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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밑줄치며읽기

'마음의 재구성-촘스키 & 스키너'(조숙환, 김영사, 2009)-1

촘스키 & 스키너 : 마음의 재구성 - 10점
조숙환 지음/김영사

출판사 김영사가 출간하고 있는 시리즈 가운데 '지식인 마을'이라는 것이 있다. 인문, 사회,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동서양 지식인 100명을 2명씩 엮어서 고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30권이 넘게 나왔다. 인물과 인물을 대비시켜서 고찰하는 방식하면 강신주 박사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작년에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한 목침 두께의 책 <철학 Vs. 철학>이 바로 이 방식을 택하고 있거니와 <상처받지 않을 권리>(프로네시스)도 이런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고보니 '지식인 마을'의 저자군 가운데에서도 강신주 박사의 이름이 발견된다. 동양철학자들에 대해 3권이나 썼다.

'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장회익 교수가 책임기획을 맡고 있는데 해당 분야 전문가나 전공자가 보기엔 너무 기초적이라고 느껴지겠지만 초심자에겐 입문서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적절한 수준이다. 그간 두세권 정도 읽어봤는데 저자마다 약간씩 편차가 있긴 하지만 200쪽 내외의 분량도 부담이 적고, 해당 사상가의 핵심 개념을 적절하게 풀고 있어 뒷골이 땡기는 것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논술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염두에 둔 듯한 편집과 목차구성이 좀 눈에 거슬린다.

앞서 정치 또는 정치철학 관련 책들을 연달아 읽었는데 좀 전환을 해보고 싶어 <마음의 재구성-촘스키 & 스키너>(조숙환, 김영사)를 집어들었다. 촘스키는 세계적인 좌파 지식인으로 워낙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고, 스키너는 심리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생소할 이름일게다. 촘스키는 좌파 지식인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 이전에 '보편 문법', '변형생성문법'이라는 독창적인 언어 이론으로 '학파'를 이룬 천재 언어학자이다. 스키너는 이른바 '행동주의 심리학'으로 각광을 받았으나 촘스키의 비판을 받으면서 대립쌍을 이룬 학자다.

요즘은 약간 시들해진 기운이 없진 않지만 여전히 많이 소개되는 인지심리학이나 인지언어학 책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촘스키와 스키너. 밑줄쳐가며 '상식보충'을 좀 했다.  오랫동안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생각돼 왔고, 다른 동물들도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금까지도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상징하는 언어 능력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의 문제는 언제 들여다봐도 흥미진진한 주제이다.

성경 창세기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도다'로 시작된다던가. 인지언어학계의 거목이 세워지는 시기는 1950년대. 사실은 세력교체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학계의 스타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촘스키는 기존 학계의 거목을 거칠게 비판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2007년 4월에는 하버드 대학의 과학관에서 인지 혁명 50주년을 기념하고 회고하는 모임이 열렸다. 반세기 전인 1957년에는 스키너의 저서 <언어행동론>이 출간되었고, 그 2년 후에는 촘스키의 반론이 학술지에 게재되면서, 인간이 행동주의가 아닌 본성주의의 시각으로, 즉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조명되기 시작되었다. 50주년 기념에는 핑커와 하우저의 진행으로 밀러, 브루너, 촘스키, 캐리가 한자리에 모여 오로지 행동주의로만 장식되었던 1950년대를 회고하고 있었다. 이 모임에서 밀러와 촘스키는 당대의 인지 혁명을 인간에 대한 시각의 혁명으로 풀이했다. 인간은 더 이상 '자극에 의해 조건화되어야 행동하는' 스키너의 그림이 아니었다. 인지 혁명 당시 학생이었던 캐리는 이미 1962년에 행동주의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스키너의 그림이 밀러와 촘스키의 표상인 '정보 처리의 능동적 주체'의 모습으로 대체되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프롤로그)

지은이는 언어의 작동원리를 짧게 요약하면서 '언어 형태'와 '개념'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고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에 배운 소쉬르의 '랑그(기표)'와 '파롤(기의)'에 다름아니다. 이 책의 주제는 랑그, 파롤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이 이러한 언어의 작동원리를 배워서 써먹는 것이냐, 아니면 태어나면서 언어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냐이다.

'언어 형태'와 그 형태로써 특정한 '개념'을 가리키거나 연관짓는 마음의 작용은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흔히 '장미'라는 단어를 통해 '사랑'이라는 개념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이 공감하는 연상 작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언어 형태와 그 형태에 관련된 개념을 어떻게 형성하는 것일까? (15쪽, 경험인가, 선험인가?)

촘스키의 등장 이전 인지언어학계의 주류이론은 바로 스키너의 행동주의. 앞으로 자세하게 설명되겠지만 한마디로 경험에 의해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가 말은 커녕 옹알이도 제대로 못하다가 자라면서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듣고 흉내를 내고 술술 말을 배워가는 것을 보면 이런 이론이 그럴듯하게 보인다.

1930~1940년대를 지배한 이론은 행동주의behaviorism의 조건 형성conditioning 이론이었다. (…) 인간의 모든 행동을 학습된 것으로 파악하는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언어 또한 선천적인 것이 아닌 오직 환경에 주어진 경험적 자료에 의한 조건 반사적 행동conditioning behavior으로 간주했다. (…) 행동주의의 주창자로 평가받는 스키너는 블룸필드의 경험주의 시각이 반영된 자극-반응stimulus-response 이론을 주장했다. 인간의 언어 행위 역시 가족이나 이웃과의 의사소통 등 주변 환경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자극-반응의 결과로 발달된다는 것으로, 우리의 언어 지식이 축적되고 오류도 수정되는 데는 환경과 경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장이었다. (21~22쪽, 경험인가, 선험인가?)

