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국회의원. 미녀와 야수라는 말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그럴듯한 짝이 되는 말 같기도 하다. 권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현실정치의 수렁에 깊숙히 발을 딛고 있는 국회의원과 '창백한' 얼굴의 시인은 서로 상극인 것처럼 보이지만, 극단에 서서 치열하게 투쟁하고 고뇌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양자는 서로 통할지도 모른다.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영환 의원이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 작성을 위한 상임위를 거부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면서 밤사이 작성을 했다면서 글 한편을 낭독했다. 알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김영환 의원은 시집을 7권이나 낸 시인이다. 스스로가 정치인이 되지 않았으면 전업시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최 후보자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날선 비판과 비난이 한바탕 쏟아지고 난 다음에 낭독되는 김 의원의 글, 아니 시. 의원들의 '워딩'을 습관적으로 워드프로세서에 받아치기에 바빴던 기자들의 손가락이 잠시 자판 위에서 갈곳을 몰라 헤맸다. 잠시 눈을 들어 회의에 참석한 다른 의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엄숙했다.
그런데 이날 회의장엔 열혈 시인이 한명 더 있었다. 그는 화가이기도 한데 바로 민주당 김재균 의원이다. 국회 본청에 있는 민주당 원내대표실엔 김 의원이 그린 꽤 큼직한 유화 액자가 한점 걸려 있다. 풍경화인데 인상주의 풍이다. 광주의 구청장 출신인 김 의원은 의원이 되기 전인 2001년 첫 시집을 냈고 국회의원이 되고난 뒤인 2009년에 두번째 시집 <장수풍뎅이를 만나다>를 내기도 했다.
김재균 의원이 정치인 시인으로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은 역시 국회의사당 내 '현장'에서다. 지난해 12월 예산안 날치기가 연이서 세번째 이뤄진 예산안 날치기였다. 김 의원은 2008년 4월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처음 국회의원이 됐는데 그해 말에도 예산안을 두고 여야가 대립하면서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일이 발생했다.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고 숙식을 안에서 해결한 것이다. 김 의원은 점거 4일째 되던 날 아래의 시를 썼다며 의원들 앞에서 낭송 했다. 당시 나는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기 때문에 현장에 있지는 못했지만 당시 이 시가 의원들 사이에서 꽤 낭송됐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지난해 7월쯤 한나라당의 윤석용 의원이라는 분이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기사도 검색된다.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어릴적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으로서 한의사이자 빈민운동가 출신이란다. 정치에 입문해서도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 없어 시를 써서 문예지에 투고했단다.
"광화문에 지나다니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면 세명 중 한명은 시인"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시인이 많다는거다. 여기서 말하는 시인은 우리가 흔히 아는 전업시인 외에 시를 써서 이러저러한 경로로 발표하고, 타칭 자칭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정확히는 알수 없으나 시인협회에 가입한 회원수도 수만명에 이르고 각 자치단체별로 지부가 있는 것으로 안다. 이들이 동인지도 내고 한다.
정치의 세계는 우리에게 촘촘한 그물망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빈틈없이 치밀한 전략과 전술 같은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시의 세계는 여백의 이미지에 가깝다. 절제된 언어의 여백에 담긴 무한세계 말이다. 정치와 시, 정치인과 시인은 그래서 매우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국회의원이 된 시인들, 시인이 된 국회의원들은 양자가 서로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누가 더 날선 언어를 고르느냐의 경연장이 되고 만 정치의 세계. 시인 정치인들의 '시로 하는 워딩'은 솔직히 기사에는 별로 도움이 안되지만 잠시 숨을 돌릴 여유를 안겨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시인과 국회의원. 미녀와 야수라는 말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그럴듯한 짝이 되는 말 같기도 하다. 권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현실정치의 수렁에 깊숙히 발을 딛고 있는 국회의원과 '창백한' 얼굴의 시인은 서로 상극인 것처럼 보이지만, 극단에 서서 치열하게 투쟁하고 고뇌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양자는 서로 통할지도 모른다.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영환 의원이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 작성을 위한 상임위를 거부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면서 밤사이 작성을 했다면서 글 한편을 낭독했다. 알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김영환 의원은 시집을 7권이나 낸 시인이다. 스스로가 정치인이 되지 않았으면 전업시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내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 >
(※이 제목은 넬슨 말델라가 감방에 걸어두었던 시였던 ‘인빅터스’에서 따왔다고 한다.)
