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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_2019/밑줄긋기

이기적 유전자-2





<이기적 유전자>가 생물학 책이긴 하지만 유전자와 개체의 활동을 설명하려다보니 간간이 사회에 관한 비유와 설명이 등장하기도 한다. 인간사회가 곧 생물개체가 모인 집단의 하나이니 이런 시도 자체가 무리일 순 없겠다. 하지만 38년 전에 나온 책이다보니 오늘날 사회의 현실과는 좀 맞지 않아 고개가 갸우뚱 거려지는 서술이 보이기도 한다. 건강한 후손을 가능한 많이 낳아서 유전자를 후세에 넘기는 게 가장 큰 목표인 유전자가 조종하는 개체가 왜 출산하는 새끼의 수를 억제하거나 심지어 피임까지 하는가에 대한 도킨스의 설명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


이기적 유전자 - 10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을유문화사


7. 가족계획

피임은 종종 '부자연스럽다'고 비난받는다. 그렇다. 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복지 국가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우리의 대부분은 복지 국가를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부자연스러운 복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자연스러운 산아 제한을 실행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 상태에 있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결과에 이를 것이다.

복지 국가란 지금까지 동물계에 나타난 이타적 시스템 중 아마도 가장 위대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타적 시스템도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그것은 그 시스템을 착취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이기적 개체에게 남용당할 여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키울 수 있는 것 이상의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무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므로, 그들이 의식적으로 악용을 꾀한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나는 다수의 아이를 낳도록 의도적으로 선동하는 지도자나 강력한 조직에 대해서는 그 혐의를 풀 수 없다고 생각한다. (209~210쪽)


이 장에서 우리의 결론은, 개개의 부모 동물은 가족계획을 실행하는데, 이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손의 출생률을 최적화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자기 새끼의 수를 최대화하려고 힘쓴다. 그러려면 새끼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도 안 되고 지나치게 적어도 안 된다. 개체에서 너무 많은 수의 새끼를 가지도록 하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 계속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 종류의 유전자를 체내에 가진 새끼들은 성체가 될 때까지 살아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16쪽)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생물학의 범주 안에 국한시키기를 거부하고 문화인류학적 고찰로 확장시키고자 한다. 그 유명한 문화유전자 ‘밈’에 관한 논의가 그것이다. 그는 유전자-밈, 자연선택-모방, 진화-문화의 확산이라는 도식을 제시했다. 문화의 변화와 확산 등의 현상을 이처럼 명쾌하게 유비해 내는 것이 바로 도킨스의 저력일 것이다. 물론 앞서 소개한 조진호 교사의 지적처럼 복잡한 사안의 단순화는 과도한 단순화, 도식화의 위험을 언제나 안고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여하튼 도킨스의 밈 이론은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과 더불어 과학자가 제시한 문화 변동에 관한 이론으로서 거의 ‘정상과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 하다.


11.밈-새로운 복제자

인간의 특이성은 대개 '문화'라고 하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잘났다고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과학자의 입장에서 이 단어를 쓴다. 문화적 전달은 유전적 전달과 유사하다. 기본적으로는 유전적 전달이 더 보수적이지만 일종의 진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말이다. 영국의 시인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와 현대의 영국인은 대화를 나눌 수 없을 것이다. 비록 그 두 사람 사이에 20세대 가량의 영국인이라는 사슬이 중단 없이 이어졌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 사슬에서 가까운 세대의 사람들만이 자식이 아버지와 대화할 때처럼 서로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유전자가 아닌 수단에 의해 '진화'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게다가 그 속도는 유전적 진화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318~319쪽)


새로이 등장한 수프는 인간의 문화라는 수프다. 새로이 등장한 자기 복제자에게도 이름이 필요한데, 그 이름으로는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담고 있는 명사가 적당할 것이다. 이에 알맞은 그리스어 어근으로부터 '미멤(mimeme)'이라는 말을 만들 수 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진(gene·유전자)'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유사한 단음절의 단어다. 그러기 위해서 위의 단어를 밈(meme)으로 줄이고자 하는데, 이를 고전학자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어떤 과학자가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대해 듣거나 읽거나 하면 그는 이를 동료나 학생에게 전달할 것이다. 그는 논문이나 강연에서도 그것을 언급할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인기를 얻게 되면 이뇌에서 저 뇌로 퍼져 가면서 그 수가 늘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322~323쪽)


진화론자 도킨스는 ‘당연히’ 무신론자다. 단순한 무신론자가 아니라 ‘전투적’ 무신론자라고 부를 정도다. 미국의 한 웹사이트는 현대사에서 영향력이 높은 10대 무신론자를 뽑아 소개하고 있는데 그 리스트의 맨 앞에 리처드 도킨스를 배치했다. (가장 영향력 있는 무신론자 톱10 보러가기) 그는 창조론자들을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때로는 조롱한다. 그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책을 쓰기도 했다. 그래선지 구글에서 그의 이름으로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그를 조롱하는 문구가 적힌 사진이나 그의 얼굴을 희화화 한 그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11.밈-새로운 복제자

맹신은 어떤 것도 정당화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신을 믿고 있거나 같은 신을 믿더라도 다른 의식을 행한다면 맹신은 그 사실만으로도 그가 죽어야 한다고 선고할 수 있다. 십자가에 매달거나, 화형을 시키거나, 십자군의 검으로 찌른다거나, 베이루트 노상에서 사살한다거나, 벨파스트의 술집에서 폭탄을 날린다거나, 그 무엇이든 정당화시킬 수 있다. 맹신의 밈은 특유의 잔인한 방법을 통해 스스로 번식해 간다. 애국적 맹신이든 정치적 맹신이든 종교적 맹신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331~332쪽)


13. 유전자의 긴 팔

자연 선택이 어떤 유전자를 선호하는 것은 유전자 그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그 결과, 즉 그 유전자가 표현형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384쪽)


즉 동물의 행동은,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그 행동을 하는 동물의 몸 내부에 있거나 없거나에 상관없이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의 생존을 극대화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동물의 행동'에 대해 썼지만 이 정리는 색깔, 크기, 형상 등 어떤 것에나 적용될 수 있다. (410쪽)


유전자와 생물 개체는 다윈주의의 드라마에서 같은 역할을 노리는 경쟁자가 아니다. 둘은 서로 다르고 보완적이며, 많은 점에서 동등하게 중요한 역할, 즉 자기 복제자라는 역할과 운반자라는 역할을 수행한다. (411쪽)


원칙적으로, 그리고 사실상 유전자는 개체의 체벽을 통과하여 바깥세상에 있는 대상을 조종한다. 그 대상 중에는 어떤 것은 무생물체고, 어떤 것은 다른 생물이며, 또 어떤 것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확장된 표현형의 힘이 방사상으로 뻗은 그물눈 중심에 유전자가 들어앉아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있는 대상물은 여러 생물 개체 속에 들어앉은 여러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력의 그물이 합쳐지는 지점이다. 유전자의 긴 팔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세상 전체가, 멀거나 가까운 표현형에 미치는 유전자의 영향을 잇는 인과의 화살로 가득 차 있는 셈이다.

우연이라기에는 실제적으로 너무 중요하지만, 필연이라 하기에는 이론적으로 불충분한 사실을 하나 추가해 두자. 그것은 이들 인과의 화살이 뭉쳐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기 복제자는 더 이상 바닷속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지 않다. 이들은 거대한 군체, 즉 개체의 몸속에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뭉쳐진 자기 복제자가 표현형에 초래하는 결과는 세상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그 개체에 응집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구에서 우리에게 이다지도 낯익은 개체라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우주의 어떤 장소든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뿐이다. (426~427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