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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동화책 보는 아빠

[리뷰]어느 날 미란다에게 생긴 일

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얼마전부터 청소년 소설이라는 장르가 붐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이라 소재의 한계는 있겠지만 잘 쓰여진 청소년 소설은 성인 소설 못지 않게 재미있다. 그 밖에도 책 내용과 관계없이 형식에서 주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일단 분량이 짧다. 그래서 책 한권을 붙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 혹은 지하철과 버스 독서용으로 제격이다. 그리고 인생사의 여러 측면을 다루고 있지만 성인소설처럼 독자로 하여금 강도 높은 고민과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건 읽는 내가 청소년이 아니라 성인이어서 그럴 것이다. 이번 책도 그런 것이다. 소재 자체는 청소년끼리의 친구 사귐과 삐침, 가식에 찬 어른들의 모습을 삐딱하게 바라보기 등등인 것 같지만 뒤로 갈수록 엄청난 상상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자세하게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상처, 화해, 사랑… 12살 소녀 따뜻한 성장기
어느 날 미란다에게 생긴 일 - 10점
레베카 스테드 지음, 최지현 옮김/갈대상자(찰리북)

1978년 중·하류층이 사는 미국 뉴욕의 한 동네. 12살 소녀 미란다는 미혼모 엄마와 단둘이 산다. 미란다의 단짝은 아래층에 사는 샐. 어느날 하굣길에 한 사내아이에게 얻어맞은 샐은 그 뒤로 미란다를 의식적으로 멀리한다. 그러던 어느날 미란다에게 이상한 내용이 담긴 쪽지가 날아왔다. ‘어렵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난 연습하고 있고 준비는 잘돼 가고 있다. 네 친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갈 거다. …두 가지만 부탁할게. 첫째, 넌 나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 둘째, 잊지 말고 너희 집 열쇠가 어디 있는지 말해줘.’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는 듯한 쪽지가 몇 차례 더 배달된다.
한편 샐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을 피하는 사이 미란다는 학교의 친구들을 하나둘씩 사귀어 나가고 새롭게 단짝을 만든다. 샐을 때린 마커스란 아이도 알게 되는데, 실은 마커스가 꽤 똑똑하고 괜찮은 소년임을 알게 된다. 마커스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소년이다.
동네 어귀에서 노숙을 하며 차도를 향해 발차기 연습을 하거나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웃는 남자’. 그는 미란다가 곁을 지나칠 때마다 이상한 말을 하면서 미란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느날 마커스가 샐에게 뭔가를 말하려 다가가자 샐은 도망친다. 도망치다 차도에서 커다란 트럭에 치일 위기에 처한 샐. 그 순간 웃는 남자가 샐을 발로 차내고 대신 트럭에 받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광경을 목격한 미란다. 샐이 자신에게 토라진 일, 쪽지가 배달된 일, 마커스가 시간여행에 집착한 일 등 지난 1년 동안 벌어졌던 영문을 알 수 없는 일들이 미란다의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비밀의 문이 열린다.
아동도서계의 노벨문학상이라 불리는 ‘뉴베리상’ 2010년 수상작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이 괜한 이유로 상처 받고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며 삶을 알아가는 과정을 촘촘한 구성과 긴장감 있는 묘사로 그려냈다. 책 마지막에 가서야 풀리는 쪽지의 비밀은 단숨에 이 책을 읽게 만들 정도로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영화로 만들어질 법한 소설이다. <201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