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프랑스를 출판강국이라고 한다. 우리가 어떤 나라를 출판강국이라고 할 때 출판물의 다양성, 탄탄한 독자층 등을 지칭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 문화적 저력이 되는데, 이런 문화적 파워는 한 나라의 경계 밖을 넘어 다른 문화권 독자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게 만들고 그 공감이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만든다.
우리가 흔히 '만화'라고 부르는 장르는 영어로는 '코믹(comics)'에 해당한다. 우리가 만화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개념 그대로이다. 이와 달리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로 불리는 장르가 있다. 그림으로 그린 소설 정도 되시겠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만화라고 하면 약간 가볍다는 이미지인데 그래픽 노블은 그것보다는 좀 더 진중하다고 할 수 있다.
<평화의 사진가>가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프랑스 사진작가가 1986년 국경없는 의사회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의료구호활동을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책이 나오게 된 과정도 재미있다. 이 사진작가는 당시 1500여장이 넘는 사진을 찍어왔는데 그중 6장이 프랑스 신문에 게재됐다고 한다. 나머지는 밀착인화(필름 크기 그대로 커다란 인화지에 여러컷을 인화한 것)를 해서 보관하고 있었다. 만화가 친구가 젊은 시절부터 그 이야기를 간간히 들었고, 밀착인화된 사진을 보고는 만화로 그려볼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2007년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주요 작품으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며칠 뒤 사진작가는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책이 무겁고 가격도 부담스럽긴 하지만 아프간의 모습, 극한의 상황에서 구호활동을 펼치는 의료진의 프로페셔널하고도 감동적인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어 오히려 감동을 준다.
-소련침공 시절 의사회 구호활동 다뤄
-전쟁이면의 삶과 죽음 생생하게 포착
평화의 사진가 - 디디에 르페브르 사진.글, 에마뉘엘 기베르 그림.글, 권지현 옮김/세미콜론 |
냉전시절 소련에, 새천년이 시작되고 나서는 미국에 침략을 당하며 모순에 찬 고통을 견디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들의 얼굴에 고통과 분노, 체념 외의 표정이 있기는 할까? 1986년 ‘국경 없는 의사회’ 의료구호팀과 함께 아프간으로 향하기 전 29살의 젊은 사진작가 디디에 르페브르도 비슷한 질문에 휩싸여 있지 않았을까?
소련의 침공에 맞서 싸우고 있는 아프간으로 향하는 패기만만한 르페브르는 심각함보다는 호기심과 설렘에 휩싸인 모습이다. 그는 나름대로 현지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위험에 대해서도 교육을 받지만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숲으로 캠핑을 나서는 보이스카우트 소년의 모습이랄까. 현지 사정에 밝고 경험이 많은 의료진과 동행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이었으리라.
목적지에 도착한 일행은 본격적으로 의료활동을 펼친다. 전투 도중 참혹한 부상을 당한 무자헤딘(‘성스러운 이슬람 전사’라는 뜻의 아프간 무장 게릴라), 폭탄 파편에 맞아 화상을 입거나 신체가 찢어지고 잘려나간 아이들, 앞을 못보거나 걷지 못하는 노인들, 그리고 질병·출산·사고 등 일상의 환자들이 끝도 없이 밀려든다. 이들은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질지언정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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