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구워진 글

[서평]공자, 최후의 20년

주변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일어선다는 '화평굴기'를 도모하던 중국이 서서히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아시아, 나아가서 세계를 무대로 목소리에 힘을 주고 있다. 경제력, 군사력만으로는 패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중국도 잘 알고 있다. 문화권력, 즉 소프트 파워에 대한 중요성은 이미 미국에서 잘 연구돼 있다. 중국 정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공자. 중국 정부는 공자를 국내용, 국외용으로 널리 활용하고 있다. 국내적으론 봉건계급제 비스무리하게 돼 있는 중국 내부의 인민을 다스리기 위한 것으로, 외부적으론 중국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기 위한 것으로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최근들어 쏟아져 나오는 공자 관련 책들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특히 한자에 무척이나 약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름대로 옥석을 가려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나온 것이 이 책이다. 공자의 후반부 인생에 천착함으로써 공자의 사상에 접근하는 우회로를 택했다. 인간 공자, 그리고 공자의 사상에 그리 자세히 알지 못하는 초심자가 큰 거부감 없이 공자를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성인 공자의 ‘인간적 고뇌’
-“제후여, 나를 등용하시오” 55세에 떠난 ‘방랑 13년’
-권력자들 냉대·제자들과 불화까지…그래도 놓지 않은 ‘이상국가’ 꿈
공자, 최후의 20년 - 10점
왕건문 지음, 이재훈.은미영 옮김, 김갑수 감수/글항아리

한자세대로부터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몸은 한글세대에 속하는 대한민국의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공자’(孔子)는 좀 어정쩡한 존재다. 학교에서 동양의 위대한 성현으로 칭송받는 공자에 대해 배우긴 했지만 그가 남긴 사상의 깊이를 음미하려면 벽이 너무 높다. 우선 한자의 벽이 공고하고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종횡무진으로 이어지는 고사(故事)들과 이에 따라붙는 각주들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그리고 공자의 ‘말씀’은 완고한 훈장님의 말씀을 연상시킨다. 오죽하면 ‘공자님 말씀’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한편으론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굳이 공자의 사상을 깊이 알아야 할 이유를 찾기도 쉽지 않다.
대만 출신의 중국 고대사 전공자가 쓴 이 책은 충효예(忠孝禮)와 같은 공자의 사상 그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그의 사상을 소개하고 해설·평가하는 책이 아니다. 원대한 이상을 품었던 공자가 나이가 들어 자신의 뜻을 펼칠 곳을 찾아 방랑하면서 겪었던 초조감, 제자들과의 불화, 그에 따른 인간적 고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 상영했던 저우룬파 주연의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와 맥을 같이한다.
사실 공자의 일대기는 살아선 제대로 뜻을 펼쳐볼 기회조차 변변히 잡지 못했던 다른 영웅들의 스토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춘추시대 말기인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에서 태어난 공자는 어릴적 부모를 여의었지만 학문에 매진했고 점차 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명성이 높아지면서 조언을 구하는 권력자들이 적지 않았다. 공자는 52세 되던 해에 요즘으로 치면 대법관쯤 되는 자리에 올랐다. 자신이 세운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이상국가의 원리를 현실에 적용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는 무너진 봉건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권력자에게 건의하고 행동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고작 3년 만에 그는 관직에서 물러나 제자들을 이끌고 고국을 떠났다. 13년이라는 긴 방랑의 시작이었다.


공자는 좌절하면서도 이상으로 삼았던 봉건적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다. 봉건질서가 무너진 사회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간 도가(道家) 철학과 공자 철학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그림은 수레를 타고 가던 공자가 제자를 시켜 밭을 갈고 있던 은자(隱者)에게 나루터를 묻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방랑의 여정은 위험하고 고통스러웠지만 “나를 등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1년이면 기초를 세울 것이며, 3년이면 반드시 성과를 이룰 것이다”라고 호언한 공자의 자신감을 건드리지 못했다. “60세가 되기 전의 공자는 시종 완고하게 운명을 향해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끊임없이 현실 속에서 정치적인 출구를 찾으려고 했다. 언젠가는 자신의 이상이 실현될 날이 오리라고 굳게 믿었다. 험난하고 고되다고 하더라도 그때까지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점차 공자의 탄식이 잦아졌다. 육체의 늙어감도 초조감을 더했다. 한 제자가 “여기 좋은 옥이 있는데 이것을 궤짝에 숨겨둘까요? 좋은 가격에 팔아야 할까요?”라고 묻자 공자는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지금 좋은 가격을 쳐줄 상인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네”라고 답했다. 답답함을 느끼기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곤궁에 처하자 제자들은 “우리는 코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데 왜 정착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이리저리 방황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번민했다. ‘나의 도에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내가 왜 여기서 곤란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공자는 살아있을 당시에도 각국의 권력자들 사이에서 높은 학식과 깊은 지혜로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는 왜 정착하지 못했는가? 그의 사상은 지극히 현실과 밀접한 정치사상이었다. 이상의 실현을 위해선 현실의 권력이 필요했다. 끊임없이 권력자들을 찾아다닌 이유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 빌붙을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자신이 세운 원칙에서 한치라도 어긋남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솔직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권좌를 놓고 골육상쟁을 벌이고 신하가 왕을 죽이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상을 바로잡는 것이 그의 이상이었으나 오히려 상황이 그러했기에 그의 사상은 현실에서 발붙일 곳이 좁았던 것이다.
결국 공자는 68세의 노구를 이끌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자의 초기 제자들은 실력을 인정받아 현실정치의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공자를 갈등의 구덩이로 몰아넣었다. 정치에 몸을 담은 제자들의 행동은 그가 가르치고 토론했던 것들과 벗어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질타받던 한 제자는 “선생님의 도는 너무도 크고 원대합니다. 그러니 천하의 어느 나라에서도 받아들여지기가 힘듭니다.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보통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의 도를 조금이라도 낮추지 않으십니까?”라며 항변했다.
2500년 전 중국 땅에 살았던 공자는 확실히 오늘날의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물론 20세기 들어 등장한 중국의 권력자들이 그를 처참하게 짓밟더니 21세기 들어서는 자신을 짓밟던 바로 그 정권에 의해 다시 대대적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 속내가 공자의 봉건적 사상을 전용해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고 권력을 지키려는 데에 있음은 뻔하다. 그러나 인류가 태어난 이래 한번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은 적이 없었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럼에도 이상을 추구하는 자의 고뇌와 번민을 공자 최후의 20년을 통해 고찰하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2010.2.27>

'~2010 > 구워진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세계금융위기 이후  (0) 2010.03.08
[서평]16세기 문화혁명  (0) 2010.03.08
[서평]나는 노비로소이다  (0) 2010.02.20
[서평]인빅터스...용서는 증오보다 강했다  (0) 2010.02.13
[서평]감정노동  (0) 2010.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