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구달의 책은 자서전에서부터 여러 권이 국내에 소개돼 있는데 1000쪽이 넘는 이 책은 꼼꼼함과 세세함으로 기를 질리게 만든다. 제인 구달이 어렸을 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구달의 사춘기와 처녀적 이야기 등 구달이 공인으로서 널리 알려지기 이전의 일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이처럼 세세할 수 있었던 것은 두가지로 보인다.
먼저 이 책은 원서가 2008년에 나온 것으로 돼 있는데 제인 구달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당시까지 생존해 있었다. 현재까지 살아있는지는 모르겠다. 제인 구달의 유모, 동생, 친구, 옛 애인 등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
그리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게 동물학자의 일이듯 어렸을 적부터 일기와 편지를 꾸준히 썼던 구달의 습관 때문에 개인적인 많은 문서자료들이 남았고, 이것들이 구달의 생애를 재구성하는데 훌륭한 재료가 됐다.
어렸을 적엔 평전이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조금 나이가 들고 나서부터는 평정이 꽤 손에 잡힌다. 아쉬운 점은 국내 인물에 대해선 평전문학이 그리 풍부하게 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립운동가와 근현대사 인물에 대한 평전 가운데 꽤 재밌게 읽었던 게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평전 저술자의 감정과 상찬에 가까운 과도한 평가가 개입된 경우가 많아 눈에 거슬린다.
이번주에 제인 구달 평전과 함께 막스 플랑크 평전도 나왔는데 선배가 읽고 리뷰를 썼다. 막스 플랑크 평전은 물리학 이론에 대한 설명이 많이 좀 딱딱하고 어려운 편이었다고 한다. 그에 비해 제인 구달 평전은 1000쪽 짜리 책을 들고 다닐려면 힘들긴 하겠지만 내용이 어렵지는 않다.
영웅 혹은 위대한 인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어려운 조건을 딛고 뛰어난 업적을 이룬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인생 자체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소설의 구성 원리를 보여준다. 그래서 잘 쓰인 평전은 해당 인물과 그가 속한 분야, 그가 살던 시대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뿐 아니라 소설 못지 않은 감동을 안겨준다. 과학계의 거목 제인 구달(76)과 막스 플랑크(1858~1947) 평전이 같은 시기에 번역 출간됐다. 이들의 희로애락을 따라가다보면 성실과 지혜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1960년 그녀가 야생의 침팬지들을 연구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오지로 들어가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드라마틱하다. 당시 그녀는 불과 스물여섯의 미혼 여성이었다. 책에 실린, 석유등불을 앞에 두고 왼손을 턱에 괸 채 현장일지 기록에 몰두하고 젊은 시절 그녀의 모습을 보자. 연출된 것이겠지만 미지의 세계에 가장 가까이에 가 있으면서도 무척이나 평온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거대한 동굴의 입구 혹은 침팬지의 검은 털을 연상시키는 어두운 배경과 대비를 이루며 심장 뛰는 판타지를 불러일으킨다.
영국 중산층 가정의 첫째딸로 태어난 제인은 어려서부터 개와 고양이에서 달팽이, 지렁이, 애벌레까지 유독 동물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한살 생일에 어린아이만한 침팬지 봉제인형을 선물받는다. 그녀는 이 인형을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주빌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인형이 그녀의 인생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유년 시절 탐독했던 <둘리틀 선생 아프리카로 가다> <타잔> 등의 시리즈가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동경하게 만들었다.
당시까지 영장류 연구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찰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녀는 정반대로 침팬지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함께 생활했다. 식별가능한 대상에게 위트 넘치는 이름을 붙이면서 교감을 시도했다. 그녀가 1년 동안 탄자니아 콤베 지역에서 진행한 침팬지에 관한 연구는 학계를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초식동물로 알려졌던 침팬지가 육식을 하는 모습을 관찰했고, 도구를 이용해 땅속 깊은 곳의 개미를 잡아먹는 광경을 목격했다. ‘도구적 인간’이라는 말이 여전히 인용되곤 하지만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게 당시의 공인된 학설이었다. 이어지는 후속 연구는 더욱 놀라웠다. 지금이야 침팬지를 비롯한 영장류뿐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이 각자의 개성과 감정이 있다는 게 상식이 됐지만 이런 사실을 과학적으로 처음 관찰하고 체계적으로 증명한 게 제인이었다. 그래서 제인은 이 책의 부제처럼 ‘인간을 다시 정의한 여자’가 됐다.
먼저 이 책은 원서가 2008년에 나온 것으로 돼 있는데 제인 구달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당시까지 생존해 있었다. 현재까지 살아있는지는 모르겠다. 제인 구달의 유모, 동생, 친구, 옛 애인 등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
그리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게 동물학자의 일이듯 어렸을 적부터 일기와 편지를 꾸준히 썼던 구달의 습관 때문에 개인적인 많은 문서자료들이 남았고, 이것들이 구달의 생애를 재구성하는데 훌륭한 재료가 됐다.
어렸을 적엔 평전이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조금 나이가 들고 나서부터는 평정이 꽤 손에 잡힌다. 아쉬운 점은 국내 인물에 대해선 평전문학이 그리 풍부하게 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립운동가와 근현대사 인물에 대한 평전 가운데 꽤 재밌게 읽었던 게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평전 저술자의 감정과 상찬에 가까운 과도한 평가가 개입된 경우가 많아 눈에 거슬린다.
