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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_2019/밑줄긋기

[20 UP 투애니업]문제는 '딴짓'을 너무 안하는 것이었다



 텔레비전과 담을 쌓고 사는 나에게도 귀에 익숙한 걸 보면 매우 유명한 게 분명한 ‘씨엘’의 아빠 이기진 교수가 쓰고 그린 [20 UP 투애니업]을 읽었다. 밝은 노란색 표지에 예쁜 일러스트가 곁들여진 이 책은 ‘시엘 아빠, 이기진 교수의 일러스트 에세이/청춘을 건너는 5가지 기술’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책을 만든 사람들이 읽기를 희망하는 대상을 ‘청년’으로 명시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 아들내미에게 해줄 공부와 꿈, 사랑, 인생, 행복에 대한 근사한 조언에 관한 아이디어를 좀 얻을 수 있으려나’하는 편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힘을 빼고 ‘쿨’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저자의 모습은 내게 큰 울림을 안겨주었다. 이 책은 ‘청춘’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것은 맞지만 중년의 남성에게도 색다른 ‘충격’을 안겨준다.

 한살, 한살 나이를 먹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중년’이라고 부르는 나이가 됐다. 마음 속에 그려지는 나의 모습은 여전히 어수룩한 실수투성이이지만 사회적으로 요구받는 나의 모습은 매우 노련하고 뭔가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만 뭔가에 대해 나름의 ‘개똥철학’을 설파할라치면 상대로부터 ‘저 아저씨 뭐래?’라는 눈총이 돌아오곤 한다.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시기라고는 하지만 중년은 이래저래 매우 어정쩡한 시기라는 것을 알게됐다.

 왜 그럴까? 왜 이렇게 무기력하면서도 짜증이 나는걸까 궁금하곤 했는데 [20 UP 투애니업]은 이 문제에 대한 힌트를 담고 있었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살기 위해서 먹는 것도 아니다. 사람에게는 생존이라는 일차적 목표 외에도 다양한 삶의 목표가 있고, 먹는다는 행위는 신체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기능 외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데에서 오는 쾌락을 충족시키는 기능도 한다. 인간은 ‘호모 라보란스(노동하는 인간)’인 동시에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인 것이다.

 [20 UP 투애니업]의 저자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런 모습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교수로서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로봇 캐릭터를 만든다. 재미난 책을 잡으면 밤을 세우고, 방학이 되면 여행을 간다. 한때 와이너리를 차릴까 고민했을 정도라고 하니 ‘마시는 것’에 대해서도 상당한 취미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스스로 ‘딴짓박사’를 자처하는 이기진 교수의 딴짓 리스트는 이 밖에도 어마어마 하다. 그는 초등학교 때는 야구에 미쳤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는 축구에 미쳤고, 대학 때는 농구에 미쳤으며, 대학원 시절엔 자전거에 미쳤다고 했다. 지금도 자건거를 탄다고 한다. 각종 ‘취향’과 ‘취미’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거기에다 쿨함과 유머러스함까지 겸비했다. “공부의 신도 두려워하는 게 있을까요?”라는 학생의 질문에 “그럼, 옆 반 공부의 신!”이라고 답하는 콩트를 날린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중년이 되어가면서 내가 느꼈던 어정쩡함, 무기력함의 상당 부분은 나의 ‘몰취향’과 ‘무취미’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을 빼고는 ‘유일’한 오락거리가 술마시기이고 틈이 났을 때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낮잠자기’이며, ‘뭘 먹을까?’ ‘뭘 볼까?’ ‘어디 갈까?’라는 상대의 질문에 ‘아무거나’라는 공통의 답변으로 일관하는 나. 가끔 주말에 산이나 한강변을 걷는 ‘원초적 활동’을 하는 것이 그나마 취미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20 UP 투애니업]을 보면서 오랜만에 부럽다는 느낌을 가져봤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위인 이가 이처럼 다양한 ‘딴짓’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다채롭게 꾸며가고 있는데 나는 뭐하고 있나라는 부끄러움도 들었다. 하지만 “나도 오늘부터 ‘취행’과 ‘취미’를 가질거야”라고 결심한다 한들 없던 취향이 어디서 갑자기 뚝 떨어질 리는 없을 것이다.

 이기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개성 있는 사람을 흠모하고 따라 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지금 당장 자신의 개성 찾기에 도전해 보자. 그리고 여러 번에 걸친 시행착오를 통해 오롯한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 가는 즐거움을 누려 보자. 그 끝에는 원하던 꿈에한 걸음 다가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이 중년에게도 해당된다고 믿고 싶다.

 코드를 다 까먹어버린 기타를 잡아볼까? 아님 대학 시절 미쳐 살았던 전통 타악기? 책상 앞에 장식처럼 꽂아 놓기만 한 일러스트 그리기 책을 펼쳐봐?

 음~. 일단은 오늘 저녁 막걸리를 한잔 하면서 생각해봐야겠다.


20 up 투애니업 - 10점
이기진 글.그림/김영사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