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치러진 입사시험과 면접을 통과한 수습기자들이 어제부터 실습과 훈련을 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됐다. 언론사 수습기자 생활은 '극한직업' 또는 '극한체험'을 주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에 주기적으로 소개가 될 정도로 힘들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련의 생활이 혹독한 것만큼이나 언론사 수습기자는 만성적인 수면부족, 극심한 육체적 피로, 선배들의 강압 등의 난관을 몇개월간 버텨내야 한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종종 선배들의 폭언이나 무리한 취재지시 때문에 말썽이 생기기도 하고 교통사고를 비롯해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십수년전 지금보다 훨씬 괴로움의 강도가 심했던 수습기자 시절의 경험을 이제는 술자리 안주 삼아 무용담처럼 얘기할 수 있지만 선배로부터 한두시간 동안 내가 한 실수들, 나의 부족함과 자질없음에 대해 욕설 섞인 비난을 듣는다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될 수 없다.
사실 언론사 수습기자 훈련 제도는 군대식 문화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아왔고 내가 몸담고 있는 경향신문사에서도 수차례 내부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래서 몇해 전엔 훈련을 받는 실습생이기 이전에 노동자로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수습기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명문화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 노력들이 모여 수습기자들에게 부과되는 육체적·정신적 부담은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습기자들이 기본적으로 위계적이고 강압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는 본질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비판도 받는 수습기자 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유는 뭘까? 수습기자 개인에게 끼치는 고통이 분명히 있으되 반대로 수습기자 개인, 그리고 그들을 기자로서 사용할 언론사에게 가져다주는 미덕이 분명히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미덕은 세가지로 꼽아볼 수 있다.
첫째는 기사거리, 즉 뉴스를 찾는 일을 배우는 것이다. 기자는 뭔가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럴려면 쓸 게 있어야 한다. 하늘 아래 모든 게 뉴스거리가 될 수 있다지만 '사람이 개를 무는 뉴스'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사회부 수습기자들은 기본적으로 몇개의 경찰서와 소방서, 주요 대학과 병원, 시민단체 등을 출입처로 배정 받아 그곳으로 몰려드는 사건·사고들을 파고들 것을 요구받는다. 새벽에 한번, 심야에 한번 기본적으로 하루 두번씩 자기가 맡은 구역을 순회하며 다른 기획 취재거리가 없을 땐 낮에도 쉼 없이 담당 구역을 돌아다닌다. 이건 수습기자를 졸업하고 정식 기자가 돼도 사회부 사건기자라면 똑같이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취재방식이 한국에만 특유한 것도 아니다. 일본이건 미국이건 대규모 언론사들은 기자들에게 담당구역을 맡겨 순회하며 기사거리를 찾도록 한다.
지금으로부터 100도 더 지난 1910년에 사망한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자서전에서 재미난 대목을 발견한 적이 있다. 19세기 미국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미국 소설의 링컨'으로도 불리는 그는 무척 다양한 일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신문기자였다. 그가 밝힌 19세기 중후반 미국 신문기자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네바다를 떠난 후에 나는 샌프란시스코의 <모닝콜Morning Call>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아니 기자 이상이었다. 신문사의 유일한 기자였던 것이다. 업무량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조금 지나칠 정도였지만 두 사람이 매달릴 만한 분량은아니었다. 물론 소유주인 바네스(Barnes) 씨의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아침 9시면 어김없이 경찰서에 도착해서 한 시간가량 머물면서 전날 밤 발생한 싸움에 대해 취재해야 했다. 주로 아일랜드 사람끼리, 중국 사람끼리 기분전환을 위해 이따금 벌이는 싸움이었다. 매일 일어나는 일의 성격이 전날 일어난 일과 정확하게 같았기 때문에 업무는 정말 미칠 지경으로 단조롭고 따분했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이런 일로 그래도 이익을 얻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법정 통역사뿐이었을 것이다. 그는 영국 사람으로 56가지의 중국 방언에 능통해 있었다. 그는 10분마다 방언을 바꾸어 가며 통역을 해야 했는데 워낙 생동감 있게 이루어지는 일이라 기자와는 달리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다. 기자들이야 상급 법원을 찾아가서 전날 내려진결정을 기록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 후에는 마을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훑으면서 기삿거리가 될 만한 자료를 수집했다. 화재가 발생하지 않으면 직접 일으키기까지 하면서.
