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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리뷰]정치를 말하다

그대, 왜 침묵하는가? “데모크라시의 길은 직접민주주의 뿐”
정치를 말하다 - 10점
가라타니 고진 지음, 고아라시 구하치로 들음, 조영일 옮김/비(도서출판b)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비평가이자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69)이 국내에 본격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근대문학이 정치·사회·윤리적 역할을 떠맡았지만 이제 근대문학의 그런 역할은 끝났다는 주장을 담은 그의 저서 <근대문학의 종언>은 2000년대 한국 문학계에 큰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여기저기 그를 인용한 글들이 자주 보이기에 그가 쓴 책을 처음 집어들었던 게 10년 전쯤이었다.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이산)이었는데 한마디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일본에서 신좌익운동이 붕괴한 70년대에 쓰여진 이 책은 식상할 대로 식상해진 마르크스 해석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극찬을 받았다고 하는데 에세이 형식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나의 지적수준으로선 요령부득이었던 것이다.
며칠 동안 이 책을 잡고 끙끙대다가 던져버린 뒤로 나에게 가라타니는 요령부득인 상태로 계속 남아 있었다.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된 대담집을 번역한 <정치를 말하다>는 나처럼 ‘가라타니 읽기’에 도전했다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거나 처음 입문하려는 독자에게 꼭 알맞은 책이다.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대학 시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사상적 궤적을 대화체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가 60년대 일본을 격렬하게 달궜던 ‘안보투쟁’을 어떻게 바라봤고, 왜 경제학을 공부하다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으며, 어떻게 문학평론가가 됐다가 결국 문학을 포기했는지, 단체를 만들고 사회참여를 하다가 왜 단체를 해산해 버렸는지 등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그가 썼던 책들에 대한 요약과 부연이 담겨 있어 해당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논지를 파악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주목했던 생산과정이 아니라 유통과정이라는 분석, 국가를 경제적 하부구조에 의해 규정되는 상부구조로 다루는 기존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국가는 다른 국가에 대하여 존재한다’는 등 그의 독특한 시각들 말이다.
제목에도 나와 있듯 가라타니가 이번 책에서 던진 주요 메시지는 정치와 민주주의, 평화다. 가라타니는 90년대에 만개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외적으로는 제국주의, 내적으로는 전제주의로 귀결됐다고 보았다. 그는 특히 일본사회에서 노조가 파괴되고 대학이 민영화되면서 중간세력이 없어졌고 전제사회가 됐다고 말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개개인이 투표를 통해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고 하지만 이는 곧 개인에게 가능한 것은 대표자를 뽑는 것뿐이다.
가라타니는 전제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은 대의제 이외의 정치적 행위를 찾는 것이라면서 ‘데모’, 다른 말로 하자면 직접민주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대의제란 대표자를 뽑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민중이 참여하는 데모크라시가 아닙니다. 데모크라시는 의회가 아니라 의회 바깥의 정치활동, 예를 들어 데모 같은 형태로만 실현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비평지 ‘비평공간’을 창간했다가 닫아버리고 새로운 ‘혁명운동’으로 생각하며 ‘생산·소비협동조합운동(NAM)’을 조직했다가 일거에 해산해 버린 이유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어차피 끝날 거라면 아직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보다 그만두는 쪽이 좋다고 생각”해 그랬다는 것이다. 가라타니에 천착해 한국 기성문학계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있는 역자 조영일은 이에 대해 “실패가 아니라 엘리트의 자기우상화에 대한 강력한 거부였던 셈”이라며 “가라타니는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을 그 자신에게도 철저하게 적용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20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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