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이 신입생을 뽑을 때 수시전형 비중을 많이 늘리는 바람에 요즘 대입 수험생들에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중요도가 과거보다 낮아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오늘 수능을 치러야 하는 학생들이 느낄 긴장까지 낮아진 것은 아닐 것이다. 과거처럼 '인생 항로를 결정짓는 단 한번의 시험'까지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수험생에겐 중요한 시험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늘 날씨가 수능일로서는 8년만에 영하로 내려가는 강추위라고 하는데 정말 춥긴 춥다.
블로그에 신변잡기적인 얘기는 가급적 쓰지 않았는데 오늘은 예외로 해야겠다. 나이 40줄에 접어든 나도 대학입학을 위해 시험을 치러야 했다. 이젠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대입을 위해 시험을 치렀던 그날은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만큼 긴장했다거나 그런게 아니고 내가 시험날 겪었던 일들은 정말 남달랐기 때문이다. 이날은 내 인생에 가장 드라마틱 했던 날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1991년 말 학력고사를 치러 재수 없이 92년 봄 대학에 입학했다.(나이가 이렇게 공개가 되는구나.) 당시 대입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선지원 후시험 체제였다. 우리 선배세대까지는 선시험 후지원 방식으로 오랫동안 대입이 치러졌는데 극심한 눈치작전의 폐해 때문에 아예 시험을 보기 전 원서를 넣도록 했다. 지금은 6군데까지 원서를 낼 수 있다는데 우리는 딱 한군데만 지원할 수 있었다. 내가 지원한 대학은 성북구 안암동에 있었다.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곳은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명지대 캠퍼스 뒷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북가좌동에서 안암동에 가려면 광화문-종로-신설동 코스를 거치거나 불광동-구기터널-구기동-북악터널-정릉으로 이어지는 길로 가야 한다.
이웃에 살았던 작은 할아버지의 소개로 개인택시 운전을 하시는 이웃 아저씨가 학력고사 당일 아침 학교까지 태워다 주기로 했었다. 출발시각은 아침 7시로 정해졌다. 어머니가 "너무 늦은 것 아닌가?"라고 말씀하셨지만 작은 할아버지께서 "7시에 출발해도 충분하다"고 해 그렇게 하기로 했다.
시험날인 1991년 11뤌17일 아침을 든든히 먹고 어머니와 함께 집을 출발했다. 이날은 기온은 무척 포근했지만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택시는 아까 말한대로 코스 가운데 후자인 불광동-구기터널-구기동을 거쳐 북악터널에 도착했는데 점점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도로에 차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때까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북악터널을 빠져나와 국민대 앞에 당도했을 땐 차가 거의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말 그대로 '주차장'이었다. 10~20분쯤 그렇게 속절없이 기다렸던 것 같다. 입실시각이 다가오는데 길이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택시 아저씨가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이대로 있다간 시간에 맞춰 시험장에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즉시 택시에서 내려 뛰기 시작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내가 먼저 뛰어내려 갔고 어머니가 뒤따라 오셨다. 정릉 로타리에 도착하니 '수험생특별수송'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곳에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보였다. 경찰관 곁엔 이미 수험생 몇몇이 서서 발을 구르고 있었다. 나도 그곳으로 갔다. 뒤따라온 어머니가 경찰관을 붙잡으며 "아저씨, 우리 아들 시험에 늦겠어요. 좀 도와주세요"라고 하소연했다. 경찰관은 내가 가야할 대학을 듣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 여기 학생들은 대부분 가까운 대학들에 가려는 학생들이에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차가 막혀 경찰차도 못가요." 속으로 "아, 이러다 시험을 쳐보지도 못하고 재수를 해야하는건가"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스쳐지나갔다.
그 순간 오토바이 한대가 곁을 지나갔다.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불러세웠다. 두부를 배달하는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오토바이를 세우며 "에이~씨, 나 일 좀 합시다. 오늘 벌써 세번이나 다녀왔어요"라고 투덜댔다. 경찰관이 내가 갈 곳을 알려주며 오토바이 뒤에 태웠다. 어머니는 내게 3만원을 건네며 "이따 아저씨한테 드려라"라고 말씀하셨다.
