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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남이 읽은 책

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

잡문일지라도 '글'이라는 것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글쓰기는 항상 어렵다. 명색이 기사쓰기 실습 강좌를 분기마다 하고 있는데도 그렇다. 내 능력의 수준과는 별개로 뭔가 의미 있는 글, 긴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을 갖는 것까지 탓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실제로 노력하느냐는 평가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한주에 수십권의 책을 검토하고 두세권의 책을 읽어야 했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차분하게 글을 써서 책을 낸 사람들은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천성이 게으른 편이라 단편적으로 떠오른 세평이나 감상조차도 좀처럼 글로 써서 남기지 못하는 나로선 더욱 대단한 일로 보여진다. 그럴수록 긴글에 대한 욕심은 더욱 깊어만 가고.

 

내 스스로 '창작'할 수준이 아직 아니라면 '번역'이라도 해보자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뜻깊은 책이 내 손에 들어왔고 뜻깊은 선후배와 함께 일을 벌였다. 애초 목표했던 시점보다 많이 늦어졌지만 시의성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부디 이 책이 '긴 생명'을 가지기를 바랄뿐이다.

 

[책과 삶]아직도, 문제는 계급이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 - 10점
뉴욕 타임스 지음, 김종목.김재중.손제민 옮김/사계절출판사

 

책을 다 읽고 나서 맨 먼저 떠오른 것은 책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작품인 생 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명백히 존재하는 데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상점에서 옷을 고르는 일상생활에서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투표행위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것들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면서도 명확한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 때로는 그 존재를 못 본 척하고 싶은 것, 그것은 바로 계급이다.
 
2005년 봄 미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뉴욕타임스의 기획탐사보도인 <문제는 계급이다>(Class Matters)가 우리말로 옮겨졌다. 이 책은 신문에 연재됐던 내용을 단행본으로 묶어서 낸 것이다. 우리말 제목인 <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는 갈수록 강화되는 우리 사회 양극화의 현실을 돌아볼 때 시의적절한 선택이다. 저자들이 뉴욕타임스 신문기자인 것에 대응해 번역자들의 직업이 기자들이라는 사실도 이채롭다.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기자식 문체’가 우리말 번역본에도 잘 살아 있다.

 

계급 연구는 카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의 고전적인 이론화 이래 사회학의 핵심 영역을 이뤄 왔다. 또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양극화의 지구적 현상을 고려할 때 중요성이 더해가는 연구 테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선도해온 미국사회 계급구조는 과연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이 바로 이 책이 겨냥하는 문제의식이다.
 
뉴욕타임스가 계급을 다룬 것은 오늘날 미국사회 계급구조가 대면한 모순적 상황 때문이다. 미국인 삶에 미치는 계급의 영향력이 점점 약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급의 구조화와 이에 따른 삶의 격차는 공고해지고 오히려 커지고 있다. 대학 입학과 졸업, 건강과 수명, 주거지 결정, 배우자 선택과 자녀 양육 등에서 계급 격차는 증가하며, 그 추세가 이제는 돌이키기 어려운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게 이 책이 발견한 ‘사실들’이다.
 

 

 

 

저자들이 사용하는 계급이란 비슷한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그룹을 뜻한다. 한 계급은 정치적 견해, 생활양식, 소비 패턴, 문화적 관심, 출세의 기회 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다른 계급과 구별된다. 이러한 계급 구성에서 미국사회는 가난한 환경에서 출발해도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기회의 땅’으로 알려져 왔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이를 지칭한다. 자신들이 떠나온, 계급이 구조화된 서유럽사회와는 달리 자유로운 사회이동이 가능한 신천지인 미국이 선사해온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살아 있는 걸까.
 
양초제조업자 아들인 벤저민 프랭클린에서 아칸소주 촌뜨기인 빌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미국사회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의 전형으로 여겨져 왔다. 통계들은 이를 증거한다. 미국 400대 부자 중에서 부를 물려받은 이가 1980년대 중반에는 200여명이었지만, 2004년에는 37명뿐이었다. 2005년 현재 미국인 4분의 3은 계급 상승 기회가 30년 전과 같거나 그보다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연줄과 배경보다도 성실과 교육이 성공의 주요 요소라는 믿음은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을 이룬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믿음과 실제 현실과의 거리다. 한편에선 계급의식 및 언어가 퇴조하는 ‘계급의 종말’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계급 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지는 계급 재편성이 이뤄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소득을 다섯 단계로 나눴을 때 1980년대에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올라가는 가족은 1970년대보다 줄었고, 1990년대에는 더 줄었다. 미국의 사회이동이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활발하지 않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한다.
 
