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인문학>이라…. 내가 몸담고 있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이 2011년 새해 첫 출판면에서 공통적으로 주목한 책이다. 리뷰어들도 지적하듯 화폐라고 하면 보통 경제학의 영역에 속하는 주제다. 그런데 화폐는 경제학의 영역에 가둬둘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인듯 하다. 이른바 ‘화폐의 사회철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리 녹록치 않은 책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저자가 분석하고 있는 괴테와 앙드레 지드의 소설 작품들은 제목까지 생소한 판국이다. 한겨레신문의 리뷰어가 많은 분량을 할애해 소개한 게오르그 지멜의 책 <돈의 철학>은 작년에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원전번역한 김덕영 박사가 번역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 이마무라 히토시(今村仁司)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프랑스 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보인다. 일련의 프랑스 철학자들을 소개함으로써 일본에 프랑스 철학 붐을 조성하기도 했다는 소개가 나온다. 내가 제대로 읽어낼 엄두를 쉽게 내지 못하겠지만 상식 넓히기 차원에서 스크랩을 해둔다.
이 책의 지은이 이마무라 히토시(今村仁司)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프랑스 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보인다. 일련의 프랑스 철학자들을 소개함으로써 일본에 프랑스 철학 붐을 조성하기도 했다는 소개가 나온다. 내가 제대로 읽어낼 엄두를 쉽게 내지 못하겠지만 상식 넓히기 차원에서 스크랩을 해둔다.
돈, 넌 대체 누구냐? 경제 밖의 돈 이야기
‘김중개라는 남자와 박머니라는 여자가 만났다. 둘은 첫눈에 반해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어느 날 서로의 이상형을 각자 만나게 된다. 그들은 새로운 사랑을 좇아가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둘 다 비극적 결말을 맞고 만다.’
통속소설이나 드라마에서 흔하게 접하는 줄거리다. ‘눈물 없이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러브스토리인 셈이다. 한데 일본의 현대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이마무라 히토시(1942~2007)가 읽었다면 이 소설은 분명 ‘화폐 소설’로 자리매김됐을 것이다.
이마무라는 화폐를 향해 ‘넌 도대체 누구냐’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원제 <화폐란 무엇인가>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화폐의 경제적 기능론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의 조건에서 화폐를 조명”했다. 화폐의 기능은 교환, 시장 등 여러 각도에서 논의될 수 있지만 ‘화폐의 존재’는 다른 시각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이 같은 접근을 “화폐의 사회철학”이라 했다. 인간에게 화폐가 갖는 의미를 곱씹어보자는 것이다.
그는 화폐의 사회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경제 전문서적을 찾지 않았다. 괴테의 <친화력>,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과 같은 문학작품에서 답을 구했다. 그는 이들 작품을 ‘화폐 소설’이라 명했다. “상식적 의미의 화폐가 등장하지 않는 곳에서야말로 화폐의 본질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뛰어난 소설은 예외 없이 인간의 근원적 경험에 접근하는데, 이러한 근원적 경험이야말로 화폐적 경험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문학작품은 우수한 것일수록 화폐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연애와 결혼 문제를 다룬 소설로 볼 수 있는 괴테의 <친화력>. 주인공 미틀러는 문자 그대로 ‘매개자’를 뜻한다. 전면에 등장하지 않으면서 소설의 무대를 움직이고 등장인물들의 파국을 암시한다. 화폐는 평범한 얼굴을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경제생활은 마비된다. 이에 저자는 미틀러를 “인간의 형상을 한 화폐”로 봤다.
청교도 부르주아의 위선과 악덕을 다룬 소설 <위폐범들>에 등장하는 프로피탕디외는 ‘신을 이용해 이윤을 얻는다’는 뜻으로 “이름에서부터 이미 화폐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앞서 소개된 ‘김중개’나 ‘박머니’처럼 저자에게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인간관계의 매개자이자 화폐의 또 다른 모습으로 비친다.