추서(推恕)
이 말은 남을 용서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들여다 보면서 자기와 마주보고 있는사람을 섬기라는 말로
다산이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오늘 잘못된 인사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왜냐하면
내 안에 부동산투기의 마음이 있고 세금 탈루의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말 농장에 대한 꿈이 있고 강남 아파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고
남보다 뛰어난 능력에 대한 과신이 있고 국민과 맞설 용기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의 손을 관용이라는 마음으로 당장 잡지 않는 것은
내 안의 부정과 독선의 독버섯이 오연하기 때문입니다
어둑 새벽에 일어나 열세번이나 나라의 부름을 받고도 나아가지 않은 남명 조식을 생각합니다.
출측유위 처측유수出側有爲 處側有守((나아가면 하는 바가 있어야 하고 물러나면 지킴이 있어야 한다)
나아갔으나 하는 일이 없는, 물러나서도 지키는 바가 없는 나를 타이르는 말이 왜 아니겠습니까?
오늘 당신들의 따스한 손으로 맞 잡지 못하는 것은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나라를 거짓의 묵정밭에 세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와 도전의 내 아이들의 미래를
나와 우리 부모들의 투기와 부정위에 세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거짓이 다른 거짓을 낳는 우리들의 더러운 손을
자기 반성과 성찰의 뜬봉샘에 씻지 않고는 새로운 상상력의 강은 흐르지 않습니다.
"네 탓이오" 위에서 "생각의 창고"는 열리지 않습니다.
‘모르쇠’는 자기 성찰 의 문을 닫아 거는 자물쇠입니다.
자기만이 옳다는 소신으로 무장한 로마군단으로는
창조와 도전의 지식경제가 열리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격정에 놀라 손을 놓을 착한 우리들의 공무원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잘못된 일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내 안에 똑 같은 광기와 탐욕이 또아리를 틀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의 결별을 결의 하기 위해 부정과 투기와 독선의 고무줄을 턱 놓아 버리기 위해
오늘 저는 그들만의 축제에 참여 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나와 우리를 지키는 일이라 믿습니다.
뭐니 뭐니해도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입니다
(※이 제목은 넬슨 말델라가 감방에 걸어두었던 시였던 ‘인빅터스’에서 따왔다고 한다.)
추서(推恕)
이 말은 남을 용서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들여다 보면서 자기와 마주보고 있는사람을 섬기라는 말로
다산이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오늘 잘못된 인사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왜냐하면
내 안에 부동산투기의 마음이 있고 세금 탈루의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말 농장에 대한 꿈이 있고 강남 아파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고
남보다 뛰어난 능력에 대한 과신이 있고 국민과 맞설 용기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의 손을 관용이라는 마음으로 당장 잡지 않는 것은
내 안의 부정과 독선의 독버섯이 오연하기 때문입니다
어둑 새벽에 일어나 열세번이나 나라의 부름을 받고도 나아가지 않은 남명 조식을 생각합니다.
출측유위 처측유수出側有爲 處側有守((나아가면 하는 바가 있어야 하고 물러나면 지킴이 있어야 한다)
나아갔으나 하는 일이 없는, 물러나서도 지키는 바가 없는 나를 타이르는 말이 왜 아니겠습니까?
오늘 당신들의 따스한 손으로 맞 잡지 못하는 것은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나라를 거짓의 묵정밭에 세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와 도전의 내 아이들의 미래를
나와 우리 부모들의 투기와 부정위에 세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거짓이 다른 거짓을 낳는 우리들의 더러운 손을
자기 반성과 성찰의 뜬봉샘에 씻지 않고는 새로운 상상력의 강은 흐르지 않습니다.
"네 탓이오" 위에서 "생각의 창고"는 열리지 않습니다.
‘모르쇠’는 자기 성찰 의 문을 닫아 거는 자물쇠입니다.
자기만이 옳다는 소신으로 무장한 로마군단으로는
창조와 도전의 지식경제가 열리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격정에 놀라 손을 놓을 착한 우리들의 공무원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잘못된 일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내 안에 똑 같은 광기와 탐욕이 또아리를 틀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의 결별을 결의 하기 위해 부정과 투기와 독선의 고무줄을 턱 놓아 버리기 위해
오늘 저는 그들만의 축제에 참여 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나와 우리를 지키는 일이라 믿습니다.
뭐니 뭐니해도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입니다
최 후보자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날선 비판과 비난이 한바탕 쏟아지고 난 다음에 낭독되는 김 의원의 글, 아니 시. 의원들의 '워딩'을 습관적으로 워드프로세서에 받아치기에 바빴던 기자들의 손가락이 잠시 자판 위에서 갈곳을 몰라 헤맸다. 잠시 눈을 들어 회의에 참석한 다른 의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엄숙했다.
