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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립 교수의 글은 전작 <미국 문명사>를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던터라 주저 없이 골랐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오래 전에 나왔던 책을 대폭 개작한 것이었는데 권용립 교수 책의 특징은 어깨에 힘을 빼고 잔잔하게 말하는 듯 하지만 엄청난 참고문헌으로 짠 촘촘한 그물로 미국 정치 문명의 실체를 건져올린듯한 느낌을 준다. 더구나 영어 번역투이거나 지극히 논문체인 국내 정치학자들의 책들-대부분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그들은 어쩌면 한글보다 영어로 글을 쓰고 읽는게 더 편할지 모른다-보다 눈에 잘 들어온다.

이 책에 대한 평을 쓸려고 저자의 전작을 다시 들춰봤더니 소재가 미국 국내정치냐, 외교 정책이냐의 차이만 있을뿐 중심 분석틀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 덕분에 전에 봤던 이삼성 교수의 책도 다시 들춰봤고, 서평에 인용은 하지 않았지만 세이모어 마틴 립셋의 <미국 예외주의>도 다시 꺼내다 펼쳐봤다. 이삼성 교수의 책은 10년 가까이 지난 책이지만 이 분야, 특히 미국 주도의 힘의 정치를 자세하게 다뤘다. 립셋은 미국 정치학회장을 지낼 정도로 저명한 정치학자인데 네오콘 1세대인만큼 '미국 예외주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면서 타국과의 비교 등을 통해 이를 보여주고자 했다.

권용립 교수의 이번 책은 이 분야에 대한 국내 저자의 책으로선 쉽게 흉내내지 못할 경지로 보인다. 물론, 저자의 시각에 대해선 이견이 제기될 부분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어도 두꺼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해주는 미덕은 있다.

미국 외교의 지향점은 제국
미국 외교의 역사 - 10점
권용립 지음/삼인

신문의 국제면을 한번 펴보자. 어느 신문이라도 좋고 아무 날짜라도 좋다. 미국에 관한 뉴스가 빠져 있는 국제면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내기 해도 좋다. 한국 신문만 그럴까. 세계 모든 나라에서 국제뉴스의 중심엔 미국이 있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지니는 영향력의 방증이다.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이 오늘날 지구인의 삶에 있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미국은 영향을 미친다.
21세기의 시작(2001년)과 함께 출간된 <세계와 미국>(한길사)의 지은이 이삼성은 이런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과 세계에 관한 연구는) 우리의 존재양식, 우리의 사유양식, 결국 우리 자신의 문명 그 자체에 대한 연구일 수밖에 없다.” 세계 질서의 구조와 향방을 이해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과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과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 될 터인데 오늘날 세계질서의 구조를 주조한 것이 바로 미국이라는 뜻이다.
<미국 외교의 역사>를 쓴 권용립은 ‘특정한 시대에 일정한 공간을 장악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뜻하는 ‘문명’의 시각에서 미국의 정치와 외교를 분석한 저작들을 잇따라 발표해 왔다. 보통 미국 외교 전문가들의 책은 길게는 냉전시대와 탈냉전시대, 짧게는 9·11 이후의 미국을 분석대상으로 삼지만 권용립은 시야를 크게 넓혀 미국 건국시기부터 현재까지를 해부대 위에 올려놓았다. 미국 외교의 현상과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미국 외교의 저변에 흐르는 인습과 전통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건국 이념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혁명과 건국(1776~1788), 시작-건국 초기(1789~1815), 영토제국의 꿈(1803~1830), 분열 속의 팽창(1824~1860), 통상제국의 기틀(1861~1896), 전환-대륙에서 대양으로(1896~1913), 제국외교의 탄생(1913~1932), 세계패권의 서막(1933~1945), 패권체제의 구축(1945~1960), 조정-베트남 전쟁과 데탕트(1960~1980), 신보수와 신냉전(1981~1989), 신세계질서의 모색과 방황(1989~2000), 제국의 덫-‘9·11’과 조지 W 부시(2001~2008)로 시기를 나누어 미국 외교정책의 역사를 재구성했다.
이처럼 긴 시간을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풀어헤치며 자유자재로 현미경과 망원경을 들이대지만 지은이의 시각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미국 외교는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현실로 드러난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그리고 오바마의 외교정책 기조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권용립은 겉으론 변한 것 같지만 현상의 밑바닥에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 미국 정치문명에서 변하지 않은 무엇에 대해 2003년의 <미국의 정치문명>(1991년판 <미국-보수적 정치문명의 사상과 역사>의 개정판)에서 입론한 바 있다.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캘빈주의다. 미국 건국에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 자유주의의 사익(상업) 이데올로기와 공화주의의 공익(농업) 이데올로기 사이에 필연적으로 갈등과 긴장이 존재했는데 이는 미국 역사의 특징인 팽창주의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공화주의는 땅과 농업을 덕성의 원천으로 봤고, 자유주의는 상업을 자유의 원천으로 봤다. 공화주의적 시각에서는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정치와 도덕의 타락을 낳는다. 자본주의를 유지하면서 정치와 도덕의 타락을 막는 것은 덕성의 원천인 땅의 확장으로 가능했다는 논리다. 여기에 캘빈주의의 극명한 선악 대립구도, 권선징악의 역사관이 결합돼 미국은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세계를 구원할 유일한 나라라는 우월의식, 메시아 의식을 잉태했다.
이처럼 근원적이고 문명사적인 분석을 따를 경우 미국 외교정책의 역사를 분석할 때 흔히 동원되는 고립주의니 개입주의니, 이상주의니 현실주의니, 패권주의니 다자주의니 등의 분석틀은 유용성을 크게 상실할 수밖에 없다. 공화당과 민주당 외교정책의 차이도 크게 희석된다. 지은이는 “세계사의 차원에서 보면 미국 외교의 역사는 개입주의와 팽창주의로 점철된 역사”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미국이 어느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팽창을 추진했는가’밖에 없다.
책은 그래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전임 조지 W 부시와 결별을 선언하고 변화를 역설하고 있지만 큰 기대를 걸지 말라고 말한다. 오바마 시대에 가능한 미국 외교의 변화란 기껏해야 9·11 이후 득세했던 네오콘식 외교의 잘못을 교정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란 예측이다. “건국 이래 미국 외교의 정신적 관습이 유전인자처럼 작용하는 한 미국에 어떤 정당의 어떤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미국이 주도해서 세계를 꾸려 나가야 한다는 선민적 세계관과 역사관은 변하기 어렵다.”
1997년 처음 출간돼 절판된 <미국 대외정책사>를 전면 개작한 이 책은 페이지마다 주석과 참고문헌이 수없이 등장하지만 독서를 방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국제정치에 대한 국내 저작들에서 흔히 보는 거칠고 불친절한 서술이 아닌, 어려운 개념들을 쉽고 짜임새 있게 풀어낸 문장들이 자꾸만 밑줄을 긋게 만든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한편에서 허탈하고 우울한 심정이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외교의 특징들이 미국 정치문명에 깊숙이 드리워진 독특한 세계관과 역사관에서 기원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미국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것이라면 ‘제국’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살고 있는 우리의 운명은 별로 바뀔 것이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은이에게 묻고 싶어진다. 망원경의 시야를 너무 넓게 잡다 보니 역사 결정론 쪽으로 흘러 버린 것 아니냐고.

<그 밖의 다른 책들>

미국의 정치 문명 - 10점
권용립 지음/삼인

세계와 미국 - 10점
이삼성 지음/한길사

미국 예외주의 - 10점
세이무어 마틴 립셋 지음, 문지영 외 옮김/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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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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