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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서평]두려움 없는 미래

600쪽이 넘는 책을 만 하루만에 읽어내고 해당 책에 대해 뭔가를 써야한다는 건 정말이지 고역이다. 솔직히 그저 그런 책이면 건성으로 읽고 써도 덜 찔릴 것이다. 하지만 일단 책이 재미 있으면 끝까지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 다음 책 내용이 알차게 꽉 채워지면 이걸 요약하고 특징을 잡아내는 게 더욱 어려워진다. 정해진 분량에 다룰려면 어차피 어느 부분은 언급조차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자'라고 명명한 21명 가운데 솔직히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 쪽이 적절하게 안배가 됐으며 인도와 이집트 사람도 있다. 이들은 뭐랄까, 우리로 치자면 박원순 변호사 정도라고 할까, 현실의 문제점을 비판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시민단체가 됐든 학계가 됐든, 아니면 공직에서든 대안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통찰의 깊이가 만만치 않다. 만 하루만에 600쪽이 넘는 책을 읽는(그것도 사무실에서 잡다한 일을 다 해가면서) 미친짓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짧은 시간 읽어낸다는 것은 책을 오독할 가능성을 높인다. 사실 아래 써놓은 글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책의 무게를 흉내내다보니 폼만 잔뜩 잡았을뿐 책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했는지 의문이 든다.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다. 읽어보시라!

"모아진 돈에 왜 이자를 주나 보관수수료를 물게 해야지."
위기의 인류, 21명의 '현자'가 해법을 내놓다.

두려움 없는 미래 - 10점
게세코 폰 뤼프케 지음/프로네시스(웅진)

21세기의 첫 10년이 끝나기 전 인류는 자신이 타고 있는 타이태닉 호에 빨간불이 연이어 켜지는 것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세계를 강타했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나버린 2009년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가 그것이다. 따지고 보면 21세기는 세계 초강대국 미국에 대한 전대미문의 9·11 테러에 이어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막을 올렸다. '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언제부턴가 위기에 둔감해져 있다. '언제 위기가 아닌 적 있었나' '어떻게든 잘되겠지'라는 자위가 일상화된 것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가 은근슬쩍 지나갈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인류의 마지막을 살았던 세대'로, 누구도 기억해주지 못하는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는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윈스턴 처칠 식으로 말하면 이것이 위기의 끝이 아니고, 끝의 시작도 아니며, 시작의 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독일의 정치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저술가인 지은이 역시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인류에게 닥친 현상적 위기조차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암울한 상황. 암울한 미래는 두려움을 안겨준다.
지은이는 두려움에 떨면서 운명을 기다리는 대신 타이태닉의 침몰을 미리 감지하고 구명정을 만들고 있는 21명의 '현자'를 찾아나섰다. 직접적인 계기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였다. 경제학자·생태학자·물리학자·심리학자·종교학자·시민운동가 등 그들이 몸담고 있는 영역은 다양하지만 한결같이 '위기의 유용성'을 역설했다. "예기치 못한 위기는 우리 내면에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일깨워준다."(에가 프리드먼)
일찍이 미국의 과학사회학자 토머스 쿤이 제시한 패러다임 이론은 특정한 견해나 사고방식, 이론틀이 한 시대를 지배하지만 이것이 설명해주지 못하는 현상들이 누적되고 어느 순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라는 혁명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유명한 '패러다임 전환' 이론이다. 그러나 패러다임 전환이 스스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존 패러다임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과 기존 패러다임이 누적시킨 해악을 직시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위기로부터 도피하려는 시도는 더더욱 헛된 일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무너져가는 시스템에서 살면서 개혁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하고, 헤이즐 헨더슨은 "위기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면서 한발 더 나아갔다.


위기가 심연을 드러낼 때가 새로운 기회가 태어나는 순간이다. '창조적 카오스 관리자'라 할 수 있는 21명의 세계적 지성들은 "세계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면서 미래를 생각하라"고 말한다. 윗줄 왼쪽부터 어빈 라즐로, 에가 프리드먼, 한스 페터 뒤르, 엘리자벳 사투리스, 안드레아스 베버, 짐 마리온, 조안나 메이시, 마르코 비숍, 니카르노 페를라스, 에이미 굿맨, 클라우스 오토 샤머, 메리 와인 애시포트, 헤이즐 헨더슨, 조지프 스티글리츠, 볼프강 작스, 이브라힘 아볼레시, 베르나르 리에테르, 반다나 시바, 야코프 폰 윅스킬, 마그리트 케네디, 프란시스 무어 라페.


결국 고통스럽고 불편하겠지만 정치·경제·문화를 지배했던 기존 사고방식과의 결별을 각오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이 독립적이라는 기계론적이고 이원론적인 사고방식, 석유중독, 시장만능주의와 성장만능주의, 협력보다는 경쟁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잘못된 신념 등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사고방식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스 페터 뒤르는 "생태계는 모든 카드들이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불안정한 상태의 카드로 만든 집"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세포가 유기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서로 작용하며 생명을 유지시켜 나가는 것처럼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와 자연 또한 그러하기 때문에 무한성장의 신화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시스템은 각각의 구성 부분들이 높은 자유도를 갖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유기적 전체이다."(어빈 라즐로)
마그리트 케네디는 "누구나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은 종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법도 찾아놓았다"면서 지역화폐를 예로 들었다. 지역화폐는 소규모 해당지역에서만 쓸모가 있는 물건이므로 지역 내에서의 생산과 소비를 촉진시키고 무분별한 금융자본이 눈독을 들일 가능성도 적다. 케네디는 그러면서 모아진 돈에 이자를 치르는 일을 그만두고, 반대로 돈을 유통시키지 않고 보관하고 있을수록 보관수수료를 지불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제시한 혜안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선 별게 아닌 것일 수도, 상상력의 크기를 넓게 확장시켜야만 이해되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그마한 실천이나마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프란시스 무어 라페는 말한다. "문제는 우리의 무기력증이고, 그 무기력증을 일으키는 잘못된 관념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중요한 조건은 인식의 전환을 통한 실천이다.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하늘에서 날아와 타이태닉 호를 구해줄 슈퍼맨은 없다. 우리 스스로가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슈퍼맨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201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