내 기억 속에 이 두부배달 아저씨는 영화 <007> 시리즈의 피어스 브로스넌이나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보다 훨씬 능수능란하게 오토바이를 운전한 아저씨로 남아있다. 아저씨는 차가 꽉 들어차 이동하기가 어려운 큰 길을 피해 골목길을 누볐다. 그 긴박한 순간에도 잠시 '신난다'라고 느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출발한 시각은 입실시각이 10분 가량 밖에 남지 않은 순간이었다.
드디어 학교 앞에 도착했다. 선배들을 응원하러 온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학교 앞은 혼잡했다. 아저씨는 나를 내려놓더니 바로 오토바이를 돌렸다. 나는 어머니가 주신 돈을 꺼내며 "아저씨, 이거 어머니가 드리라고…"라고 했다. 아저씨는 손사레를 치면서 그냥 가버렸다. '시험 잘보라'라는 덕담 한마디 없는 무뚝뚝한 아저씨였다. 나도 "고맙습니다"라고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저씨를 보내고 정신없이 시험장으로 뛰어들었다. 이미 입실시각을 지난 시각이었다. 시험장에선 첫번째 시간 시험지가 배부되고 있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잠바를 입고 내 자리로 갔다. 그리고 감독관에게 물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원래는 입실시각이 지나면 시험장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까치가 나를 살렸다.
"교통대란" 수험생 분통
전기대 입시가 치러진 17일 전국곳곳에서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각종 사고가 겹치면서 최악의 교통혼잡이 빚어져 고사장으로 향하던 1백50만여명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큰 혼란과 불편을 겪었다.
특히 주요 전기대가 집중된 서울·수원 등 수도권 전지역에서는 이날 새벽 경수선·안산선 전철운행이 단전사고로 2시간 이상 중단되는 바람에 입실마감시간에 쫓긴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아우성이 계속되면서 일부 고사장은 지각·결시자가 속출, 40분 이상 입실시간이 늦어지기도 했다.
또 대학이 몰려있는 서울 신촌과 흑석동·이문동·정릉 등 주요간선도로는 상오 일찍부터 수험생을 태우고 몰려든 차량들로 극심한 체증을 연출, 주차장을 방불케했다. (후략) <경향신문 1991년11월18일 15면>
대입 고사장길 대혼란
92학년도 전기대 입학학력고사가 치러진 17일 전국적으로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지역에서는 교통혼잡을 우려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새벽부터 고사장으로 향하는 바람에 오전 7시께를 전후해 한때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특히 이날 오전 5시50분께 시흥 전철역에서 전력공급선이 끊어지는 사고가 일어나 수원~시흥, 안산~금정 구간의 전철운행이 상행선 2시간20분, 하행선은 2시간35분 동안 중단돼 시험장으로 향하던 수험생과 출근길 시민 등 20만여명이 큰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험생이 교통혼잡을 우려해 서둘러 고사장에 입실하고 전철사고에 따라 교육부가 입실완료시간을 30분 연장해 학력고사는 수험생들의 지각사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날 전철 사고는 시흥역 구내 남쪽끝 지점에서 전철 전력공급선(2반5천V) 위를 가로지르는 한전 고압선(2만2천9백V)에 비에 젖은 까치가 날아들어 고압선이 합선돼 끊어지면서 아래에 있던 전철 전력공급선을 덮쳐 전철 경수선의 전력공급선 7개가 모두 끊어지면서 일어났다. (후략) <한겨레신문 1991년11월18일 15면>
그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긴박했던 하루였는데, 정작 그날 나는 너무도 태연했던 것 같다. 이미 시험지가 배부되고 있는 시험장에 들어가선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겠느냐고 묻는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허락을 받아 화장실에 가선 텅빈 화장실에서 혼자 담배까지 피우는 여유까지 부렸다. 그 시험으로 대학에 합격했으니 그게 다 붙을려고 그랬나보다라고 생각할 밖에.
오늘 수능을 보는 모든 수험생들이 노력의 대가를 올리길 기원한다. 그리고 대입시험으로 인생이 '한방'에 결정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고 말하고 싶다. 대입은 긴 인생의 두세번째 단추를 끼우는 것이며 그 단추를 잘 끼웠다고 나머지 단추까지 모두 다 잘 끼우리라는 보장은 없고, 설사 단추를 잘못 깨웠다 하더라도 만회 역시 없는 것이 아니라고.
제대로 고맙단 인사도 못드린 두부배달 아저씨께도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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