특히 지드가 위조화폐를 통해 경제현상의 이면에 펼쳐진 인간군상을 보여준 데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경제학이 경제적 사실밖에 말하지 않는다면 인간적 현실을 진실로 설명했다고 할 수 없다. 경제학의 이러한 무능함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드의 <위폐범들>은 하나의 경제학 비판서다.”
이마무라의 말을 듣자니 아무 소설, 아무 쪽이나 봐도 돈 이야기가 나온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살인범이 여자를 죽이는 데 사용한 칼조차 그냥 칼이 아니라 ‘얼마짜리’ 칼이다. 생계를 위해 글을 팔아 ‘돈’을 벌어야 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돈을 이해하고 돈의 막강한 역할을 꿰뚫어본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마무라였다면 그의 소설을 과연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해진다.
이마무라에 따르면 <친화력>에 등장하는 ‘무덤 파괴’ 이야기나 <위폐범들>에 나오는 일부 죄 없는 자들의 죽음은 규칙이나 관습 같은 ‘제도화한 매개 형식’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충돌의 결과다. 그는 화폐가 동물세계와 달리 인간들의 폭력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매개자임을 거듭 강조한다. “운명과 죄와 관련한… 신화적 자연의 힘을 덮어버리는, 누름돌 역할을 하는 매개자가 사라지면 인간관계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그는 화폐 없는 인간사회를 부정한다. ‘화폐 폐기론’에 ‘재앙론’으로 맞선다. 인간은 상호 교류가 숙명적이므로 교환의 매개인 화폐를 폐기하면 인간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경제학적 차원에서는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인간 존재의 근원과 연결지으면 화폐 폐기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역자의 말처럼 이 책은 “문학작품 독해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수도 있다. 나아가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 자신이 ‘화폐 소설’의 주인공이니 말이다. (경향신문 2011.1.1 고영득 기자)
화폐 인문학 - 이마무라 히토시 지음, 이성혁.이혜진 옮김/자음과모음(이룸) |
‘김중개라는 남자와 박머니라는 여자가 만났다. 둘은 첫눈에 반해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어느 날 서로의 이상형을 각자 만나게 된다. 그들은 새로운 사랑을 좇아가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둘 다 비극적 결말을 맞고 만다.’
통속소설이나 드라마에서 흔하게 접하는 줄거리다. ‘눈물 없이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러브스토리인 셈이다. 한데 일본의 현대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이마무라 히토시(1942~2007)가 읽었다면 이 소설은 분명 ‘화폐 소설’로 자리매김됐을 것이다.
이마무라는 화폐를 향해 ‘넌 도대체 누구냐’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원제 <화폐란 무엇인가>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화폐의 경제적 기능론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의 조건에서 화폐를 조명”했다. 화폐의 기능은 교환, 시장 등 여러 각도에서 논의될 수 있지만 ‘화폐의 존재’는 다른 시각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이 같은 접근을 “화폐의 사회철학”이라 했다. 인간에게 화폐가 갖는 의미를 곱씹어보자는 것이다.
그는 화폐의 사회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경제 전문서적을 찾지 않았다. 괴테의 <친화력>,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과 같은 문학작품에서 답을 구했다. 그는 이들 작품을 ‘화폐 소설’이라 명했다. “상식적 의미의 화폐가 등장하지 않는 곳에서야말로 화폐의 본질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뛰어난 소설은 예외 없이 인간의 근원적 경험에 접근하는데, 이러한 근원적 경험이야말로 화폐적 경험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문학작품은 우수한 것일수록 화폐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연애와 결혼 문제를 다룬 소설로 볼 수 있는 괴테의 <친화력>. 주인공 미틀러는 문자 그대로 ‘매개자’를 뜻한다. 전면에 등장하지 않으면서 소설의 무대를 움직이고 등장인물들의 파국을 암시한다. 화폐는 평범한 얼굴을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경제생활은 마비된다. 이에 저자는 미틀러를 “인간의 형상을 한 화폐”로 봤다.
