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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서평>선우야 바람 보러 가자, 고등어를 금하노라


팍팍한 생활 한숨을 돌리게 하는, 한편으로는 무한한 부러움을 자아내는 책들이다. 두권의 책은 출판사도 다르고 저자도 당연히 다르지만 마치 짝을 이룬 것 같다. 한 가족은 도시에서, 다른 한 가족은 첩첩 산중 자연에서 사는 '다른 삶'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에 살면서 점차 좀비가 되어가는 악몽에 지쳐 이제 탈출하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난이도가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제시해 주는 것 같다. 보통 이런 종류의 책들을 보면 너무 계몽적이라거나 훈계조여서, 혹은 너무 행복에 겨운 모습을 자랑하는 것에 샘이 나서 거부감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두책은 그런 느낌보다는 솔직히 부럽다는 생각이 앞섰다. 요새 내 삶이 너무도 팍팍해져 있나보다.

선우야, 바람 보러 가자 - 10점
이경옥.이종국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고등어를 금하노라 - 10점
임혜지 지음/푸른숲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삶의 도처에서 발견된다. 가정에서의 삶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풍요로움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란 금언은 백번 지당한 말씀이지만 이와 정반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경쟁에 내몰고 틀 안에 가두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하면서 찬찬히 기다리자'는 결심도 마찬가지다. 반성도 해보고 새롭게 결심도 해본다. 하지만 '그게 좋다는 걸 누가 모르나. 상황이 안되니까 그러지 뭐'라는 핑계가 슬그머니 자리잡는다. 실제로 주변의 제약들이 우리를 구속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핑계가 완전히 근거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충북 청원의 오지 '벌랏마을'과 독일 뮌헨에 사는 두 가족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의 핑계를 무색하게 만든다. <선우야, 바람보러 가자>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하늘은 뚫려 있는' 산골마을에서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40대 중반의 마불 이종국·메루 이경옥 부부와 만 네살짜리 아들 선우가 주인공이다. 도인의 외모를 자랑하는 아빠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입시미술학원을 운영하다 염증을 느껴 25년 가까이 산중생활을 해왔다. 그는 15년 전 충북에서 가장 깡촌으로 불리는 벌랏마을에 들어와 전통 한지를 만들고 다양한 한지 작품도 제작하고 있다. 인도에서 요가와 명상을 공부하고 돌아와 명상센터를 운영하던 아내 메루는 9년 전 우연히 벌랏마을에 들렀다 마불과 결혼했다.
인공을 최대한 멀리한 채 자연에서 난 것을 먹고, 마시고, 도구를 만들어 생활하던 부부는 늦둥이 아들 선우도 자연스럽게 야생의 삶으로 인도했다. 머릿속 지식이 아니라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는 삶 말이다. 선우는 텃밭에 나가 스스럼없이 야채를 따먹고, 아빠가 손수 만들어준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자연에서 뛰놀다보니 선우는 얼굴이나 팔다리가 상처 투성이이지만 엄마는 "어린 시절엔 그 무엇에도 제한받지 않고 몸과 마음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고, 아빠는 "자연에서 사는 법을 익혀 야생의 힘을 되살린다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쓴 임혜지씨(52)는 고등학교 시절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 건축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학 시절 만난 독일인과 결혼해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딸을 두었다. 독일인의 성실함과 절약정신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책에 나온 내용으로 보자면 임씨네 가족의 절약정신은 이들이 사는 뮌헨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딸이 좀 툴툴대긴 하지만 말이다.
물리학 박사로 평범한 직장인인 남편은 목욕할 때 사용하는 물의 양으로 에너지 소비량을 역산해 아내와
딸에게 샤워 시간을 줄이라 종용하고, 아내는 남편이 두사람만의 기념일 선물로 1000유로짜리 시계를 선물하겠다고 하자 손사래를 치며 35유로짜리 시계를 집어든다. 이들의 검소한 생활은 돈이 풍족하지 않다는 상황의 압박에 따른 수동적 선택은 아니다. 환경을 아끼고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자신들까지 생선을 먹는다면 정작 생선에 의지해온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빼앗는다는 이유로 식탁에서 고등어를 추방시키고, 에너지를 낭비시킨다는 이유로 제철이 아닌 과일은 사절한다. 임씨는 또한 "핵가족 안에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기르기 위해선 무엇보다 부모의 시간이 귀중하므로 우리는 항상 돈 대신 시간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임씨 부부가 절약과 함께 철저한 신조로 삼는 것은 아이들의 자발적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이다. 아이들에게 "공부에 취미가 없는 사람이 대학에 다니는 것만큼 실패한 인생도 없고, 남들 다 한다고 어설프게 진학하는 것보다는 기술 하나 똑 부러지게 배우는 것이 낫다"고 가르쳤다. 두 아이가 어릴 적 난독증 증세가 있었지만 임씨는 성적을 개의치 않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의 창조력과 집중력이 놀이를 통해 꾸준히 계발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두 아이는 독일 아이들의 25%밖에 가지 못한다는 김나지움에 진학, 자신들이 원하는 대학 전공 분야를 향해 나아감으로써 임씨 부부의 믿음에 부응했다.
마불·메루 가족과 임씨 가족은 환경은 다르지만 여느 사람들이 가슴 속에 막연하게 품고만 있는 '자유로운 나' '행복한 우리집'을 아무렇지도 않게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다른 방식의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여느 사람들과 다른 대차대조표를 가졌기에 이런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오히려 행복의 소재로 삼는다는 점도 닮았다. <2009.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