이번주에 제인 구달 평전과 함께 막스 플랑크 평전도 나왔는데 선배가 읽고 리뷰를 썼다. 막스 플랑크 평전은 물리학 이론에 대한 설명이 많이 좀 딱딱하고 어려운 편이었다고 한다. 그에 비해 제인 구달 평전은 1000쪽 짜리 책을 들고 다닐려면 힘들긴 하겠지만 내용이 어렵지는 않다.
학계통념 뒤흔든 ‘침팬지들의 엄마’
제인 구달 평전 - 데일 피터슨 지음, 박연진.이주영.홍정인 옮김/지호 |
영웅 혹은 위대한 인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어려운 조건을 딛고 뛰어난 업적을 이룬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인생 자체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소설의 구성 원리를 보여준다. 그래서 잘 쓰인 평전은 해당 인물과 그가 속한 분야, 그가 살던 시대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뿐 아니라 소설 못지 않은 감동을 안겨준다. 과학계의 거목 제인 구달(76)과 막스 플랑크(1858~1947) 평전이 같은 시기에 번역 출간됐다. 이들의 희로애락을 따라가다보면 성실과 지혜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제인 구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침팬지들의 엄마’다. 새끼 침팬지를 품에 안고 있거나 침팬지와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녀의 이미지이다.현재 76세인 그녀는 한국을 여러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데 뒤로 질끈 묶은 백발의 생머리, 훤칠한 키와 꼿꼿한 자세는 온화한 카리스마를 풍긴다. 그녀는 동물과 자연에 대한 깊은 우애와 연대, 평화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다.
1960년 그녀가 야생의 침팬지들을 연구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오지로 들어가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드라마틱하다. 당시 그녀는 불과 스물여섯의 미혼 여성이었다. 책에 실린, 석유등불을 앞에 두고 왼손을 턱에 괸 채 현장일지 기록에 몰두하고 젊은 시절 그녀의 모습을 보자. 연출된 것이겠지만 미지의 세계에 가장 가까이에 가 있으면서도 무척이나 평온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거대한 동굴의 입구 혹은 침팬지의 검은 털을 연상시키는 어두운 배경과 대비를 이루며 심장 뛰는 판타지를 불러일으킨다.
영국 중산층 가정의 첫째딸로 태어난 제인은 어려서부터 개와 고양이에서 달팽이, 지렁이, 애벌레까지 유독 동물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한살 생일에 어린아이만한 침팬지 봉제인형을 선물받는다. 그녀는 이 인형을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주빌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인형이 그녀의 인생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유년 시절 탐독했던 <둘리틀 선생 아프리카로 가다> <타잔> 등의 시리즈가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동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공부에 별 흥미를 느끼지도 않았고, 가정 형편이 학비를 지원받을 만큼 넉넉지 못했다. 대신 비서양성을 위한 학원을 다녀 비서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녀가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뛰어난 성과를 낳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녀는 당시 학계의 고루한 연구방법론은 몰랐지만 동물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애정이 있었고, 그래서 혁신적인 방식으로 침팬지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침팬지 연구로 성과를 낸 뒤였다.
당시까지 영장류 연구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찰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녀는 정반대로 침팬지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함께 생활했다. 식별가능한 대상에게 위트 넘치는 이름을 붙이면서 교감을 시도했다. 그녀가 1년 동안 탄자니아 콤베 지역에서 진행한 침팬지에 관한 연구는 학계를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초식동물로 알려졌던 침팬지가 육식을 하는 모습을 관찰했고, 도구를 이용해 땅속 깊은 곳의 개미를 잡아먹는 광경을 목격했다. ‘도구적 인간’이라는 말이 여전히 인용되곤 하지만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게 당시의 공인된 학설이었다. 이어지는 후속 연구는 더욱 놀라웠다. 지금이야 침팬지를 비롯한 영장류뿐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이 각자의 개성과 감정이 있다는 게 상식이 됐지만 이런 사실을 과학적으로 처음 관찰하고 체계적으로 증명한 게 제인이었다. 그래서 제인은 이 책의 부제처럼 ‘인간을 다시 정의한 여자’가 됐다.
제인의 인생역정에는 다양한 행운이 작용했다. 비서학원에서 만난 친구의 아버지가 케냐에서 농장을 경영하게 되면서 케냐를 방문할 기회를 잡은 것, 현지에서 세계적인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를 만나고 그의 눈에 들어 침팬지 연구자로 선택된 것 등이다. 아프리카 오지까지 찾아와 함께 생활하면서 전폭적인 지지를 해준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물론 그녀가 어린 시절 타잔의 애인 제인을 질투하며 깊이 간직했던 야생의 삶에 대한 꿈과 의지를 접지 않았기에 이런 기회가 행운이 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성공한 뒤에도 오만해지거나 자신의 성과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라 더욱 진전된 연구, 인간과 동물의 복지를 위해 사용했다는 점은 그녀를 더욱 위대해 보이게 한다. 1000쪽이 넘는 이 책에는 소녀 시절의 연애담에서부터 결혼과 출산, 이혼, 재혼과 사별 등 극히 개인적인 내용까지 시시콜콜하게 담고 있다.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 한들 이처럼 빠짐없이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써내려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20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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