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이른바 '국민대통합' 행보가 연일 뉴스거리다. 대선 후보가 아니더라도 당 대표만 되어도 국립묘지 참배를 필두로 전직 대통령과 상대당 대표들을 예방하는 등 인사를 다니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렇지만 박근혜 후보는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해 관계가 매우 민감하고 난처해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자신의 아버지의 최대 정적이자 아버지가-백번 양보해 아버지가 거느리던 수하들이-암살을 기도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도 참배했다. 그런가 하면 산업화의 주역이지만 착취받고 억압당한 노동자의 표상인 전태일 열사 흉상에 헌화했다.
스피드와 접촉면 모두에서 '광폭행보'라 할 수 있다. 야권은 의표를 찔린 듯 당황스런 모습이다. 박근혜의 광폭행보는 중도층을 끌어안겠다는 포석이지만 자신의 지지층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쉽게 빼들기 어려운 카드다.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 곧바로 자신의 지지층들이 평가절하하고 때로는 욕하는 전직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다는 것은, 그렇게 해도 지지자들이 자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만큼 박 후보의 지지층이 공고하다는 얘기다.
반대의 상황을 가정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가서 김 전 대통령의 천거로 정계에 입문한 일화를 소개하고 김 전 대통령이 준 손목시계를 아직도 차고 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나름의 감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노 후보는 그날 일로 상당수의 지지자들로부터 호되게 욕을 먹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자이기도 했던 노 후보의 지지자들은 “대통령 후보로 뽑아줬더니 고작 한다는게 IMF를 불러온 YS를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냐”라고 화를 냈다. 지지자들은 노 후보의 YS예방을 ‘국민대통합’ 또는 ‘광폭행보’가 아니라 지지자를 배신하는 행위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야권 후보의 경우 2012년의 상황도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2002년의 노무현 후보의 자리에 문재인을 집어넣든, 손학규를 집어넣든, 김두관을 집어넣든, 정세균을 집어넣든, 아니면 안철수를 집어넣든 그가 YS나 전두환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린다면 십중팔구 지지자들은 똑같이 화를 낼 것이다.
장 자크 루소는 영국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비판하면서 "영국 사람들은 그들이 자유롭다고 믿지만 대단한 착각이다. 그들은 국회의원 선거 기간에만 자유롭다. 국회의원이 선출되자마자 그들은 노예가 된다"(The English people believes itself to be free; it is gravely mistaken; it is free only during election of members of parliament; as soon as the members are elected, the people is enslaved; it is nothing.)고 말했다.
어떤 정치인이 있다. 그는 유권자(지지자)들에게 "당선되면 유권자(지지자) 여러분들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외친다. 정치학 용어로 선출직 정치인이 자신을 찍어준 유권자(지지자)들의 뜻을 어기지 않고 수행하는 것을 '책임성'(accountability)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선출된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유권자(지지자)들의 의사에 얽매이지 않거나 유권자들의 의사를 거스르는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을 '자율성'(autonomy)을 지닌다고 말한다.
루소의 지적을 책임성과 자율성의 개념으로 다시 풀이하자면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인들이 선거 기간에는 유권자(지지자)들을 향해 “책임성을 지키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선출되고 나서는 책임성을 지키기 보다는 자율성을 앞세워 자기 뜻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자율성과 유권자에 대한 배반은 어감의 차이가 있지만 똑같은 행동도 각자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달라질뿐 현상 그 자체는 같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최근 칼럼은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병폐로 대통령의 책임성 부재를 꼽으면서 책임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최장집칼럼]책임정치를 위하여)
예를 들어보자.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남자A는 여자B를 사랑하기에 여자B가 요구하는 것들을 자신의 행동의 우선 과제로 여긴다. 이럴 때 남자A는 여자B에 대해 책임성을 다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사랑한다 한들 소소한 취향의 차이나 의견의 대립은 있기 마련이다. 여자B는 남자A가 머리를 2대8 가르마로 빗으면 늙어보인다고 싫어한다. 틈날 때마다 잔소리를 하면서 싫은 내색을 한다. 염색을 하자고 미장원에 끌고간 적도 있다. 그런데 남자B가 다니는 회사는 외모에 대한 규율이 상당히 보수적이다. 2대8 가르마는 사장에서부터 말단 사원까지 암묵적인 규정으로 정해져 있다. 더구나 남자A가 보기에 자신은 2대8 가르마가 상당히 어울린다. 솔직히 그 스타일이 좋다. 그래서 남자A는 여자B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2대8 가르마를 고수한다. 이럴 때 남자A는 여자B에 대해 자율성을 발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책임성과 자율성에 관한 논의는 선출된 정치인이 '대리인'(deputy)인지, '수탁인'(trustee)인지로도 설명할 수도 있다. 대리인 모형에 따르면 선출된 정치인은 유권자들을 대신해서 업무를 하는 사람이므로 유권자들의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최고의 임무이며, 이렇게 파악된 유권자들의 뜻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면 된다. 대리인 모형은 이렇게 하는 것이 최고의 민주주의 작동방식이라고 말한다. 반면 수탁인 모형은 최종적인 권한이 유권자들에게 있는 것은 맞지만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선출된 정치인에게 믿고 맡겼(신탁)으므로 그는 전문성을 발휘해 헌법이 정한 틀 안에서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로서 대리인·신탁인 모형에 관한 논의는 2007년에 나온 책 <여론조사- 대중의 지혜를 읽는 핵심 키워드>(프랭크 뉴포트/정기남 옮김)에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여론조사 - 프랭크 뉴포트 지음, 정기남 옮김, 안부근 감수/휴먼비즈니스 |
다시 박근혜 후보 애기로 돌아가보자. 나는 박 후보의 행동이 대선가도에서 제기될 역사적 장애물을 치우기 위한 행동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욕할만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군부독재자의 딸이자 그 스스로가 군부독재정권에서 역할(퍼스트 레이디)을 했던 박 후보가 짊어지고 풀어야 하는 역사적인 짐은 몇번의 이벤트로 해소되지 않는다. 하지만 겉모습으로라도 화해와 용서를 시도하는 것을 두고 욕할 수는 없다.
현재까지 봤을때 박 후보 지지자들은 그것이 대선 승리를 위해 대선까지만 전략적으로 부여한 것일지라도 박 후보에게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했다. 박 후보가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을 때 박 후보 지지자들은 '국민대통합을 위한 진정성 있는 행동'이라고 칭송했다. 오히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진정성 없는 무례한 행동'이라며 화를 냈다.
그런데 박 후보 지지자들이 박 후보에게 부여한 것이 진정한 자율성일까? 대선 승리를 위해 전략적으로 부여한 '유사 자율성' 아닐까? 그리고 박 후보가 누리는 자율성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앞서 말한 수탁인 모형으로 움직이는 민주주의가 바람직한 것인가? 흥미롭지만 나의 짧은 지식과 어두운 눈으로는 당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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