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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시사변두리

가축전염병예방법의 추억

4년 마다 한번씩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국회는 집권당이 누구인가, 다수당이 누구인가, 여소야대인가 아니면 여대야소인가, 의석분포가 양당구도인가 다당구도인가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큰 틀에서 구조와 성격이 구성된다. 초선의원 비율이 얼마나 높은가 같은 요소도 사소해 보이지만 해당 국회의 운영에 영향을 미친다.

집권당은 집권당으로서 대통령이 제시한 공약과 자신들이 총선에서 내건 공약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고, 야당들도 마찬가지다. 공약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은 바로 국회의 고유 권한인 법률 제정 또는 개정과 예산에 대한 통제다. 특히 법률 제정권은 국회 고유의 권한으로서 국회의원으로서의 1차적인 성과는 법률 제정 또는 개정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므로 유권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보통 국회의원의 책임성(accountability)이 너무 낮다고 불평하곤 한다. "선거 때만 뻔질나게 찾아와서 고개 숙이고 하더니만 선거가 끝나고 나니까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불평이 대표적이다. 유권자인 자신의 요구에 반응하지 않고 제멋대로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국회의원들을 보면 개인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지역구 유권자들의 뜻을 수렴하고 의정활동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들 한다.

국가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요구가 어떠한지 청취해서 법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4년마다 구성되는 국회마다 쟁점이 됐던 법률들을 보면 일종의 시대정신이랄까, 아무래도 칼자루를 쥐게 마련인 집권여당의 정치적·정책적 의지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다.

2008년 총선을 거쳐 구성된 지금 국회가 18대 국회인데, 이른바 '탄핵역풍' 끝에 구성된 17대 국회를 예로 들어보면, 당시 열린우리당이 내세웠던 이른바 4대 개혁입법이 뜨거운 쟁점이었다.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진상 규명법 제정, 사립학교법 제정, 언론 개혁법 제·개정 등이 그것이다. 특히 사립학교법은 야당인 한나라당이 오랫동안 장외투쟁을 하면서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갔던 법안이었다.

그리고 17대 국회에서 뜨거운 쟁점이었던 법이 바로 종합부동산세법이다. 건물과 토지 등 개인이 소유한 부동산의 총액을 합산(공시지가 기준)해서 6억원이 넘을 경우 종합부동산세를 매긴다는 내용이었는데 조세를 통해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보수언론은 종합부동산세에 '세금폭탄'이라는 섹시한 레떼르를 붙였고, 실제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사람은 전체 인구 가운데 3%에도 미치지 않았지만 대중적인 반감이 일거에 확산됐다. 17대 국회 내내 종부세 전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18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종부세법은 과세기준이 9억원으로 대폭 상향되고, 부동산 합산 기준도 부부합산에서 개인별 합산으로 헐거워지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그럼 현재 국회인 18대 국회를 대표하는 법률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축전염병예방법'이 그 목록의 윗부분에 올려져야 할 것이다. 좀 생뚱맞지만 '가축의 전염성 질병이 발생하거나 퍼지는 것을 막음으로써 축산업의 발전과 공중위생의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 18대 국회 최대의 쟁점법안이었던 것이다. 가축 전염병 예방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축산업 발전가 공중위생의 향상이 소홀하게 취급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생뚱맞지 않은가?

시계를 돌려 2008년으로 돌아가보자.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온나라가 몸살을 넘어 거의 패닉 상태의 진통을 겪었다. 광화문 네거리를 컨테이너 산성으로 막았던 이명박 대통령이 마지못해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 개방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엎질러진 물을 그나마 수습하기 위해 국회게 내놓은 대안이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이었다. 가축전염병예방법에 광우병 관련 사항을 규정하고 30개월 이상 위험물질의 수입을 금지하는 등의 사후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당시 이 법을 만들 때도 진통이 심했다. 야당은 최대한 안전판의 수위를 높이고자 했고, 여당인 한나라당은 헐겁게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당시 개정된 법률로 신설된 조항들은 다음과 같다.

