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번 도려낸 육신’ 사형제의 뿌리인가
-‘능지처참’의 역사 재구성…서구시각의 오리엔탈리즘 비판도
-‘능지처참’의 역사 재구성…서구시각의 오리엔탈리즘 비판도
능지처참 - 티모시 브룩 지음, 박소현 옮김/너머북스 |
1904년 가을 베이징의 한 공터에서 왕웨이친이라는 죄수에 대한 특별한 방식의 처형식이 벌어졌다. 이름하여 능지처참(陵遲處斬), 중국에서는 능지처사(陵遲處死)라 불리는 형벌이다. 가혹한 형벌(혹형·酷刑)의 대명사로 불리는 능지형에 대해 흔히 사지를 말이 끄는 수레에 묶어 찢어 죽이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거열(車裂)이라는 다른 형벌이다. 능지형은 영어로 ‘Death by a thousand cuts’라고 번역됐다. 말 그대로 ‘천번을 자르고 저며서 죽인다’는 뜻이다.
왕웨이친의 처형이 능지형의 역사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지켜보던 군중 사이에 한 프랑스 군인이 있었고, 그의 손에 카메라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능지형 장면을 촬영한 사진은 현재 3장이 남아 있는데, 왕웨이친의 처형장면을 찍은 사진이 1910년 불어로 출판된 책에 수록됨으로써 능지형의 실제 모습을 최초로 서양에 전했다. 설명과 그림으로만 보던 능지형의 생생한 모습을 사진으로 직접 본 서구인들은 전율했다.
서양의 중국사 전문가 3명이 함께 쓴 이 책은 먼저 10세기께 중국의 법제체계에 공식등장, 1905년 폐지된 능지형을 중심으로 중국의 고문과 처형의 역사를 다룬다. 중국 학자들이 잘 거론하지 않고 중국 문헌에도 그리 자세하게 등장하지 않는 능지처참의 역사를 꼼꼼하게 정리했다는 것만으로도 돋보인다. 책은 이에 더해 더욱 대담한 기획을 시도했다. 능지처참에 관한 이야기가 서구에 유포되면서 해석되고 소비되는 과정을 분석한 것이다. 저자들은 “동양에 대한 서구의 인식론적 토대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적 억측과 학술적 담론, 대중적 지식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이 책의 목표 가운데 하나임을 명백히 했다.
중국 학자들은 능지형이 이민족인 거란족에 의해 도입됐다고 보고 있다. 그랬다 하더라도 능지형은 중국의 정통왕조인 명나라 주원장과 이후 황제들에 의해 더욱 빈번하게 사용됐다. 초기엔 반역자로 대표되는 심각한 죄인을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 사용됐지만 뒤로 갈수록 적용범위가 넓어졌다.
영어는 능지형을 ‘서서히 죽임(the lingering death)’이라고도 번역하는데 희생자의 고통을 최대한 지속시키기 위한 방식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실제로 중국 기록에 따르면 이런 목적으로 능지형이 사용됐다는 증거가 있고, 살아 있는 상태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끔찍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저자들은 능지형의 주된 목적이 정말로 고통을 최대한 지속시키는 데 있었는지에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한다. 대부분의 경우 죄수는 초기에 심장이 단번에 칼로 찔림으로써 숨이 끊어지고, 신체가 토막나는 것은 그 뒤라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중국문화에서 능지형이 가장 가혹하게 받아들여졌던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사체가 여러 조각으로 나뉜다는 것은 내세에서도 그처럼 참혹한 몰골로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 특히 유교문화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육체의 보존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중국문화에서 능지형이 차지하는 맥락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할 의사도 없었던 18~19세기 서양인들은 능지형을 동양인의 원시성과 잔인성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증거로 받아들였다. 사실 근대 초기까지 서양은 중국 문화를 상당히 이상적으로 그리는 경향이 강했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죄수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신체를 자르거나 불에 태우고 뜨거운 물에 삶는 등의 혹형이 존재했다. 마녀사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유럽이 스스로의 힘을 키워가면서 중국에 대한 인식은 역전된다.
자신들이 간직한 혹형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 중국을 방문한 서양인의 눈에 중국에서 시행되고 있던 가혹한 형벌들은 동양을 아래로 보려는 인식을 강화시켜주는 좋은 소재였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적으로 이용됐다. 동양은 기독교의 정신으로 교화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여졌고, 제국주의 지배는 문명 이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문명의 시대로 편입시키는 숭고한 작업으로 둔갑한 것이다.
당시 능지형을 묘사한 그림이나 사진이 엽서나 책자의 삽화 형태로 서양에 유포됐다. 저자들은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오리엔탈리즘 이외에도 관음증과 사디즘, 페티시즘을 지적해 냈다. 이런 경향은 현대에서도 발견되는데 책은 대표적인 인물로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를 지목했다. 바타유는 시각예술과 문화 연구에 대한 선각자로 불리는데 에로티시즘을 다룬 저서 <에로스의 눈물>(1961)에 능지처참 사진을 싣고는 ‘고통 속에 경험하는 황홀경’으로 묘사했다. 저자들은 이 책에 등장하는 능지형에 대한 묘사와 해석은 왜곡이 너무 심한 데다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저자들은 지극히 자극적일 수밖에 없는 소재를 매우 절제된 형식으로 접근했다. 한국어판 서문과 결론 부분에서 사형제를 거론하며 또 한번의 지적 반전을 보여줬다. 중국 왕조의 법체계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우리 역사에도 능지처참은 등장했다. 사육신과 홍경래의 난 가담자들이 대상이었다. 실제 거행됐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능지형에 처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사형제 폐지가 전 세계적인 경향이지만 현재 공식보고된 사형의 4분의 3은 동아시아가 차지한다. 저자들은 “동아시아가 중국의 사법 전통의 그늘 아래에서 사법체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가로 분류되지만 헌법재판소는 최근 사형제를 존치시켰다. 아직 가설 수준이지만 동아시아에서 사형제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를 능지처참의 역사로까지 확장한 이 책에 대한 응답이 국내 연구자에게서 나와주길 바란다. <20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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