밤에는 극장 여섯 군데를 순서대로 돌아다녔다. 일주일에 7일, 일년이면 365일 동안 말이다. 각 극장마다 5분간 머물면서 연극과 오페라를 흘끗 훑어보고는 이것을 가지고 기사를 썼다. 그동안 수백만 번 써 왔던 것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쓰기 위해 1년 내내 매일 밤 자신의 영혼을 괴롭히며 글을 써야 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극장을 쳐다보기만 하면 그때 그 괴로움이 북받쳐 오른다.
아침 9~10시에 시작해서 밤 11시까지 힘들여 자료를 긁어 모으고 나서 펜을 들어 그 허섭스레기에 살을 붙여 글을 만들었고 가능한 한 많은 지면을 채웠다. 이는 끔찍한 고역이었고 영혼이 담기지 않은 일이었고 흥미조차 없는 일이었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정말 지옥의 노동이었는데 나는 천성적으로 게을렀다. 지금의 내 모습은 40년 전보다 더 게을러지지 않았는데 그때 이미 게으름의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리라. (<마크 트웨인 자서전>(마크 트웨인 지음, 찰스 네이더 엮음, 안기순 옮김/고즈윈, 2005), 224~225쪽)
마크 트웨인 자서전 - 마크 트웨인.찰스 네이더 지음, 안기순 옮김/고즈윈 |
나는 수습기자로 들어온 후배들에게 마크 트웨인의 이야기를 종종 해줬는데, 그의 모습은 21세기 한국의 사회부 기자, 수습기자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화재가 발생하지 않으면 직접 일으키기까지 하면서' 기사거리를 찾아다녔다는 대목에선 웃음이 절로 나왔다. 매일 뭔가를 써야 하는 기자들은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기사거리를 찾지 못하면 비슷한 심정에 빠진다.
수습기자 교육의 두번째 미덕은 '팩트(fact)'의 엄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나 사안에 있어서 '사실'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상식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사실처럼 보이는 것이 알고보니 전혀 사실이 아닌 경우도 있고, 단순한 것처럼 보였던 사실이 양파껍질처럼 다양한 층위의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경우도 있다. 수습기자들은 사건과 사고를 쫓아다니면서 시시콜콜한 팩트들을 챙기고 확인하는, 기자로서 평생 해야할 일에 대해 훈련을 하게 된다. 너무나 많은 매체들이 있고,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유통되고 있지만 팩트를 가려내는 작업은 기자로서 가장 근본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선 미국의 유명 언론인인 크리스틴 아만푸어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내는 것이다. 기자는 쓰기 이전에 읽고, 듣고, 물어봐야 한다. 때로는 제보자들이 훌륭한 기삿거리를 들고 오기도 하지만 이럴 경우에도 사실 확인을 하려면 누군가에게 물어야 한다. 그런데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다가가서 말을 붙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태어나길 넉살 좋은 성격으로 태어나고, 붙임성 좋은 사람일지라도 낯선 이에게 처음 말을 걸고, 더구나 숨기고 싶어 하는 정보를 그로부터 캐낸다는 건 여간 힘들 일이 아니다. 그런데 수습기자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정보를 캐올 것을 요구받는다. 나도 그렇고 여러 후배들을 볼 때 신기했던 건 불과 석달 혹은 여섯달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거였다. 낯선 사람에게 말 한 마디 거는 걸 힘들어 하는 샌님 같은 사람도 선배들로부터 끊임없이 압력을 받으며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어느 순간 낯선 이에게 말걸기에 대한 두려움을 상당 부분 떨쳐내는 모습을 실제로 많이 목격했다.
기자와 쓰레기라는 용어를 합친 '기레기'라는 용어는 기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극도의 불신을 함축하고 있다. 기자의 한사람으로서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수습기자들을 맞이한 감상을 적다보니 길어졌다. 부디 이제 막 들어와 경찰서와 병원을 열심히 누비고 있을 후배 수습기자들이 뉴스가 되는 이야깃거리를 찾고, 낯선 이에게 말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다가가 팩트를 확인해서 독자에게 전하는 기자로서의 본문을 충실히 갈고 닦기를 바라본다. 이 계율이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임은 너무도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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