가축전염병예방법 2008년 9월11일 일부개정

제2조(정의)
<신 설>
6. “특정위험물질”이란 소해면상뇌증 발생 국가산 소의 조직 중 다음 각 목을 말한다.
가. 모든 월령(月齡)의 소에서 유래한 편도(扁桃)와 회장원위부(回腸遠位部)
나. 30개월령 이상된 소에서 유래한 뇌·눈·척수·머리뼈·척주
다.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소해면상뇌증 발생 국가별 상황과 국민의 식생활 습관 등을 고려하여 별도로 지정·고시하는 물질
 
제32조(수입금지)
<신설>
3. 소해면상뇌증이 발생한 날부터 5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국가산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신설>
4. 특정위험물질

<신 설>
 제32조의2(수출국에 대한 쇠고기 수입 중단 조치) ①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은 제34조제2항에 따라 위생조건이 이미 고시되어 있는 수출국에서 소해면상뇌증이 추가로 발생하여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 쇠고기 또는 쇠고기 제품에 대한 일시적 수입 중단 조치 등을 취할 수 있다.
②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은 제1항에 따라 수입을 중단하거나 이를 재개하려는 경우 제4조제1항에 따른 중앙가축방역협의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제34조(수입을 위한 검역증명서의 첨부)
<신 설>
③ 제2항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소해면상뇌증 발생 국가산 쇠고기 또는 쇠고기 제품을 수입하거나 제32조의2에 따라 중단된 쇠고기 또는 쇠고기 제품의 수입을 재개하려는 경우 해당 국가의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의 수입과 관련된 위생조건에 대하여 국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단어들이 여럿 눈에 띄지 않는가?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 뜨겁고 치열했던 2008년이 이 법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가축전염병예방법은 그리 자주 개정되는 법이 아니다. 1961년 제정됐으므로 올해 만 50년이 된 법인데 그간 18번 개정됐다. 그중 타법개정에 의한 개정, 다시 말해 이 법의 내용은 크게 변한게 없는데 다른 법이 개정되면서 일부 개정된 것이 6차례 있었고, 법조문 전체가 개정된 것은 2차례 있었다. 제정된 다음 20년이 지난 다음에야 처음으로 개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 법의 연혁은 다음과 같다.

■가축전염명예방법 제개정 연혁

1.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2010.11.26] [법률 제10310호, 2010.5.25, 타법개정]
2.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2010.12.30] [법률 제10244호, 2010.4.12, 일부개정]
3.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2010.12.30] [법률 제9959호, 2010.1.25, 일부개정]
4.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2008.9.11] [법률 제9130호, 2008.9.11, 일부개정]
5.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2008.2.29] [법률 제8852호, 2008.2.29, 타법개정]
6.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2008.2.4] [법률 제8587호, 2007.8.3, 일부개정]
7.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2005.7.1] [법률 제7434호, 2005.3.31, 일부개정]
8.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2003.6.27] [법률 제6817호, 2002.12.26, 전부개정]
9.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2001.7.27] [법률 제6379호, 2001.1.26, 일부개정]
10.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2001.1.1] [법률 제6305호, 2000.12.29, 타법개정]
11.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2000.3.1] [법률 제6224호, 2000.1.28, 일부개정]
12.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1999.7.1] [법률 제5952호, 1999.3.31, 일부개정]
13.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1998.1.1] [법률 제5453호, 1997.12.13, 타법개정]
14.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1996.8.8] [법률 제5153호, 1996.8.8, 타법개정]
15.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1995.7.6] [법률 제4885호, 1995.1.5, 일부개정]
16.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1995.1.1] [법률 제4796호, 1994.12.22, 타법개정]
17.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1985.4.1] [법률 제3762호, 1984.12.31, 일부개정]
18.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1982.7.2] [법률 제3548호, 1982.4.1, 전부개정]
19.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1961.12.30] [법률 제907호, 1961.12.30, 제정]

그런데 가축전염병예방법이 다시 한번 개정될 예정이다.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과 관련해서 현재 지자체가 책임지고 있는 살처분 및 방역 비용을 국고에서 지원하고, 피해를 본 농가와 주변 상가들에 대한 국가의 지원방안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 13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다. 19번째 개정이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옛날부터 '가축'과 이러저러하게 얽혀 살아가고 있다. 직접 키우지는 않더라도 정육점에서 마트에서 가축의 몸을 사서 먹으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축전염병예방은 중요한 일이고 그에 관한 법도 당연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18대 국회 최대의 쟁점법안이 가축전염병예방법이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생뚱 맞다. 우발적으로 등장해 18대 국회의 시대정신이 됐다고나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