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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산티아고, 넌 늘 똑같구나

“또 산티아고야?”

새로 나온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김희경/푸른숲)을 받아들고 떠오른 생각이었다. 올해 들어서만 산티아고 가는 길을 소재로 한 세번째 책이다. <비아델라플라타 : 산티아고 가는 다른 길>(김효선/바람구두), <산티아고 가는 길 : 카미노 데 산티아고>(최미선/넥서스BOOKS)가 먼저 나왔다. ‘산티아고’를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지난해에 나온 것까지 헤아리면 번역서를 포함해 10권이 훌쩍 넘는다. 여행서 모으기가 취미인 동기에게 산티아고 여행서 좀 보자고 했더니 다음날 여섯권을 재까닥 가져왔다. 모두 지난 2년 이내에 나온 것들이다.

스페인 북서쪽에 있는 작은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한 명인 야곱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산티아고는 유럽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순례의 대상으로 자리잡았고, 여러 갈래의 순례길이 만들어졌다. 특히 프랑스의 소도시 생 장 피르포르에서 산티아고까지 가는 764㎞의 순례길이 유명한데, 걸어서 가자면 30일 남짓 걸린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 어떠하기에 많은 한국인이 고생스럽게 이곳을 걷고, 그 많은 책이 쏟아지는 것일까.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의 저자는 “독일인과 한국인을 빼면 카미노(길을 뜻하는 스페인어)의 순례자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 같다”고 썼을 정도다.

국내에서 산티아고 가는 길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인기작가 파울로 코엘류가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얻은 깨달음을 소재로 쓴 에세이 <순례자>가 2006년 국내에 소개됐고, 여행작가 김남희씨의 책도 비슷한 시기에 나오면서 관심을 확산시켰다. 제주도 올레길이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조성되기도 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 각광받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세대론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소재로 책을 쓴 사람들은 40세 언저리의 여성들이 많다. 386세대다. 이들은 교복자유화 세대, 해외여행자유화 세대다. 자유분방하고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이들이 기성세대가 되면서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됐고 색다른 여행, 감동적인 여행을 갈구했는데, 산티아고 가는 길이 소구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 힘들기는 하지만 히말라야 트레킹처럼 험난하지 않은 데다 안전이 담보돼 있다는 것도 여성들에게 인기를 끄는 점이다. 유럽과 외국인에 대한 동경심 역시 산티아고 가는 길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산티아고 여행서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 싶은데 여건상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해외여행이 자유화됐지만 배낭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해 한이 맺혔던 사람들이 이처럼 색다른 여행서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다룬 여행 에세이들은 공통점이 많다. 세세한 내용이야 다르지만 스페인 시골의 이국적인 풍광을 담은 사진들, 오랫동안 걸어야 하는 데서 오는 고통과 이를 극복하는 순간 느끼는 희열, 순례길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그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 이국적인 음식들, 생경한 지명과 스페인어 몇 마디,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 대한 성찰 등이 하나의 정형화된 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산티아고 가는 길을 소재로 한 책들이 나올 때마다 기시감이 더 깊어진다. <2009.5.15>
  • 딸기21 2009.07.12 10:37 신고

    솔직히 난 울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유럽에 몰두할 시간에 세계의 '다른쪽'에 조금만 더 시선을 돌리면 그 몇 배는 더 얻어건질(저급한 표현은 죄송...)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ㅎㅎㅎ
    파울로의 <연금술사>는 누가 뭐래든 재밌게 읽었고, 절대 평가절하하고 싶지는 않아요. 나에겐 또 나대로의 <연금술사>와 산티아고의 길에 대한 추억(?)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제대로 연금술사의 길을 따라가려면, 스페인에서 머물지 말고 바다를 건너 사막을 걸어야 제대로 따르는 것 아닐까 싶어요. 탕헤르와 페스와 사하라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고 스페인에 머물면서 색다르고 이국적이고 개성있다고 주장하는 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