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선 후보는 남장여자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들은 "생긴 건 진짜 남잔 같은데 이 사람 여자래"하면서 입방아를 찧었다. 또 한사람의 후보는 헤어스타일이 압권이었다. 마치 차의 창문을 완전히 열어놓고 한참을 달리고 나면 만들어질 법한 헝크러진 '바람머리' 스타일의 이 인물을 두고는 어른들이 더 입방아를 찧었다.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겨? 선거에 나올라믄 버리라도 제대로 빗고 나올 것이지." 그가 바로 백기완이었다.
이러구러 시간이 흘러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다시 대통령 선거가 열렸다. 나는 선거권이 없었지만 당연히 대선은 관심사였다. 이때 다시 백기완은 민중후보로 출마했고, 선배·동기들을 따라 백기완 후보 선거운동을 하러 다니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잠실 사이클 경기장에서 열렸던 후보추대식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대학 새내기였지만 엄청나게 몰려든 학생·노동자들이 내뿜는 열기에 휩싸여 묘한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 희안하게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 백기완 선생-사실 백기완 선생은 처음부터 '백 선생'이라고 불러왔기 때문에 이 호칭 말고 백기완씨로 부른다는게 너무 어색하다-을 가까이서 만났다. 간담회 전 책을 훑어보가 눈에 띈 부분이 역시 운동권이었던 큰딸(백원담 성공회대 교수)에 얽힌 일화를 언급한 대목이다.
"1986해이던가. 그 첫딸이 커갖고 모배울(대학) 선생을 하다가 알맥꺼리(노동운동)에 뛰어들고 그로 말미암아 전두환이 놈이 "잡으라"고 해서 냅다 달아나게 되었다. 마침 나도 '권양성고문진상폭로대회'를 이끌었다고 날 잡으러 왔다. '어림없지' 하고 냅다 달아나 떠돌던 어느 날, 강원도 어느 바닷가에 이르렀을 적이다. 깃줄대(전봇대)에 우리 첫딸애의 곧울(사진)이 붙어 있질 않는가. '백원담이 보는 대로 잡아들이라'는 으름장과 함께. 나는 북 하고 찢어 몰개(파도) 치는 바다에 던져버리며 갸의 어릴 적을 떠올렸다. 아침마다 엄마 따라가겠다고 아무리 울어도 아니 안아주던 내가 이제는 갸의 곧울마저 바다에 던지다니, 갑자기 눈시울이 써물댔다(근질댔다)."(187~188쪽)
간담회에서 이 대목에 관해 물었다. 혹시 가족에 대해 부채감을 느끼지 않느냐고. 그 스스로 "한평생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이미 말했던 터였다. 백 선생은 책에 소개된, 달동네를 전전했던 이야기를 하더니만 "나는 그렇게 젊은 날을 보내면서도 모순을 느끼지 않았어. 애들 밥을 못먹이고, 집을 못얻었다고 해서 모순을 못느꼈어. 젊은이대로 나나름대로 살아보자고 몸부림 쳤던 것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간담회 자리에서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잔인한 질문을 그 스스로 수없이 던졌을 것이고 그때마다 눈물을 흘렸으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기완 자서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출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백기완 지음/한겨레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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