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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사라지는 '우리'의 교과서

얼마 전 작가 한 명을 만났다. 자신의 작품이 어느 출판사의 중학교 1학년용 국어 교과서에 수록됐다며 싱글벙글이었다. 학교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면 작품성이 검증된 작가라는 명예와 함께 인지도가 높아지므로 독자들의 관심도 올라갈 테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 ‘국민 작가’의 반열에 오른 거네요”라고 치켜세웠더니 “그건 아니고 일선 학교에서 얼마나 선택하느냐가 남았지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선택? 국어 교과서는 모든 학교가 다 똑같은 걸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그게 아니었다. 자녀가 미취학 아동이거나 학교에 다니더라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부모들은 잘 모르겠지만, 현재 일선 학교에선 꽤 큰 변화가 진행 중이다. 교과서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는 크게 국정과 검정으로 분류된다. 국정 교과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는 것으로 특정 과목이 국정체제일 경우 학교에선 국정 교과서만 써야 한다. 교육 내용의 통일성이 중요하다고 국가가 판단했거나 수요가 적은 일부 선택과목, 이를 테면 아랍어처럼 선택하는 학생이 적어 출판사가 꺼리는 과목은 국정으로 출판하고 있다. 검정 교과서는 일반 출판사가 법이 정한 기준에 맞게 제작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검사를 받아 출판한다. 각 학교는 검정 교과서를 자유롭게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검정 교과서가 많아진다는 것은 학생과 교사의 교과서 선택권이 넓어짐을 뜻한다.

지난달 23일 교과서 검정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09년 교과서 검정 본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학교 1학년용 국어 교과서만 해도 34종이 접수돼 23종이 통과했다. 교학사·금성출판사·천재교육 등 전통적으로 교과서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던 출판사가 여러 과목에서 이름을 올렸다. 대교·웅진씽크빅 등 대형 학습지 업체의 교과서도 여러 권 통과했다. 단행본 출판사로는 창비와 해냄(자회사인 해냄 에듀)의 국어 교과서가 통과했다. 이들은 수정·보완지시를 받은 부분을 고쳐 6월30일 교과부 장관으로부터 합격본으로 판정받아야만 5년간 해당 교과서를 낼 수 있다. 출판사들로선 초긴장 상태로 두 달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정부 수립 이래 국정체제를 고수한 국어·도덕·국사 과목이 처음으로 검정체제로 전환되는 것은 교육계로서는 하나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든, 산골 마을의 작은 분교를 다니든 국어·도덕·국사는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교과서를 써야 했다. 획일적이라는 비판이 있었고 이 때문에 이번에 검정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교과서를 쓰다 보니 국어 교과서에 실린 작품은 한 세대가 공유하는 추억으로 자리잡았던 측면도 있다. 필자의 경우 황순원의 <소나기>,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피천득의 <인연>, 오영수의 <요람기> 등이 그랬다.

어릴 적 새 교과서를 받는 날이면 달력 뒷면으로 함께 교과서 표지를 싸던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고교 1학년, 중학교 1학년 학생을 둔 엄마다. 심드렁한 답이 돌아왔다. “글쎄, 그러니? 한번 봐야겠네. 근데 요즘 교과서 가지고 공부하는 애들이 어딨니.” 순간 “사람들이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가 터졌을 때나, 우리 교과서에 조그만 문제라도 하나 발견되면 온통 난리를 치면서도 정작 우리 학생들이 쓰는 교과서 자체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는 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의 푸념이 떠올랐다. <20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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