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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서평>‘그림 같은 집’을 짓는 상상력·기술·수완

문화의 끝은 어디인가? 개인적으로 건축이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하곤 한다. 한마디로 종합예술인 셈이다. 건축에 관한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하지만 건축에 관한 책은 자짓 전문용어와 외국 유명 건축가 이름의 숲을 헤매게 된다. 이 두권의 책은 공교롭게 같은 주에 나왔는데 건축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조감도이자 세부지도로서의 역할을 각각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도 다다오 책의 경우 국내 출판사 몇곳이 판권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이번주에도 비슷한 컨셉의 책 두권이 나왔다. 유명 건축가 승효상씨가 쓴 <지문(地文)>(열화당)과 번역서인 <표면으로 읽는 건축>(동녘)이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건축서라는게 쉽지 않은 주제인데 비슷한 시기에 이처럼 몰려 나오는 것은 좀 아쉬운 일이다.


Hal Box 교수의 건축가처럼 생각하기 - 10점
할 박스 외 지음/다른세상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10점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안그라픽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로 시작되는 가수 남진의 노래는 철이 한참 지난 유행가이지만 인간의 욕망을 쉽게 표현했다. 그래서 술 한 잔 걸친 아저씨들이 밤마다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그토록 흥겹게 불러젖히고 있는 것이리라. 미국과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가 쓴 두 권의 책을 보면서 남진의 노래가 떠오른 것은 건축가가 하는 일이 결국엔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에서 살고 싶은 우리네 욕망을 채워주는 작업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그림 같은 집'이 어떤 집인가라는 구체적인 문제에 들어가면 다양한 의견들이 나온다. 이처럼 다양한 생각은 창조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일은 주거와 활동의 공간을 마련하는 실용적 행위인 동시에 예술적 활동이 된다.
<건축가처럼 생각하기>(허지은 옮김. 1만6000원)를 쓴 할 박스는 50년 동안 건축가로서 건물을 만들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올해로 90세가 된 그는 손자에게 얘기하듯 쉬운 말로 건축 이야기를 풀어놨다. 이 책은 실제로 지은이가 친구와 동료, 건축주 등 다양한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쓴 편지들을 모은 것이다. 그는 "단순한 건물은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건축가를 고용하거나, 본인이 직접 건축가가 되거나, 건축가처럼 생각하면 된다"는 말로 운을 뗀다. 이어 건축가가 어떻게 설계를 하고, 건물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실제로 집을 지으려면 어떤 점들을 염두에 둬야 하는지, 현대 건축의 흐름과 문제점은 무엇이며 미래의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 우리가 평소 동경했지만 어렵게 느꼈던 건축의 세계를 맛보게 한다. 전문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건축가처럼 생각하기'란 어떤 것일까. 답은 '건축가는 예술가이고, 기술자이며, 사업가'라는 저자의 정의에 담겨 있다. 새 건물을 지으려면 상상력이 발휘되어야 하며, 안전한 집을 지으려면 치밀한 계획과 기술적 노하우가 필요하고, 주어진 예산을 가지고 실제 집을 짓는 인부들과 함께 호흡하며 건축주의 요구에 맞추려면 사업가적 수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광범위한 작업을 하려면 다방면에 걸친 지식과 논리적 사고력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건축가처럼 생각하기를 시도해 볼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발점은 이미 지어진 건물을 보고 공간을 느끼는 것이다. 지은이는 공간을 느끼고 배우는 10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건물의 역사와 역할 이해하기, 건물의 구조와 사용된 재료를 구별해서 보기, 공간 내부의 소리와 빛의 흐름 파악하기, 주변 환경을 감안해서 보기 등인데 초심자에겐 매우 유용한 가르침이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이규원 옮김. 2만원)는 공고 출신으로 독학 끝에 세계적인 건축가의 반열에 오른 지은이가 밝힌 자신의 건축관과 인생관을 담고 있다. 안도는 '노출 콘트리트 방식'의 건축으로 유명하다. 1960년대 후반 개인사무소를 연 그는 일본 주택가의 좁은 공간에 직선을 강조한 독특한 형태의 집들을 지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한국에도 있다. 제주도 보광피닉스 파크의 글라스하우스다.
속된 말로 맨주먹으로 시작해(실제로 그는 고교 시절 프로권투 선수였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는 20대 때 건축의 본고장을 주유하며 건축에 대한 안목을 넓혔다면, 60년대 일본 사회에서 분출했던 반체제 동력과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남 흉내는 내지 마라! 새로운 것을 해라!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져라!'라는 창조정신과 저항정신을 체득했다고 말한다.
설계를 맡기려고 찾아온 사람에게 "삶의 터를 잡고 산다는 것은 때로는 힘든 일일 수 있다. 나에게 설계를 맡긴 이상 당신도 완강하게 살아 내겠다는 각오를 해 주기 바란다"며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이야말로 주거의 본질"이라는 자신의 건축관을 밀어붙이는 근성 역시 그를 키운 자양분이었다. 그는 자신을 '도시에 저항하는 게릴라'라고 부른다. 판에 박힌 건축을 탈피하려는 끊임없는 실험, 수익성을 최대 목표로 하는 상업건축에 공공성과 공동체 정신을 심으려는 도전이 그의 40년 건축인생을 채웠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참된 행복은 적어도 빛 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빛을 멀리 가늠하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몰입의 시간 속에 충실한 삶이 있다고 본다"면서 새로운 도전을 향한 의지를 불태운다.
<건축가처럼 생각하기>가 건축 일반론을 다뤘다면,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건축의 실제를 간접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자가 망원경이라면, 후자는 현미경이라고 할 수 있다. <…다다오>의 경우 일본 사진계의 대부라는 아키라 노부요시 등이 안도의 무표정한 얼굴과 그가 설계한 건축물의 특징을 잘 잡아낸 사진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2009.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