청교도 부르주아의 위선과 악덕을 다룬 소설 <위폐범들>에 등장하는 프로피탕디외는 ‘신을 이용해 이윤을 얻는다’는 뜻으로 “이름에서부터 이미 화폐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앞서 소개된 ‘김중개’나 ‘박머니’처럼 저자에게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인간관계의 매개자이자 화폐의 또 다른 모습으로 비친다.
특히 지드가 위조화폐를 통해 경제현상의 이면에 펼쳐진 인간군상을 보여준 데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경제학이 경제적 사실밖에 말하지 않는다면 인간적 현실을 진실로 설명했다고 할 수 없다. 경제학의 이러한 무능함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드의 <위폐범들>은 하나의 경제학 비판서다.”
이마무라의 말을 듣자니 아무 소설, 아무 쪽이나 봐도 돈 이야기가 나온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살인범이 여자를 죽이는 데 사용한 칼조차 그냥 칼이 아니라 ‘얼마짜리’ 칼이다. 생계를 위해 글을 팔아 ‘돈’을 벌어야 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돈을 이해하고 돈의 막강한 역할을 꿰뚫어본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마무라였다면 그의 소설을 과연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해진다.
이마무라에 따르면 <친화력>에 등장하는 ‘무덤 파괴’ 이야기나 <위폐범들>에 나오는 일부 죄 없는 자들의 죽음은 규칙이나 관습 같은 ‘제도화한 매개 형식’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충돌의 결과다. 그는 화폐가 동물세계와 달리 인간들의 폭력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매개자임을 거듭 강조한다. “운명과 죄와 관련한… 신화적 자연의 힘을 덮어버리는, 누름돌 역할을 하는 매개자가 사라지면 인간관계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그는 화폐 없는 인간사회를 부정한다. ‘화폐 폐기론’에 ‘재앙론’으로 맞선다. 인간은 상호 교류가 숙명적이므로 교환의 매개인 화폐를 폐기하면 인간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경제학적 차원에서는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인간 존재의 근원과 연결지으면 화폐 폐기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역자의 말처럼 이 책은 “문학작품 독해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수도 있다. 나아가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 자신이 ‘화폐 소설’의 주인공이니 말이다. (경향신문 2011.1.1 고영득 기자)
피할 수 없는 인간관계 맺기의 형식 ‘화폐’
독일 사회학자 지멜의 시도 이어
‘경제성’ 배제한 사회철학적 연구
화폐와 문학·문자 연관성도 짚어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일 수 있는 ‘존재의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흔히 정신, 언어, 가족, 사회 등을 들지만, 이런 것들은 비록 단순한 수준이지만 동물의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사회철학자 이마무라 히토시(1942~2007)는 1994년 처음 출간한 책 <화폐 인문학>에서 ‘화폐’를 통해 인간 존재의 조건을 파헤친다. 그러나 여기서 지은이가 말하는 화폐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도구·소재로서의 화폐’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구성되는 ‘형식으로서의 화폐’다. 따라서 그는 기능론적 관점에 입각한 화폐의 경제적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존재론적 관점으로 화폐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화폐의 사회철학’을 연구했다.
지은이의 이런 접근 방법은,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1858~1918)의 시도를 이어받은 것이다. 1900년 써낸 <화폐의 철학>에서 ‘화폐가 왜 인간 세계에 존재해야 하는지’ 따져 물었던 지멜은, 인간은 숙명적으로 ‘관계의 매개 형식’으로서 화폐를 갖게 된다고 밝혔다.
원래 주술적·신화적 세계 속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은 어떤 구분도 없이 모두 하나의 몸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여기에 균열이 생겨 주체(나)와 객체(대상)가 나눠지게 되면, 둘 사이가 멀어지는 한편 서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한 작용도 함께 일어난다. 지멜은 이를 ‘거리화’(Distanzierung)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멀리하다’와 ‘분리를 막는다’는 상반되는 작용을 모두 뜻한다. 곧 거리가 생기면, 그 거리를 메울 다리를 새로 놓아야 할 필요성, 곧 ‘매개’의 필요성도 생기며, 화폐는 바로 이 매개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여기에서 ‘죽음의 관념’이라는, 인간 고유의 존재 조건을 읽어낸다. 인간은 더이상 자연 상태와 일체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죽음을 경험하고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죽음의 관념을 갖게 된다. 이는 동물과 인간을 근본적으로 구분짓는 존재 조건이 된다. 인간은 죽음의 관념을 바깥으로 내몰고 싶어해 ‘제도화’ 또는 ‘합리화’를 추구하게 된다. 지은이는 “인간은 원초적인 거리화에서 태어난 죽음의 표상을 물질 또는 제도의 형태로 외부화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친연성’이라는 공포에서 해방되고자 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죽음의 관념은 인간의 삶 전체를 물들이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죽음의 추방은 불가능하다.”