그런데 이날 회의장엔 열혈 시인이 한명 더 있었다. 그는 화가이기도 한데 바로 민주당 김재균 의원이다. 국회 본청에 있는 민주당 원내대표실엔 김 의원이 그린 꽤 큼직한 유화 액자가 한점 걸려 있다. 풍경화인데 인상주의 풍이다. 광주의 구청장 출신인 김 의원은 의원이 되기 전인 2001년 첫 시집을 냈고 국회의원이 되고난 뒤인 2009년에 두번째 시집 <장수풍뎅이를 만나다>를 내기도 했다.
김재균 의원이 정치인 시인으로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은 역시 국회의사당 내 '현장'에서다. 지난해 12월 예산안 날치기가 연이서 세번째 이뤄진 예산안 날치기였다. 김 의원은 2008년 4월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처음 국회의원이 됐는데 그해 말에도 예산안을 두고 여야가 대립하면서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일이 발생했다.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고 숙식을 안에서 해결한 것이다. 김 의원은 점거 4일째 되던 날 아래의 시를 썼다며 의원들 앞에서 낭송 했다. 당시 나는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기 때문에 현장에 있지는 못했지만 당시 이 시가 의원들 사이에서 꽤 낭송됐다고 한다.
<인간사슬>
국회의원 · 시인 김재균
나는 너에게 묶이고
너는 그에게 묶임으로써
우리는 인간사슬이 되었다
어둠이 깊어가는 동안
고립당한 국회의사당 속에서
민주주의의 죽음을 예감하는
뜨거운 숨소리
서로에게 기꺼이 묶임을 당하면서
죽거나 혹은 사는 일에 대하여
더불어 함께 감응하는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간사슬은
혼자 버려짐을 두려워하기보다
서로의 몸과 마음을 결속하는 거룩한 의식.
성기고 질긴 그물을 짜는 일이다
쉽게 찢기거나 해체당하지 않기 위하여
그물코를 엮는 소중한 희생이다
반민주 친재벌의 꼭두각시,
너희 불의한 권력과
역사를 무시하는 교만으론
땀과 눈물이 흥건히 배인
인간사슬의 촘촘한 그물 끊을 수 없다
지금 절명의 순간, 오늘
死卽生의 각오로 껴안는
민주주의 死守
天命이다! 天命이다! 天命이다!
국회의원 · 시인 김재균
나는 너에게 묶이고
너는 그에게 묶임으로써
우리는 인간사슬이 되었다
어둠이 깊어가는 동안
고립당한 국회의사당 속에서
민주주의의 죽음을 예감하는
뜨거운 숨소리
서로에게 기꺼이 묶임을 당하면서
죽거나 혹은 사는 일에 대하여
더불어 함께 감응하는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간사슬은
혼자 버려짐을 두려워하기보다
서로의 몸과 마음을 결속하는 거룩한 의식.
성기고 질긴 그물을 짜는 일이다
쉽게 찢기거나 해체당하지 않기 위하여
그물코를 엮는 소중한 희생이다
반민주 친재벌의 꼭두각시,
너희 불의한 권력과
역사를 무시하는 교만으론
땀과 눈물이 흥건히 배인
인간사슬의 촘촘한 그물 끊을 수 없다
지금 절명의 순간, 오늘
死卽生의 각오로 껴안는
민주주의 死守
天命이다! 天命이다! 天命이다!
그러고보니 지난해 7월쯤 한나라당의 윤석용 의원이라는 분이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기사도 검색된다.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어릴적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으로서 한의사이자 빈민운동가 출신이란다. 정치에 입문해서도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 없어 시를 써서 문예지에 투고했단다.
"광화문에 지나다니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면 세명 중 한명은 시인"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시인이 많다는거다. 여기서 말하는 시인은 우리가 흔히 아는 전업시인 외에 시를 써서 이러저러한 경로로 발표하고, 타칭 자칭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정확히는 알수 없으나 시인협회에 가입한 회원수도 수만명에 이르고 각 자치단체별로 지부가 있는 것으로 안다. 이들이 동인지도 내고 한다.
정치의 세계는 우리에게 촘촘한 그물망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빈틈없이 치밀한 전략과 전술 같은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시의 세계는 여백의 이미지에 가깝다. 절제된 언어의 여백에 담긴 무한세계 말이다. 정치와 시, 정치인과 시인은 그래서 매우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국회의원이 된 시인들, 시인이 된 국회의원들은 양자가 서로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누가 더 날선 언어를 고르느냐의 경연장이 되고 만 정치의 세계. 시인 정치인들의 '시로 하는 워딩'은 솔직히 기사에는 별로 도움이 안되지만 잠시 숨을 돌릴 여유를 안겨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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