이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촘스키. 경험을 통해서만 언어를 배워간다면 어린이는 보고 들은 말만 사용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보고 들은 말뿐 아니라 새로운 표현을 창조해 낸다. 마치 바둑의 수가 거의 무한대에 가깝듯이 문장의 확장가능성은 무한대다. 그런데 경험으로 이런 것을 다 습득한다고? 인간이 언어능력을 천성적으로 갖고 태어나지 않으면 이런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촘스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1950~1960년대에 이르면, 이런 행동주의가 본성주의nativism에 정면으로 도전을 받게 된다. 주변의 환경과 경험이 자극이 되어 지식 습득을 촉진한다고 주장한 행동주의자들에 반대해, 경험보다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다시 말해 선험적인 언어 지식의 역할을 강조하는 본성주의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20세기 중반의 이러한 행동주의와 본성주의 대립의 주인공은 버러스 스키너Burrhus F. Skinner, 1904~1990와 노엄 촘스키A. Noam Chomsky, 1928~였다. (…) 촘스키는 블룸필드와 스키너의 경험론에서 중요시하는 학습 효과나 오류 정정 효과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언어 저변의 심성적mentalistic 규칙, 마음의 내재적 구성과 창조적 측면을 강조하는 선험론을 펼쳤다. 촘스키는 질적으로 심각하게 빈약한 자극 속에서 성장하는 인간이 이토록 복잡하고 추상적인 언어구조를 완벽하게 습득하는 것은 경험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보았다. (22쪽, 경험인가, 선험인가?)

뒤에도 등장하지만 스티븐 핑커가 쓴 유명한 책 가운데 <빈 서판>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나는 그 책을 읽어보지 못해 <빈 서판>이라는 단어의 유래와 정확한 뜻을 모른채 꽤 강렬한 제목이라는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빈 서판 대 찬 서판'은 '양육 대 본성'의 논쟁과 일맥상통한다는 설명이 그럴듯하다. 짐작하겠지만 스키너는 '빈 서판파', 촘스키는 '찬 서판파'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태어날 때 어떤 상태일까? 인간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어떤 지식과 잠재 능력을 선험적으로 갖춘 상태일까, 아니면 텅 빈 백지장white paper일까?

로크는 <인간오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1690)에서 인간의 마음을 "어떤 글자도, 생각도 없이 텅 빈 백지장"으로 표현했다. 로크는 백지장의 이성과 지식은 '경험'에 의해 채워진다고 가정한다. 과연 앎의 세계는 로크의 생각처럼 경험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아니면 본성주의자들처럼 선천적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

로크처럼 인간의 마음을 아무것도 없는 '공백'으로 생각한 역사는 매우 오래다. 보통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가 <영혼에 관하여De anima>에서 인간의 마음을 '아무것도 쓰지 않은 서판書板'에 비유한 것을 최초로 꼽는다. 그래서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로크의 <인간오성론>을 비판하는 글에서 로크의 백지장 개념을 아리스토텔레스와 연관 지어 '비어 있는 서판'이라는 뜻의 라틴어 '타불라 라사tabula rasa'로 표현했다. 이 덕분에 타불라 라사는 로크의 백지장 개념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인간의 마음은 태어날 때 텅 비어 있는 상태인지 아니면 선천적으로 잠재 능력을 갖추고 태어났는지에 대한 논쟁을 두고 비유적으로 '빈 서판' 대 '찬 서판' 논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인간의 특성이 본성적인 것인지, 양육에 의한 것인지를 따지는 '본성nature' 대 '양육nurture' 논쟁과도 일맥상통한다. (49~50쪽, 마음은 '백지장'인가?)

촘스키에게 마음은 선험적 능력으로 가득 채워진 '장기'를 대변한다는 서술이 눈에 띈다.

스키너는 동물 실험을 이용해 인간의 행동을 연구한 이반 파블로프Ivan Pavlov, 1849~1936와 왓슨 등 행동과학자들에 의해 영향을 받아 조작적 조건화operant conditioning 이론을 기반으로 한 경험주의empiricism를 옹호한 반면, 촘스키는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본성주의를 발전시켰다. 따라서 스키너에게 마음은 자극과 반응에 의해 후천적으로 채워져야 할, 텅 빈 백지장을 대변하고, 촘스키에게 마음은 선험적 능력faculty으로 가득 채워진 '장기organ'를 대변한다. (50쪽, 마음은 '백지장'인가?)

스키너에 따르면, 유기체는 긍정적인 결과가 수반되는 반응을 반복하려는 경향이 있어 특정한 반응을 나타내는 횟수가 증가하는데, 이것이 강화에 조절된 결과다. (60쪽, 마음은 '백지장'인가?)


1957년 스키너의 <언어행동론>이 출간되자마자 촘스키는 이책에 대해 낱낱이 반격하기 시작했다. 1959년 촘스키가 '스키너의 <언어행동론> 서평A Review of B. F. Skinner's Verbal Behavior'를 '랭귀지Language'에 발표한 것은 행동주의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일이었다. (…) 촘스키는 '강화'나 '유추' 같은 개념은 정의조차 되지 않아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한층 더 나아가, 언어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외부적 조건들을 고려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도그마에 불과"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63~64쪽, 플라톤의 문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