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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서평>세계는 두 부류다… 평평하거나 주름지거나(공간의 힘)

시간에 쫓기다보니 지면에 실렸던 글을 블로그로 퍼올리는 것조차 제때 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주에 읽었던 이 책은 '공간'을 키워드로 했는데 영어로 보자면 'place'를 말한다. 한줄로 요약하자면 '당신이 어느 곳에서 태어났는가가 당신의 사회적, 경제적 삶의 질을 결정한다' 정도 될 터이다. 이럴 경우 place를 공간이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장소라고 하는데 이해하기 빠를듯 하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이라는 제목에 빗대 이 책을 비판하는 <부자아빠의 몰락>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는데 이 책은 다분히 <세계는 평평하다>란 책을 의식하고 씌여졌다. 이 책에서 주목되는 것은 저자가 사용한 접근법이다. 물론 중심부-주변부의 접근법은 저자가 독창적으로 퍼올린 방법론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도식적으로 적용될 경우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용산참사 사건 당시 누군가가 외쳤던, 그리고 책으로 나오기도 했던 '저기 사람이 있다'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데 유용한 도구라고 본다. 언제나 세상엔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니까.

공간의 힘 - 10점
하름 데 블레이 지음, 황근하 옮김/천지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화로 인해 세계가 평평해졌다"고 말했지만 이것은 유럽, 북미, 동아시아, 호주 등 '중심부'에만 적용되는 얘기다. 하름 데 블레이는 "지구는 문화적으로는 물론이고 물리적으로도 아직 울퉁불퉁한 땅"이라면서 "주변부에는 세계인구의 85%가 살지만 세계 총소득의 25%만 돌아간다"고 말한다. 지도상의 검은 점은 미국·멕시코의 국경, 중국과 대만 사이의 해협, 이스라엘의 분리장벽 등 중심부와 주변부를 가르는 주요 경계지점들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화에 의해 수십억 인구와 기업들이 장소와 언어·문화에 상관없이 동시에 경쟁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내용의 <세계는 평평하다>를 쓰면서 자신의 '발견'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 대비시키는 대담함을 보였다. 그는 미국 정보통신 산업의 중요한 아웃소싱 대상으로 떠오른 인도를 다녀온 뒤 아내에게 "여보, 내 생각에는 말이야. 지구는 평평해"라고 속삭이면서 마음 속으로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경향'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수식어를 생각해 내고 있었다.
중동문제 전문가이기도 한 칼럼니스트 프리드먼은 자신이 평평하다고 명명한 세계가 결코 평평하지 않다는 반론이 제기될 것을 예상했다. 그는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나도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저자의 권한으로 그런 제목을 만들어본 것뿐이다"라며 도망갈 구멍을 남기는 영악함을 보였다.
물컵을 보면서 '물이 반밖에 차 있지 않다'고 말하거나 '물이 반이나 차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칼럼니스트가 뽐내면서 내놓은 '평평한 세계'라는 키워드는 울퉁불퉁한 현실의 세계를 가려버림으로써 세계인의 인식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갈 위험성을 안고 있다.
미시간 주립대 지리학과 교수인 하름 데 블레이가 <공간의 힘>(원제 The POWER of Place)의 서문을 "두바이 힐튼 호텔의 전망 좋은 방에서, 혹은 싱가포르 항공의 비즈니스 클래스 창가 좌석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실제로 평평해 보인다"는 말로 장식한 것은 일부 사람들에게 세계는 실제로 평평해지고 있다고 인정하는 동시에 프리드먼의 외눈박이 시각이 내포한 해악을 지적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블레이는 우선 지구에 살고 있는 70억 인구를 세계인·지역인·이동인으로 분류했다. 세계인은 중심부에서도 상위층에 위치한 운 좋은 사람들을, 지역인은 가장 가난하고 이동성이 적으며 울퉁불퉁한 공간의 영향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말한다. 이동인은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해 하위층에 자리잡는 이주민들이다. 공간적으로는 유럽에서 북아메리카를 지나 동아시아와 호주에 이르는 세계화가 이뤄진 지역을 평평한 중심부로, 그 밖의 지역을 주변부로 나눴다.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엔 완고한 장벽이 존재한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남아공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저자는 이 장벽을 남아공 백인 정권이 펼친 악명 높은 흑백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비유했다. 이 장벽이 자연적인 경계가 아니라 기득권 세력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억압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세운 것이란 뉘앙스를 담고 있다. 이런 접근 방식은 세계를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로 나누어 정치경제학적으로 분석한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적 방법론을 연상시킨다.
저자는 지리학자답게 각 장마다 언어, 종교, 질병, 재난, 분쟁, 출생률·평균수명, 도시화율, 여성의 정치참여 비율 등을 담은 세계지도들을 동원했다. 이런 시각적 자료들은 지구촌의 현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해준다. 블레이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야 센이 제기한 "아이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장소에 따라 커다란 번영의 수단과 기반을 갖게 될 수도 있고, 절망적인 결핍의 삶에 직면할 수 있다"는 명제다.
그렇다고 블레이를 반세계화론자로 단정지을 수는 없어 보인다. 그는 현대로 올수록 절대빈곤은 감소하고 있으며, 다양한 이동수단 및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도입은 문화적 선택권을 넓히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세계화의 중심점과 주변부들은 현대화와 통합의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가고 있지만, 그에 따라 장벽이 더 높아지고 공간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는 세계화의 모순을 직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저자의 분류에 따르면 한국은 '평평한 중심부' 내부의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프리드먼의 주문은 평평한 세계의 끝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미국식 세계화에 동참하라는 것이지만, 블레이는 반대로 시각을 평평하지 않은 외부로 돌려 지구를 더 평평한 세계로 만드는 데 동참하라고 주문한다. 그렇다. 문제는 '어떤 세계화이냐'인 것이다. <2009.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