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창과 김현. 한 사람은 제주지검장으로서 법이 쥐어준 칼을 쓰던 사람이고 한 사람은 국회의원으로서 법을 만드는 사람이다. 한 사람은 심야에 길거리에서 수차례 '음란'한 행위를 했다가 들통이 나는 바람에 자리에서 물러나 20년 넘게 자신이 몸담았던 검찰의 수사까지 받고 있고, 한 사람은 세월호 가족 대책위 간부들을 위로한다며 가진 술자리 뒤에 벌어진 대리기사 및 행인과의 싸움박질 사건에 연루돼 경찰서를 오가고 있다. 후자의 경우 경찰 수사가 진행중이고 관련자들의 진술이 크게 엇갈리고 있어서 시시비비가 좀 더 가려져야겠지만 두 사람 모두 공직자로서 처신이 올바르지 못했다는 비판은 피할 길이 없다. 도덕적 질타뿐 아니라 위법한 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엄한 처벌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김수창과 김현이 각각 연루된 고약한 사건의 공통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벌금형 정도에 그치겠으나 공직자의 신분이기 때문에 더욱 호된 질타를 받고 있다.
한국 사회가 이들의 사건을 '소비'하는 방식도 유사하다. '김수창 사건'을 보자. 흰색 면바지에 반팔 니트 차림의 김수창이 어느 건물 복도에서 여성들을 뒤따라 가는 장면이, 여성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는 장면이, 어두컴컴한 건물 앞을 휙하고 지나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폐쇄회로(CC)TV 카메라에 포착되고 이 장면들은 종편, 공중파 채널이 시시각각 방영하는 화면으로 우리의 망막을 자극한다. 그런 장면들이 안겨준 자극이 가실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수시로 틀어주기 때문이다. 좀 있으면 다른 각도, 다른 장소에서 촬영된 화면이 입수됐다며 또 틀어준다.
김현 의원의 경우 '아쉽게도' 심야에 찍힌 CCTV 화면이 너무 어둡고 흐릿하다. 그러나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범죄의 장면이든, 범죄가 있었던 현장이든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면 오히려 흐릿한 게 더 좋을 수 있다. 홀닥 벗은 장면보다 ‘중요 부위’를 야릇하게 가린 장면이 더 야하다 하지 않았는가. 이런 장면들을 보지 않을 자유는 그리 넓지 않다. 그런 자유를 누릴려면 TV, 인터넷과의 절연을 각오해야 한다.
물론 불편한 장면을 언론이 전혀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불편하더라도 볼 것은 보아야 한다. 9·11테러 때 여객기가 월드트레이드센터 건물을 들이받고,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은 유족들에게는 그날의 고통을 오늘의 그것으로 재현시키는 불편한 장면이겠으나 대중이 그날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할 경우 틀어주고 봐야한다. 그런데 김수창과 김현이 등장하는 CCTV 장면이 과연 한국 사람들이 몇날 며칠 동안 반복해서 보아야할만큼 중요한 장면들이었을까.
사전은 관음증을 다른 사람의 알몸이나 성교하는 것을 '몰래' 훔쳐봄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는 변태 성욕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김수창과 김현이 찍힌 CCTV를 수시로 틀어주고 보는 것은 관음증이다. 그런데 관음증이라면 분명히 ‘몰래’ 훔쳐보는 것인데 한국 사회는 집단적·공개적으로 훔쳐보고 있다. 집단적·공개적 관음증이라는 이 형용모순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소동을 보고나니 길거리를 걷다가 콧구멍이 간지럽다고 함부러 코를 후비거나, 사타구니가 가렵다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슬쩍 긁거나 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 시내라면 골목길이라 할지라도 당신이 방심한 그 장면이 CCTV에 찍힐 활률이 거의 100퍼센트다. 그리고 그 장면이 언제 어떤 계기로 유포돼 누군가의 관음증을 충족시키기 위해 소비될지 모른다.
P.S. 써놓고 보니 최근 CCTV 화면과 관련해 회자된 또 한명의 김씨가 떠오른다. 배우 김부선이다. 그는 이른바 '0원 난방비' 문제로 아파트 주민회의에서 이웃 주민과 다투다 주먹질을 주고 받았고, 이 장면이 CCTV에 잡혀 역시 흐릿한 영상으로 텔레비전에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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