정리하자면, 화폐는 복수의 타자들과 대립하고 투쟁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인간이 자연발생적으로 갖게 된 ‘관계 맺기’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물질이나 제도가 아니라 “내용에 관심이 없는 공허한 형식” 그 자체이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보편적이다. 지멜은 이런 점에서 화폐는 ‘지성’(논리), ‘법’과 나란한 존재라고 봤다. 또 인간이 사회적 인간인 이상, 모든 것을 교환할 수 있는 타인과의 상호 교통(交通) 또한 숙명적이고 근원적인 사실로서, 결코 회피할 수 없다고 했다.
지은이는 이러한 기본적인 분석틀을 갖고, 구체적인 분석에 들어간다. 괴테의 <친화력>과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을 읽어나가며, 화폐 철학을 문학 분석에 적용한다. 예컨대 규칙이나 관습을 벗어난 인간이 최후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제도화된 매개 형식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혼돈을 그린 것으로 풀이하는 식이다. 또 루소와 데리다를 끌어와, 문자와 화폐의 연관성을 분석한다.
좀더 현실적인 이 책의 의미는, 특히 사회주의자들이 종종 주장하는 ‘화폐 폐기론’에 대한 비판이다. 지은이는 “플라톤에서 마르크스까지 모든 사상가들이 화폐를 혐오하고 비판했지만, 홀로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 화폐의 불가피성을 지적했다”며 지멜을 높이 평가한다. 또 사회주의자들이 이런 본질을 보지 못하고 소재·도구로서의 화폐만을 고려해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형식으로서의 화폐는 언어적 교통, 경제적 교통, 정치적 교통 등 모든 영역에서 출몰하며, 이런 매개자가 없다면 인간은 서로 직접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지은이 역시 화폐의 부정적인 측면을 우려한다. 그는 “화폐 형식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명제가 자본주의의 영원성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자본주의 근대가 가져온 ‘인간에 대한 화폐와 상품의 우월적 지배’를 경계했다. →그러나 형식으로서의 화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충실히 알지 못하면 새로운 전망은 나오기 어렵다고 한다. 곧 인간이 ‘화폐적 존재’임을 먼저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한겨레신문 2011.1.1 최원형 기자)
독일 사회학자 지멜의 시도 이어
‘경제성’ 배제한 사회철학적 연구
화폐와 문학·문자 연관성도 짚어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일 수 있는 ‘존재의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흔히 정신, 언어, 가족, 사회 등을 들지만, 이런 것들은 비록 단순한 수준이지만 동물의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사회철학자 이마무라 히토시(1942~2007)는 1994년 처음 출간한 책 <화폐 인문학>에서 ‘화폐’를 통해 인간 존재의 조건을 파헤친다. 그러나 여기서 지은이가 말하는 화폐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도구·소재로서의 화폐’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구성되는 ‘형식으로서의 화폐’다. 따라서 그는 기능론적 관점에 입각한 화폐의 경제적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존재론적 관점으로 화폐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화폐의 사회철학’을 연구했다.
지은이의 이런 접근 방법은,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1858~1918)의 시도를 이어받은 것이다. 1900년 써낸 <화폐의 철학>에서 ‘화폐가 왜 인간 세계에 존재해야 하는지’ 따져 물었던 지멜은, 인간은 숙명적으로 ‘관계의 매개 형식’으로서 화폐를 갖게 된다고 밝혔다.
