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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시사변두리

김제 마늘밭 돈뭉치 사건의 교훈

'마음씨 곱고 성실한 농부와 금덩어리'는 우리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이다. 여기에 욕심 많고 게으른 형, 또는 부잣집 농부가 대립항으로 곧잘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이런 플롯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가난하지만 노모를 깎듯하게 모시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농부가 있다. 그는 여느날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차려 어머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지게에 농기구를 지고 밭으로 향한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 소 한마리 없이 밭을 갈아야 하는 농부의 얼굴엔 금새 땀방울이 흐른다. 한참 괭이질을 하고 잠시 허리를 펴고 쉬기를 반복하는 농부. 밭 중간쯤 왔을 때 힘차게 땅을 향해 내리 꼿은 괭이 끝이 뭔가 딱딱한 물체와 부딪치면서 생긴 진동이 농부의 손으로 전달된다. 다시 한번 괭이질을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농부는 '이 밭에 이렇게 큰 돌덩어리가 묻혀 있었나?'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덩어리를 파내기 위해 돌덩어리 주변 흙을 파낸다.

잠시 주변 흙을 파내자 묻혔던 물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른 머리만한 금덩어리가 번쩍번쩍 빛을 내며 묻혀 있는게 아닌가? 놀란 농부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나자빠진다.

그 뒤 이야기는 어렸을 적 동화를 좀 읽은 사람들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전형적인 스토리는 금덩어리를 파낸 농부는 노모와 함께 잘 먹고 잘 살아가는데, 배가 아픈 이웃의 부자는 이 금덩어리를 빼앗기 위해 꾀를 냈다가 성공하는듯 하다가 제꾀에 넘어가 낭패를 본다. 이런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는 옛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신기한 독>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금덩어리 대신 물건을 하나 넣으면 화수분처럼 같은 물건이 끝도 없이 나오는 '신기한 독'이 나온다.

신기한 독 - 10점
홍영우 글.그림/보리

변형된 스토리도 있다. 농부가 금덩어리를 파내 잘 먹고 잘 살게 되자 슬슬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고 낭비하고 노모를 팽개쳤다가 하늘이 내려준 행운을 허망하게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단물 고개>다. 이 이야기에서는 금덩어리는 나오지 않지만 너무도 시원하고 맛이 좋은 샘물이 성실한 청년에게 발견되지만, 욕심이 생긴 청년이 단물이 나오는 샘을 깊이 파버리면서 샘물이 말라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하고 비슷하다.

단물 고개 - 10점
소중애 글, 오정택 그림/비룡소

전북 김제의 마늘밭에서 금덩어리가 한개도 아니고 무더기로 '발굴'됐다. 처음 밭에서 묻어뒀던 돈뭉치가 발견됐다는 뉴스가 나왔을 땐 그저 해프닝으로 치부됐지만 10억원, 20억원씩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세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 밭 주변에 사람들이 삽과 괭이를 들고 몰려드는 것 아니냐는 얘기부터, 그 마늘밭 가격이 엄청나게 뛰었을 것이란 얘기, 마늘이 한순간에 김제의 특산품이 됐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김제 마늘밭 돈뭉치 사건'은 호사가들의 입과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밝혀진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엔 더이상 마음씨 곱고 효성 지극하고 부지런한 농부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농부가 있었다면 김제 마늘밭에 묻혔던 100억원이 넘는 현금은 그에게 발견됐고, 덩달아 그의 노모도 호강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제 마늘밭의 돈뭉치는 괭이가 아니라 경찰이 동원한 포클레인에 의해 발굴됐고, 발굴된 돈은 가난하지만 마음씩 착한 농부를 부유하게 해주는 대신 국고로 귀속되게 됐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안타까워 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사림들이 이번 김제 마늘밭 돈뭉치 사건을 보면서 '역시 옛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다'라는 교훈을 얻어 마음씨를 곱게 먹고, 노모를 공경하며, 열심히 밭을 일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역시 우리 옛이야기 가운데 아버지가 게으른 아들에게 "과수원 어딘가에 금덩어리를 숨겨 놓았다"고 유언을 하고 아들은 금덩어리를 찾기 위해 과수원 곳곳을 파헤치는 바람에 농사가 잘 돼 부자가 됐다는 얘기가 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