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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과 사람

투사 백기완, 욕쟁이 백기완, 울보 백기완

 추석 직전에 백기완 선생의 자서전이 나왔다며 출판사에서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고 연락이 왔다. 아~ 백기완. 내가 백기완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것은 중학생 때였다. 1987년 대선이 있던 해에 나는 깡촌에 살고 있었는데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학교 앞 담벼락에 선거 포스터들이 붙었다. 산골마을에 사는 중학생에게 선거는 그리 큰 관심사가 아니었지만 각자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호감가는 표정을 짓고 있는 후보들의 모습은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포스터 속 인물들 특히 우리 꼬맹이들의 관심을 끌었던 인물은 노태우도, 김영삼도, 김대중도 아니었다.

 김옥선 후보는 남장여자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들은 "생긴 건 진짜 남잔 같은데 이 사람 여자래"하면서 입방아를 찧었다. 또 한사람의 후보는 헤어스타일이 압권이었다. 마치 차의 창문을 완전히 열어놓고 한참을 달리고 나면 만들어질 법한 헝크러진 '바람머리' 스타일의 이 인물을 두고는 어른들이 더 입방아를 찧었다.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겨? 선거에 나올라믄 버리라도 제대로 빗고 나올 것이지." 그가 바로 백기완이었다.

이러구러 시간이 흘러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다시 대통령 선거가 열렸다. 나는 선거권이 없었지만 당연히 대선은 관심사였다. 이때 다시 백기완은 민중후보로 출마했고, 선배·동기들을 따라 백기완 후보 선거운동을 하러 다니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잠실 사이클 경기장에서 열렸던 후보추대식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대학 새내기였지만 엄청나게 몰려든 학생·노동자들이 내뿜는 열기에 휩싸여 묘한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 희안하게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 백기완 선생-사실 백기완 선생은 처음부터 '백 선생'이라고 불러왔기 때문에 이 호칭 말고 백기완씨로 부른다는게 너무 어색하다-을 가까이서 만났다. 간담회 전 책을 훑어보가 눈에 띈 부분이 역시 운동권이었던 큰딸(백원담 성공회대 교수)에 얽힌 일화를 언급한 대목이다.

 "1986해이던가. 그 첫딸이 커갖고 모배울(대학) 선생을 하다가 알맥꺼리(노동운동)에 뛰어들고 그로 말미암아 전두환이 놈이 "잡으라"고 해서 냅다 달아나게 되었다. 마침 나도 '권양성고문진상폭로대회'를 이끌었다고 날 잡으러 왔다. '어림없지' 하고 냅다 달아나 떠돌던 어느 날, 강원도 어느 바닷가에 이르렀을 적이다. 깃줄대(전봇대)에 우리 첫딸애의 곧울(사진)이 붙어 있질 않는가. '백원담이 보는 대로 잡아들이라'는 으름장과 함께. 나는 북 하고 찢어 몰개(파도) 치는 바다에 던져버리며 갸의 어릴 적을 떠올렸다. 아침마다 엄마 따라가겠다고 아무리 울어도 아니 안아주던 내가 이제는 갸의 곧울마저 바다에 던지다니, 갑자기 눈시울이 써물댔다(근질댔다)."(187~188쪽)

 간담회에서 이 대목에 관해 물었다. 혹시 가족에 대해 부채감을 느끼지 않느냐고. 그 스스로 "한평생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이미 말했던 터였다. 백 선생은 책에 소개된, 달동네를 전전했던 이야기를 하더니만 "나는 그렇게 젊은 날을 보내면서도 모순을 느끼지 않았어. 애들 밥을 못먹이고, 집을 못얻었다고 해서 모순을 못느꼈어. 젊은이대로 나나름대로 살아보자고 몸부림 쳤던 것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간담회 자리에서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잔인한 질문을 그 스스로 수없이 던졌을 것이고 그때마다 눈물을 흘렸으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 역사가 요구하는 긴장 먹고 살아야"
-백기완 자서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출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10점
백기완 지음/한겨레출판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어. 역사는 언제나 긴장을 요구하지. 긴장을 먹거리로 삼으면 키가 크지만 그렇지 않으면 키가 크지 않아. 한자말로 하자면 '발육부진'이 된다 이거야. 좌절과 절망투성이인 내 이야기를 글로 쓴 까닭은 요새 젊은이들에게 좌절과 절망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역사의 실체를 읽어보라고 하기 위해서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76·사진)이 자서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를 펴냈다. 한겨레신문에 3개월간 연재했던 글들을 새로 다듬어 엮은 것이다. 17년째 여름이면 입고 다닌다는 검정색 한복 차림으로 29일 기자들과 만난 백 소장은 '영원한 거리의 싸움꾼'이란 별명에 걸맞게 거침이 없었다. 그는 "내 얘길 듣고 발을 동동 구르던 젊은이들, 내가 쓴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를 읽고 눈물 흘렸던 세대가 이제 40~60대가 됐는데 다 어디 있냔 말이야. 이 늙은이 백기완이는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같이 읽고 같이 좀 울자 이거야"라고 말했다.
 백 소장은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기개만은 잃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해 뜨거운 가슴과 단단한 주먹 하나로 운동에 뛰어들었던 청년 시절, 함석헌·장준하·문익환 등 수많은 재야인사들과의 일화, 1987년 '민중대표'로 대선에 나섰던 이야기 등 굴곡진 대한민국 현대사에 맞서 살아온 자신의 일생을 이 책에 오롯이 담았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영어단어나 한자어를 쓰지 않고 순우리말로만 쓰여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괄호가 많이 등장한다. '갈마'(역사), '굴묵'(책), '달구름'(세월) 하는 식이다. 시인이면서 '달동네' '동아리' '새내기' 등 요즘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들을 지어낸 작가로서의 상상력이 총동원됐다. "그늘에 가려지고 땅에 묻히고 그런 우리 무지렁이들의 말들이 엄청 많거든. 사전이라고 있지만 한줌 모래를 쥔 것처럼 얼마 안돼. 그늘에 가려지고 땅에 묻혔던 무지렁이들의 낱말들을 많이 끄집어내기도 하고 일그러진 것들은 펴보기도 했어."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지금도 파업현장이든, 집회현장이든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부르면 달려가는 백 소장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빼놓지 않았다. "내가 이명박 대통령이 대학 1학년일 적부터 알아. 젊은 사람이 대통령 하겠다는 것에 뭐라고 하겠어. 그런데 진짜 내 양심에 따라서 안되겠다고 하는 것은 안되는 것이야. 용산을 보라고. 사람을 저렇게 죽여놓고."
 죽기 전에 우리말과 민중해방사상의 뿌리를 정리하고 싶다는 백 소장. 묘비에 어떤 글귀를 남기고 싶은지 물었더니 '비문(碑文)'이라는 자신의 시 한수를 읊었다. "익은 낱알은 죽지 않는다. 땅으로 떨어질 뿐이다. 산새, 들새들이여. 낱알은 물고 가되 울음은 떨구고 가시라." <2009.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