원래 주술적·신화적 세계 속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은 어떤 구분도 없이 모두 하나의 몸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여기에 균열이 생겨 주체(나)와 객체(대상)가 나눠지게 되면, 둘 사이가 멀어지는 한편 서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한 작용도 함께 일어난다. 지멜은 이를 ‘거리화’(Distanzierung)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멀리하다’와 ‘분리를 막는다’는 상반되는 작용을 모두 뜻한다. 곧 거리가 생기면, 그 거리를 메울 다리를 새로 놓아야 할 필요성, 곧 ‘매개’의 필요성도 생기며, 화폐는 바로 이 매개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여기에서 ‘죽음의 관념’이라는, 인간 고유의 존재 조건을 읽어낸다. 인간은 더이상 자연 상태와 일체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죽음을 경험하고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죽음의 관념을 갖게 된다. 이는 동물과 인간을 근본적으로 구분짓는 존재 조건이 된다. 인간은 죽음의 관념을 바깥으로 내몰고 싶어해 ‘제도화’ 또는 ‘합리화’를 추구하게 된다. 지은이는 “인간은 원초적인 거리화에서 태어난 죽음의 표상을 물질 또는 제도의 형태로 외부화함으로써 삶과 죽음의 ‘친연성’이라는 공포에서 해방되고자 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죽음의 관념은 인간의 삶 전체를 물들이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죽음의 추방은 불가능하다.”
정리하자면, 화폐는 복수의 타자들과 대립하고 투쟁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인간이 자연발생적으로 갖게 된 ‘관계 맺기’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물질이나 제도가 아니라 “내용에 관심이 없는 공허한 형식” 그 자체이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보편적이다. 지멜은 이런 점에서 화폐는 ‘지성’(논리), ‘법’과 나란한 존재라고 봤다. 또 인간이 사회적 인간인 이상, 모든 것을 교환할 수 있는 타인과의 상호 교통(交通) 또한 숙명적이고 근원적인 사실로서, 결코 회피할 수 없다고 했다.
지은이는 이러한 기본적인 분석틀을 갖고, 구체적인 분석에 들어간다. 괴테의 <친화력>과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을 읽어나가며, 화폐 철학을 문학 분석에 적용한다. 예컨대 규칙이나 관습을 벗어난 인간이 최후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제도화된 매개 형식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혼돈을 그린 것으로 풀이하는 식이다. 또 루소와 데리다를 끌어와, 문자와 화폐의 연관성을 분석한다.
좀더 현실적인 이 책의 의미는, 특히 사회주의자들이 종종 주장하는 ‘화폐 폐기론’에 대한 비판이다. 지은이는 “플라톤에서 마르크스까지 모든 사상가들이 화폐를 혐오하고 비판했지만, 홀로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 화폐의 불가피성을 지적했다”며 지멜을 높이 평가한다. 또 사회주의자들이 이런 본질을 보지 못하고 소재·도구로서의 화폐만을 고려해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형식으로서의 화폐는 언어적 교통, 경제적 교통, 정치적 교통 등 모든 영역에서 출몰하며, 이런 매개자가 없다면 인간은 서로 직접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지은이 역시 화폐의 부정적인 측면을 우려한다. 그는 “화폐 형식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명제가 자본주의의 영원성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자본주의 근대가 가져온 ‘인간에 대한 화폐와 상품의 우월적 지배’를 경계했다. →그러나 형식으로서의 화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충실히 알지 못하면 새로운 전망은 나오기 어렵다고 한다. 곧 인간이 ‘화폐적 존재’임을 먼저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한겨레신문 2011.1.1 최원형 기자)
'~2013 > 남이 읽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 (2) | 2012.05.22 |
---|---|
'러닝-한편의 세계사'와 '그리스인 이야기' (0) | 2011.03.28 |
'다음 국가를 말하다-공화국을 위한 열세가지 질문'(박명림.김상봉) (2) | 2011.02.14 |
'국가처럼 보기' (0) | 2011.01.11 |
증오의 세기와 니얼 퍼거슨 (6) | 2010.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