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이 처음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은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문과대학이었기에 '문청' 선후배들이 적지 않았고, 이 책은 이들을 매료시켰다. 게을렀던 나는 이 책을 다 읽지는 못했으나 이 책의 표지만큼은 눈에 익었다. 아마도 앞부분은 조금 읽었던 것 같기도 하다.
유홍준 선생은 문화재청장을 역임하기 전부터 정치권과 교분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현실파 문화인이었던 것이다. 내가 유홍준이란 이름을 많이 접했던 것은 오히려 민주화 운동사를 다룬 글들에서 였다. 유 선생은 다년간의 답사여행과 강연 등을 통해 민주화 운동 세력의 '문화적 소양 함양'을 책임졌던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3권이 230만부나 팔렸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입이 떡 벌어졌다. 대부분의 반응은 "그럼 돈을 얼마나 번거야?"였다. 사실 나도 궁금했지만 산수하길 싫어하는 관계로 포기했다. 다만 계산의 재료는 따져보았다. 각권이 1만3000원이니 1만3000원에 230억원을 곱하고, 저자 인세가 10%이니 나누기 10을 하면 된다. 세금이 붙었을테니 조금 차감되겠지만 대강 얼마인지는 계산이 나올 것이다.(누가 계산 좀 해주시라~)
간담회에서 당연히 인세 얘기가 나왔다. 유 선생 노련하게 빠져나가신다. "글쎄, 마누라한테 인세 통장을 맡겼더니 얼만지 저도 몰라요." 아마 여러 자리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것이고 나름 즉답을 피하는 방법을 고안한 것으로 보였다.
앞으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권과 5권을 쓸 예정인데, 겉으론 엄청 엄살을 부렸는데 속으론 나름의 자신감이 있는듯 했다. 인문서로 밀리언셀러를 훌쩍 넘겼다는데 대한 자부심도 느껴졌다. 주변에 물으니 유 선생은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양반이란다. 물론 이 때문에 주변의 시기도 많이 받았을 터이다.
연재는 <월간중앙>에서 하기로 했단다. 이전과 지금의 차이에 대해 물으니 두가지 얘기가 나왔다. 전엔 밤에 글을 썼는데 지금은 아침부터 쓴다는 것과 전엔 원고지에 손으로 썼지만 이번엔 컴퓨터로 작업을 해보니 할만 하더란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나온 후로 비슷한 컨셉의 책들이 많이 나왔다. 유 선생의 새로운 글이 새로운 여행트렌드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3권 200쇄 돌파한 유홍준 "요샛말로 하자면 '시즌2'를 시작하는 셈인데 제가 좋아하는 영화 <영웅본색 2>처럼 1편보다 재밌는 후속작을 쓰는 게 목표입니다. 전에 쓸 때는 패기도 있었고 가끔 톡톡 튀는 문체도 있었는데 원로 소리를 듣는 지금은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제목으로 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문체의) 컬러를 달리하면서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볼까 합니다."
1993년 처음 발행돼 2000년 누적 발행부수가 100만부를 넘어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창비).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로 시작되는 이 책은 출간 당시 '문화유산답사'라는 새로운 여행장르를 유행시켰고, 지금도 인문·교양 필독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94년과 97년에 각각 발행된 2권과 3권 역시 스테디셀러다. 9월 현재 이 시리즈는 1권 103쇄(130만부), 2권 56쇄(70만부), 3권 41쇄(40만부)를 기록 중이다. 3권을 합하면 200쇄를 돌파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유홍준 명지대 교수(60)가 10년 넘도록 3권째에 멈춰 있던 시리즈를 새로 이어간다. 1~3권에서 다뤄지지 않았거나 소홀했던 지역들을 대상으로 일단 2권의 책을 더 낼 예정이다. 유 교수는 200쇄 돌파를 기념하기 위해 7일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요새도 1년에 2만~3만권씩 나간다니 저자로서도 신기할 따름"이라며 책에 얽힌 뒷얘기와 앞으로의 집필계획을 밝혔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지금은 폐간된 월간지 '사회평론'에서 연재를 시작해 '사회평론 길'에서 마무리된 연재물이다. 연재 내용을 하나로 묶은 첫권이 나왔을 당시 독자들의 반응은 '열풍'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유 교수는 이처럼 폭발적인 호응과 그 열기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있는데 밀리언셀러가 된다는 건 한두 가지 요소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 시작할 땐 문민정부가 들어선 열기 속에서 검열 없이 군사정권을 마음껏 비판할 수 있다는 통쾌함에 휩싸여 썼는데 이런 이유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당시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해외 문화유산을 접한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국내 문화유산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고, 자동차 보급률이 높아져 문화유산 현장을 찾아가기 쉬워진 것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물론 "직접 가서 보고 잠을 자본 적이 없는 지역은 쓰지 않았다"는 유 교수의 말처럼 현장감이 살아있는 문체로, 자칫 딱딱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문화유산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는 책 자체의 미덕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시 문사들이 제 글을 두고 단문체냐, 화려체냐 토론을 한 적이 있다는데 결론은 '수다체'로 났다고 하더군요."
유 교수는 새 시리즈 역시 월간지 연재를 통해 먼저 선을 보일 생각이다. 어느 월간지에 연재할지는 출판사인 창비에 일임했다. 전남 순천에 있는 '선암사'편을 이미 탈고했는데 지리산·조계산·섬진강 일대의 산사들을 테마로 키워갈 예정이다. 충북지역은 상당산성·삼년산성·온달산성 등 산성 위주로, 그의 고향인 서울은 고궁과 정원 위주로 접근하고, 경기는 왕릉을 주요하게 다룬다. <2009.9.8>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세트 - 전3권 - 유홍준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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