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의 죽음을 해석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우리가 추모의 염을 담아 그의 죽음을 ‘서거’로 부르는 데 대해 “파렴치범에게 웬 존경”이라느니 “자살로 불러야 한다”느니 하는 저급한 딴죽이 들려오는 것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정치의 세계에선 하나의 색깔이 누구에겐 검게, 다른 누구에겐 희게 보이는 게 일상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워낙 충격적인 방식으로 이뤄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싼 해석쟁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검은 것을 희게 보는 사람이나, 흰 것을 검게 보는 사람이나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팩트’는 뭘까. 노 전 대통령이 꽤나 책읽기를 좋아한 독서가였다는 게 그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유서에서 자신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음’을 들었다.
책읽기가 힘들어지기 전 그는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을 읽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했다. 그가 정독한 마지막 책으로 보인다. 세계화 시대에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철학적, 실천적 방편을 탐구한 이 책은 분량이 550쪽이나 되는 데다 건조한 문체여서 읽기가 쉽지 않다. 노 전 대통령도 “내용은 최고인데 정말 읽기 힘들다”고 투덜댔지만 꾸역꾸역 읽어냈다고 한다.
그에게 책읽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생전에 읽고 추천한 책이 하나둘씩 회자되면서 인터넷에 리스트가 올라왔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하거나 추천했다는 책들의 목록을 보면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미래 비전을 강구한 책, 조직과 리더십·혁신과 변화에 관한 책, 역사서 등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에게 책읽기는 단순히 지식을 넓히거나 시간을 때우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하고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할 거리를 마련하기 위한 매우 실천적인 행위였음을 보여준다. 요즘 유행하는 ‘독서경영’에 빗댄다면 ‘독서정치’라 할 수 있다.
일찍이 그의 책읽기 행위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06년 8월 경향신문에는 ‘책에 빠진 노 대통령 독서정치’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의 독서 편식과 무비판적 해석 경향을 우려한 기사였다. 이 기사에서 언급했듯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배기찬의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 대연정론(강원택의 <한국의 정치 개혁과 민주주의>) 등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제시하고 추진한 굵직한 정책과 담론의 배경엔 항상 특정 책이 등장했다. 책을 보고 감명받아 저자를 등용한 사례도 꽤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독서 못지않게 글쓰기를 좋아했다. 연설문을 직접 작성한 경우가 많았고, ‘편지정치’란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지지자와 국민을 향해 수시로 글을 써서 인터넷에 띄웠다. 돌연한 그의 죽음으로 우리는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귀중한 자산을 하나 잃어버렸다. 회고록이 마무리되지 못한 것이다. 물론 회고록이 출간됐다면 한쪽에선 격찬을, 한쪽에선 비난을 쏟아냈을 것이다. 더구나 회고록이란 게 크든 작든 분식(粉飾)의 경향을 띤다. 하지만 5년 동안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이 겪었던 일과 만났던 사람들, 그들과 나눈 대화를 그 자신의 글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은 역사의 손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며 떠난 사람에게 “가시더라도 회고록은 마무리하고 가실 것을…”이라고 한탄한다면 너무 욕심어린 추모가 되는 것일까. <2009.5.31>
검은 것을 희게 보는 사람이나, 흰 것을 검게 보는 사람이나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팩트’는 뭘까. 노 전 대통령이 꽤나 책읽기를 좋아한 독서가였다는 게 그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유서에서 자신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음’을 들었다.
책읽기가 힘들어지기 전 그는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을 읽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했다. 그가 정독한 마지막 책으로 보인다. 세계화 시대에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철학적, 실천적 방편을 탐구한 이 책은 분량이 550쪽이나 되는 데다 건조한 문체여서 읽기가 쉽지 않다. 노 전 대통령도 “내용은 최고인데 정말 읽기 힘들다”고 투덜댔지만 꾸역꾸역 읽어냈다고 한다.
그에게 책읽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생전에 읽고 추천한 책이 하나둘씩 회자되면서 인터넷에 리스트가 올라왔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하거나 추천했다는 책들의 목록을 보면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미래 비전을 강구한 책, 조직과 리더십·혁신과 변화에 관한 책, 역사서 등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에게 책읽기는 단순히 지식을 넓히거나 시간을 때우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하고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할 거리를 마련하기 위한 매우 실천적인 행위였음을 보여준다. 요즘 유행하는 ‘독서경영’에 빗댄다면 ‘독서정치’라 할 수 있다.
일찍이 그의 책읽기 행위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06년 8월 경향신문에는 ‘책에 빠진 노 대통령 독서정치’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의 독서 편식과 무비판적 해석 경향을 우려한 기사였다. 이 기사에서 언급했듯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배기찬의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 대연정론(강원택의 <한국의 정치 개혁과 민주주의>) 등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제시하고 추진한 굵직한 정책과 담론의 배경엔 항상 특정 책이 등장했다. 책을 보고 감명받아 저자를 등용한 사례도 꽤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독서 못지않게 글쓰기를 좋아했다. 연설문을 직접 작성한 경우가 많았고, ‘편지정치’란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지지자와 국민을 향해 수시로 글을 써서 인터넷에 띄웠다. 돌연한 그의 죽음으로 우리는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귀중한 자산을 하나 잃어버렸다. 회고록이 마무리되지 못한 것이다. 물론 회고록이 출간됐다면 한쪽에선 격찬을, 한쪽에선 비난을 쏟아냈을 것이다. 더구나 회고록이란 게 크든 작든 분식(粉飾)의 경향을 띤다. 하지만 5년 동안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이 겪었던 일과 만났던 사람들, 그들과 나눈 대화를 그 자신의 글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은 역사의 손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며 떠난 사람에게 “가시더라도 회고록은 마무리하고 가실 것을…”이라고 한탄한다면 너무 욕심어린 추모가 되는 것일까. <2009.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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