겨주라"이다.
이 몸은 그 분야와는 거리가 먼 출판을 담당하고 있다고 답하면 돌아오는 반응의 정석. "야~ 팔자 좋구나, 책도 많이 보고 좋겠다." "그래, 좋다"는 둥 "눈알이 빠지려고 한다"는 둥 농으로 받아넘기다 보면 대화는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런데 이런 대화가 반복되면서 뭔가 허전함이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과 책에 관한 얘기로 대화의 서론을 채웠지만 단 한명으로부터도 "내가 지금 이런 책을 읽고 있는데…"라거나 "요즘 나온 책중에 배깔고 엎드려서 읽을만한 책 좀 없나?"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친구들을 대상으로 한 낚시질도 보기 좋게 실패했다. "이 자식, 또 직업병 나오네. 술이나 마셔 인마."
왜 그럴까?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죄다 책과 담을 쌓은 사람들이어서일까, 반대로 책에 대해 너무 정보가 풍부해 굳이 나에게 묻지 않아도 충분한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화 상대방인 나의 독서력이 형편없다 여기고 '한권의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눠봐야 시간낭비라고 느껴서일까.
지난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08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성인은 지난해에 평균 11.9권의 책을 읽었단다. 전년의 12.1권에 비해 약간 떨어진 것이지만 성인 한명이 한 달에 한 권 정도를 읽은 셈이다. 솔직히 인터넷·휴대폰의 반노예가 돼 있고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을 감안하면 이 정도로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살짝 의심스러울 정도다.
국민독서실태조사에는 이런 의심을 뒷받침하는 수치도 있다. 한달에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이 10명 가운데 4명에 달했다. '독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다. 한달에 너댓권씩 읽는 사람들이 한달에 한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의 평균을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과 독서 관련 대화를 '자주 한다'는 응답이 성인 12.0%, 학생 13.6%에 불과하다는 수치도 있다. '한권의 책'이 대화의 소재에서 사라진 원인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영상매체가 현대인의 담론을 지배한지 오래 됐다는 점도 이에 기여했을 것이다.
책 읽기는 개인적인 행위다. 그러나 책을 혼자서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읽은 책, 혹은 읽을 책에 대해 남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해석과 경험을 더할 수 있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요즘 어떻게 지내?" 대신 "요즘 무슨 책 봐?"란 말로 상대방의 안부를 물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독서를 공동의 행동으로 바꿔보자는 것이다. 여러분, 요즘 무슨 책 읽으십니까? <2009.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