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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반죽글

아이와 함께 대형매장 가기


어린이들은 언제부턴가 대형마트에 가는 것이 취미가 됐다. 꿈속에서 그리던 장난감들이 현실의 눈 앞에 펼쳐져 있고, 떼쓰기 혹은 부모와의 심리게임에서 운좋게 이기면 그중 하나를 손에 쥘 수도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어차피 식료품 등속을 정기적으로 사야하고 아이와 함께 이것저것 보면서 눈요기를 할 수 있기에 그리 거부감 없이 마트에 들른다.

우리 집은 일주일에 한두번은 아이와 함께 마트에 간다. 그런데 여섯살난 아들 녀석이 물건에 대한 집착, 자신의 선택에 대한 고집이 세지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찾았다가 신경전을 끝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아이는 눈물을 찔끔거리고, 부모는 언성을 높이는 경우 말이다.

지난주말 아이가 만들기 책에서 발견한 것을 해보고 싶다고 해 마트엘 갔다. '아이 클레이'라고 색색깔의 고무찰흙의 일종을 사기 위해서다. 전에 세트로 된 것을 산 적이 있기 때문에 플라스틱 칼이나 찍는 틀 같은 것은 집에 굴러다니고 있다. 그래서 가기 전 아이에게 다짐을 받았다. 만들기 도구는 집에 많이 있으니까 아이 클레이만 낱개로 사자고. 아이도 수긍했고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막상 아이 클레이 매대 앞에 서자 아이의 마음은 심하게 흔들렸다. 아이의 눈길을 끄는 화려한 캐릭터로 치장된 세트 상품에 '꽂혀' 버린 것이다. 약속을 상기시켰더니 삐죽삐죽 눈물을 흘린다. 이 모습을 보면서 슬슬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일단 애 엄마가 설득을 시작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엄마는 소릴 지르고 딴데로 가버리고 아이의 눈에선 더 많은 눈물이 쏟아졌다.

Treasure Megazord DX 02
Treasure Megazord DX 02 by Jinho.Jung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이번엔 내가 나섰다. 어르고 달래고, 눈을 부라려 봐도 아이는 오로지 낱개만 아니면 된다는 식이다. 세트 상품을 하나 고르며 "아빠 이건 어때요?"라고 묻고, 다시 다른 세트 상품을 고르며 "이것도 안돼요?"라고 묻는다. 나는 나름 합리적으로 설명해 납득시켜 보려 애쓴다.
 
"네가 지금 원하는 것은 아이 클레이지 도구가 아니지?"
"네"
"근데 네가 고른 것은 집에 많이 있는 도구들까지 들어있어. 그래서 비싼거야"
"......"
"그러니까 여기 도구 없이 아이 클레이만 들어있는 것으로 사자"
"..... 으앙....."

결국 내 인내도 한계에 도달했다. "그냥 가자. 아이 클레이 없어!"라고 언성을 높이며 아이 손을 이끌고 나왔다. 이걸 애 엄마가 다시 한번 반복했고, 마지막에 내가 다시 한번 시도했다. 결국 1시간30분이 지났고 아이는 빈손으로 차에 올라타야 했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슬피도 울어댔다.

사실 가격이 얼마 차이가 나지도 않는데 애가 하고 싶은대로 해줄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안들었던 것은 아니다. 애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와 함께 무언가 물건을 사러 가면 항상 겪는 갈등이다.

심란하던 차에 이번주에 나온 <상처입지 않을 권리>(강신주/프로네시스)을 접했다. 아, 이거다 싶었다.

아이는 자라가면서 자본주의 화폐경제와 소비문화에 편입돼 간다. 요즘은 미디어가 워낙 편재하고 있어 과거보다 편입 시기와 속도는 더 빨라졌다. 아이의 욕망이라고 해서 어른보다 덜할 리 없다. 오히려 더 심할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의 욕망을 가로막는 것이 부모다. 어른의 경우 돈의 적음이 자신의 소비 욕망을 억압하는 요소다.
 
이 둘 사이의 간극.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이것이다. 요즘 아이와 함께 마트엘 가면서 부쩍 느꼈던 불편함의 정체, 그리고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렵기로 정평이 난 독일과 프랑스 철학자들의 사상의 핵심을 뽑아 읽기 쉽게 제공했다. 철학박사로서 학교 밖 강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강의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래서 친절하다. 설명이 너무 길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정도면 수작이다.

아이와 마트 얘긴 어떻게 됐냐고? 당분간 마트엔 금족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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