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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리뷰]곤충의 밥상

지난주 읽은 책은 곤충 생태를 담은 국내 저자의 책. 동식물의 생태에 관한 책은 어린이 분야로 자주 나오는데 성인용 단행본으로서 이 정도면 상당한 수작이다. 사진도 좋다. 최재천 교수의 에세이집 <열대예찬>을 읽은 적이 있는데, 최 교수의 글이야 워낙 정평이 나 있긴 하지만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곤충의 생태 자체에 관한 것은 아니고 곤충학자의 길을 밟게 된 과정을 자신의 어린시절의 이야기에서부터 열대우림에 곤충의 생태를 관찰하는 가서 겪는 일, 그리고 즐거움까지 풀어냈다.

열대예찬 - 10점
최재천 지음/현대문학

<곤충의 밥상>은 그에 비하면 정통 생태서이다. 그런데 지은이의 이력이 심상치 않다. 동식물 분야엔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전문가 뺨치는 아마추어 애호가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현장에서의 세세한 지식은 아무래도 실험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는 학자들보다 더 강한 경우도 그리 드물지 않다고 한다. 지은이는 아마추어에서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쌓은 뒤 정식 학교 교육을 통해 '전문가'의 레테르를 달게 된 사람이다. 실제 만나보았는데 곤충에 대한 그의 정열은 몇마디 말만 들어도 강렬하게 전달 받을 수 있었다.

그는 <파브르 곤충기>를 완역한 김진일 전 성신여대 교수의 제자인데, <파브르 곤충기> 완역에 즈음해 김 전 교수를 인터뷰 한 게 얼마 되지 않았다. 한달 어간에 스승과 제자를 각각 인터뷰 하는 것도 인연이라면 묘한 인연이다. 이 분들이 언론을 그리 자주 타지 않는 분들이니 말이다.

이 책을 내신 출판사 대표님이 책을 직접 들고 회사엘 찾아왔는데 설명하던 도중 책이 너무 감동적이라면서 잠깐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이 책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것인데, 출판사 분이 책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처음이었다. 여하튼 이 책은 재밌다.

풀·버섯·똥… 곤충마을 ‘진수성찬’ 차렸네
-먹이 종류별로 국내 45종 관찰
-생사·짝짓기 등 삶의 세계 조명… ‘한국판 파브르 곤충기’ 평가도
곤충의 밥상 - 10점
정부희 지음/상상의숲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다. 들판에 풀이 돋고 나무마다 잎이 올라온다. 식물만이 아니다. 날이 풀리면서 지구상에 알려진 것만 100만종에 이르는 곤충들도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했다. 이 책은 곤충이 먹잇감으로 삼는 대상을 풀, 나무, 버섯, 똥과 시체, 곤충으로 나누고 이것들을 먹고 사는 45가지 곤충들을 직접 관찰한 결과를 담았다. 지은이의 은사로 최근 <파브르 곤충기>를 완역한 김진일 성신여대 명예교수, 지은이와 연구실을 함께 쓰는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이 책을 보고 ‘한국판 파브르’의 탄생을 예견했다.
유학은 인간의 여러가지 감정을 칠정(七情)으로 요약한다. 정감어린 관찰기를 읽다보니 곤충도 인간이 살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과 비슷한 것들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상상하게 된다. 솔직히 생물학자가 될 게 아닌 바에야 곤충의 이름과 생태를 아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러나 하찮아 보이는 곤충이 그 잘난 인간 못지 않게 정교한 삶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 따라서 인간은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파브르 곤충기>가 그러하듯 말이다.


