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을 보면 솔직히 일본이 부럽다. 유럽의 문화사를 이처럼 방대하게 자국어로 쓰고 읽을 수 있는 그들의 문화적 저변의 탄탄함 말이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이전부터 유럽과 교유하며 안목을 키워온 저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 이면엔 한국을 비롯해 그들의 지배를 받았던 아시아의 신음이 대가로 지불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러운 마음이 든다. 일본 역시 출판계가 어렵다는 소식이 들려오긴 하지만 이런 대작들이 척척 나오는 걸 보면 한국과는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다.
과학사에 관한 이 책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생소한 인명과 과학기술에 대한 설명에 크게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사에 문외한인 사람이 여기에 집중하면 900쪽에 달하는 책을 끝까지 읽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세밀한 부분에 얽매이지 않고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서술돼 있다는 점이다.
전작인 <자력과 중력의 발견>이 2007년 국내에 번역됐다는데 한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이 든다. 저자인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약력이 매우 특이하다. 책에 나온 저자 약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요약하자면 '스스로 민중이 된 천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저술로서 자산의 선택을 정당화 하고 있는지 모른다. 혹시라도 일본 도쿄에 갈 기회가 있으면 한번 인터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천재 1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는 수년전 발언을 떠올려 본다. 당시 ‘천재경영론’으로 명명되면서 널리 회자됐던 발언에 깔린 지극히 엘리트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사실 뿌리가 깊고 지배하는 영역도 넓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예외가 아니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소수의 천재들이라는 사고방식이다.
과학사에 관한 이 책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생소한 인명과 과학기술에 대한 설명에 크게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사에 문외한인 사람이 여기에 집중하면 900쪽에 달하는 책을 끝까지 읽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세밀한 부분에 얽매이지 않고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서술돼 있다는 점이다.
전작인 <자력과 중력의 발견>이 2007년 국내에 번역됐다는데 한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이 든다. 저자인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약력이 매우 특이하다. 책에 나온 저자 약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941년 출생. 1964년 도쿄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 석사를 거쳐 박사과정에 재학하던 중, 일본인 최초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 선생의 부름을 받고 교토대학으로 옮겨 소립자 물리학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차세대 노벨상 수상자'로 불리기도 했다.
60년대 말 도쿄대 전공투 의장이 되면서 일본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학생운동의 한가운데 섰고, 1969년에는 '평범하지만 자각한 인간이 되어 한 사람의 물리학도로서 생을 살아가고 싶다'는 글과 함께 대학을 떠났다. 이후 대입학원에서 물리를 가르치며 여러 권의 물리학 관련 저서와 번역서를 냈고, 20여 년의 노력 끝에 <과학의 탄생>을 썼다. 이 책으로 마이니치 출판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60년대 말 도쿄대 전공투 의장이 되면서 일본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학생운동의 한가운데 섰고, 1969년에는 '평범하지만 자각한 인간이 되어 한 사람의 물리학도로서 생을 살아가고 싶다'는 글과 함께 대학을 떠났다. 이후 대입학원에서 물리를 가르치며 여러 권의 물리학 관련 저서와 번역서를 냈고, 20여 년의 노력 끝에 <과학의 탄생>을 썼다. 이 책으로 마이니치 출판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요약하자면 '스스로 민중이 된 천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저술로서 자산의 선택을 정당화 하고 있는지 모른다. 혹시라도 일본 도쿄에 갈 기회가 있으면 한번 인터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책과 삶]과학혁명 디딤돌 놓은 16세기 장인과 기능공들
16세기 문화혁명 -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남윤호 옮김/동아시아 |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천재 1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는 수년전 발언을 떠올려 본다. 당시 ‘천재경영론’으로 명명되면서 널리 회자됐던 발언에 깔린 지극히 엘리트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사실 뿌리가 깊고 지배하는 영역도 넓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예외가 아니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소수의 천재들이라는 사고방식이다.
근대과학의 역사 역시 갈릴레이, 뉴턴, 케플러, 베이컨 등 걸출한 천재들로부터 출발한다. 이들은 17세기 유럽에서 살았다. 그래서 17세기를 과학혁명의 세기라고 부른다. 전작 <과학의 탄생>(일본 제목은 ‘자력과 중력의 발견’)으로 찬사를 받았던 지은이는 후속작에 해당하는 이 책에서 17세기 과학혁명 이전에 초점을 맞췄다. 17세기 천재들의 업적에 가려 조명을 받지 못했던 16세기의 장인·기능공 등 ‘민중’들이다.
거칠게 말해 중세과학과 근대과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머리와 몸으로 대비된다.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중세 시대 학자들은 실험 등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은 참된 지식이 아니라고 했다. 진리를 머리로 탐구하는 것만이 진정한 학문이라고 봤던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상아탑에 갇힌 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의사들은 고전에 나오는 인체의 구조나 생명의 원리 등 이론만 외우고 읊조렸을 뿐이다. 실제 수술이나 조제를 하는 사람들은 천대받았다.
그러나 16세기 장인·기능공들은 ‘고귀한 언어’ 라틴어와 고전은 배운 적 없었지만 몸을 움직여 현장에서 체득한 지식을 축적하고 스스로 느낀 궁금증을 실험으로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틴어가 아닌 속어(고국언어)로 글을 썼다. 당시 유럽에서 융성한 목판 인쇄술은 미술, 건축, 의학, 군사학, 기계학, 천문학, 지리학 등 모든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문화혁명’을 전파했고 후세가 이를 확인할 좁다란 통로를 남겼다.
물론 이들에게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실험을 통해 비교하고 검증하고 자신의 가설을 입증시켰지만 근대과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받는 ‘이론화’까지는 나가지 않았다. 반면 17세기 학자들은 이들이 멈춘 곳에서 출발했다. 앞서 기능공들을 업신여기던 아카데미즘이 아카데미 바깥에서 이룩된 지식과 방법론을 재빨리 흡수해 이론화함으로써 과실을 따먹었다는 것이다.
천재와 영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라 하더라도 받아줄 대지가 없었더라면 천재란 존재할 수 없다. 결국 지은이가 말하고자 한 것도 이것이다. 그는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의 잊혀졌던 방대한 역사적 기록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 ‘민중들의 르네상스’를 온전히 복원시켰다. 르네상스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시기의 유럽 문명사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이 책은 ‘명저’의 대접을 받을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20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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