喜(기쁠 희)=사는 것이 곧 먹는 것이다. 그래서 배불리 먹고 마시는 것에서 오는 기쁨은 크다. 이 책의 절반은 곤충의 먹이활동에 관한 것이다. 곤충들은 풍부한 먹잇감을 안전한 상태에서 먹기 위해 저마다 기묘한 방식들을 개발했다. 국화과 식물만 먹고 사는 국화하늘소는 개망초 줄기에 구멍을 뚫어 알을 낳는다. 엄마의 수고로움 덕분에 국화하늘소 애벌레는 개망초 줄기 안에서 연한 속을 파먹고 똥을 싸며 무럭무럭 자란다.
怒(성낼 로)=곤충의 애벌레들은 움직임이 한없이 굼뜨지만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가 다가오면 짐짓 성난 몸짓을 해보임으로써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버드나무 잎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끝루리등에잎벌레 애벌레는 위협을 느끼면 일제히 배 끝을 치켜들어 물구나무를 선다. ‘나 지금 화났어’라고 허세를 부림으로써 천적이 겁을 먹게 만들려는 수작이다.
哀(슬플 애)=애벌레 상태로 1~2년을 살다가 어른이 되어선 단 며칠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 강가나 하천에 어둠이 내리면 어른 하루살이가 떼지어 날아올라 ‘죽음의 댄스파티’를 연다. 날면서 짝짓기를 마친 수컷은 그 자리에서 죽어 떨어진다. 암컷도 알을 낳고는 이내 죽는다. 어찌보면 어른 하루살이는 슬픔을 느낄 새가 없을 정도로 삶이 짧다. 대부분의 곤충은 짝짓기가 곧 죽음과 동의어다.
懼(두려워할 구)=생명과 존재가 위협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식물도 마찬가지다. 박주가리라는 식물의 잎을 자르면 젖을 연상시키는 끈적끈적한 흰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매우 독성이 강한 방어물질이다. 유전자에 각인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박주가리로 하여금 방어물질을 만들게 한 것이리라. 식물들은 저마다 방어물질을 만든다. 그러나 곤충들은 오랜 기간 독성물질에 익숙해지면서 내성을 길렀고 급기야 자기가 즐기는 식물의 방어물질을 맛좋은 음식이 풍기는 향기로 여긴다.
愛(사랑 애)=층층나무 수액을 즐기는 에사키뿔노린재는 등판에 사랑의 상징인 노란색 하트 모양이 새겨져 있다. 이 녀석은 짝짓기 시간이 길기로 유명하다. 곤충계의 변강쇠와 옹녀라나? 다른 수컷이 접근해 또다시 짝짓기를 하지 못하도록 수컷이 기를 쓰고 매달려 있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감동(?)은 좀 줄어들지만, 이 녀석은 새끼 사랑도 극진하다. 알에서 애벌레가 깨어날 때까지 열흘이 넘도록 꼼짝않고 지킨다. 그러곤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惡(미워할 오)=곤충이 가장 미워할 대상은 아마도 인간이 제1순위 아니겠는가. 징그럽다며, 해충이라며, 조금 더 편리해지자며 그들을 죽이고 살 곳을 가차없이 없애버리니 말이다. 물론 식물의 자그마한 곤충의 잎사귀 위에서도 생물들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대로 놔두면 더함과 덜함을 재빨리 잡아주는 균형의 세계이다. 그 균형을 깨는 것은 대부분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미움은 곤충을 사랑하는 지은이가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欲(하고자 할 욕)=인간 욕망의 대미는 뭐니뭐니 해도 성욕이다. 대부분의 곤충은 죽음 직전에 짝짓기를 한다. 그것은 유전자가 지시하는 본능일 것이다. 본능이 깊이 각인돼 있을수록 그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욕망은 깊다. 최재천 교수는 추천사에서 “곳곳에 ‘미성년자 관람불가’ 언저리를 아슬아슬하게 맴돌며 곤충들의 짝짓기를 설명했다”고 평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은이는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과 곤충의 행동에서 가장 유사한 점을 찾으라면 짝짓기 행동인 것 같다”며 꽃하늘소류 곤충 수컷의 발기현상까지 그려냈다. 곤충의 다양한 짝짓기 행동을 자세하게 연구하면 포유동물의 짝짓기 행동의 출발점을 알 수 있을지 모른다면서….
[인터뷰]“인간 욕심이 곤충 해쳐 공생의 길 찾고 싶어요”



<곤충의 밥상>을 쓴 정부희씨(48)는 세칭 ‘인생 2모작’에 훌륭하게 안착한 경우다. 충남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정씨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함께 자연에 묻혀 살았다. 영어 선생님이 꿈이었던 그가 진학한 곳은 이화여대 영어교육과. 졸업 후 결혼하고 교사임용을 기다리다 임신을 하게 된 그는 ‘내 아이는 내가 키운다’는 일념으로 소녀때 꿈을 접었다.
정씨는 스스로 역마살을 타고났다고 말한다. 30대 초반 문화유산답사 붐에 올라타 가족과 방방곡곡을 찾아다녔다. 유적지 주변에 만개한 우리꽃에 눈을 뜨면서 또다시 전국을 누볐고, 곤충으로 관심이 확대됐다. 30대 후반 서울 길동자연생태공원 자원봉사자로 나선 그는 급기야 불혹의 나이에 곤충 분류의 대가 김진일 성신여대 교수를 찾아간다. 그리고 석사 2년, 박사 3년이라는 ‘광속’으로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딱정벌레목에 속하는 ‘거저리과’ 곤충, 특히 버섯을 먹는 거저리과 곤충에 관한 국내 유일의 전문가다. 영문학과 문화유산을 배우면서 키운 인문학적 감수성, 곤충의 먹잇감이자 삶터인 식물에 대한 지식, 교수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맹렬한 열정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정씨는 인간이 곤충을 알고 연구해야 하는 이유로 “우리나라, 더 나아가 지구에 얼마나 많은 생물종이 사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곤충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줘야 생태계 순환이 원활해지고, 생태계 내의 한 존재인 인간의 삶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곤충을 자꾸만 해친다. 정씨는 책에서 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여과없이 피력했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위협받고 사라져가는 생물종을 직접 목격하는 생물학자들은 지구의 미래에 대해 비관론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 아닐까? “사실 상황은 너무나 비관적입니다. 그렇지만 주저앉지 말고 적극적으로 알리고 문제제기를 해야죠. 그게 저희 역할입니다. 물론 직접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건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201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