이 책에서 활용하는 계급 판별의 기준은 교육, 소득, 직업, 재산이다. 이 네 기준들이 서로 결합하여 한 개인의 계급적 위치를 결정하고, 이는 다양한 불평등을 낳는다. 학력·소득·직업·재산의 정도에 따라 건강, 수명, 배우자 선택, 종교, 교육 기회, 소비, 거주 등을 포함한 일상생활의 뚜렷한, 결코 쉽게 건널 수 없는 차이가 드러나게 된다. 이 차이에 담긴 불평등의 현실을 이 책은 옴니버스 영화를 보듯 생생히 묘사함으로써 미국사회 불평등이 어떻게 구조화되고 재생산되는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저자들이 기자인 만큼 내용은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그 하나의 사례인 건강 불평등의 경우, 건축가·공기업사무직원·가사도우미라는 상이한 계급에 놓인 세 사람이 심장마비를 앓고 치유되는 과정을 추적해 질병과 계급 간의 관계를 분석한다. 장기간 참여관찰 끝에 내린 결론은 심장마비에도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병은 평등하게 발생하지만 회복은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게 이뤄지며, 결국 상층중간계급은 중간계급보다, 중간계급은 하층계급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서글프지만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을 알려준다.
 
조지아주의 엘퍼레타를 사례로 주거와 계급 간의 관계를 분석한 내용은 한편의 단편소설에 버금간다. 글로벌 기업에 고용된 짐 링크 가족들의 일상을 통해 화이트칼라의 유목적 삶을 재구성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내 다시 떠나야 하는 반복 과정은 세계화가 가져다 준 일부 화이트칼라의 삶의 코드이며, 이들의 이러한 유목적 삶의 양식은 미국적 계급사회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포스트모던한 풍경이다. 노스캐롤라니아주 샬럿으로의 이사가 결정되면서 링크 가족이 이웃에게 건네는 말, “우리는 거기서 9년 동안 머물 거예요. 물론 앞날을 알 수 없지만요”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 뿌리 뽑힌 화이트칼라의 삶을 증언한다.
 
0.1%의 초부유층, 화이트칼라 유목민, 대학중퇴자들, 고졸 출신, 불법 이주자 등 다양한 계급들의 노동과 일상생활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 책이 전달하는 것은 점점 고착화돼가는 불평등의 현실, ‘아메리칸 드림’의 종언이다. 중요한 것은 이례적인 사례가 아니라 전체적인 경향이다. 미국사회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평등하다는 담론이 널리 유포돼 있지만, 개인적 삶의 경험을 통해 살펴볼 때 계급 상승의 사다리가 점차 허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생생히 전달한다.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미덕은 현장감이다. 동부 뉴잉글랜드에서 서부 캘리포니아에 이르기까지, 초부유층 백인에서 멕시코 출신 불법 이주노동자에 이르기까지의 계급에 따른 파노라마적 삶의 경험을 묘사하고 분석하고 또 재구성한다. 다양한 시민들의 증언, 전문가들의 조언, 각종 통계자료들의 분석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미국사회의 생얼굴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그리하여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뱀 속의 코끼리와도 같은 미국사회 불평등의 전체 구조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한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말했던 ‘추상적 지식’이 아닌 ‘구체적 지식’이 갖는 힘을 이 책은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 책이 주는 선물의 하나는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우리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미국사회와 우리 사회는 분명 삶의 방식과 사회생활이 적잖이 다르다. 그러나 책에서 펼쳐지는 불평등의 풍경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갖게 한다. 교육에 모든 것을 걸지만 계급 상승의 사다리는 사라지고, 강남과 강북으로 대변되는 주거 지역에 따라 지리적 재배치가 진행되며, 명품소비와 이를 추종하는 짝퉁소비, 그리고 짝퉁소비마저 허락돼 있지 않는 하층계급 소비문화의 풍경은 바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지 않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한국은 미국과 유사한 불평등 구조에 이미 도달해 있다. 보론에서 신광영 중앙대 교수가 밝히고 있듯이, 2009년 미국과 한국에서 상위 10%의 임금과 하위 10%의 임금 비율은 각각 4.86과 4.74를 기록했다. OECD 국가 중 가장 불평등한 나라 1위와 2위였다. 지난 4월 조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 가운데 전체 소득에서 상위 1%의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은 17.7%로 1위를, 한국은 16.6%로 2위를 차지했다. 사회 양극화와 계급구조화에서 우리 사회는 이미 ‘미국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 책은 불평등의 해법에 대해선 암시만 할 뿐 충분히 펼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불평등을 가져오는 원인들을 다시 생각하면 해법은 분명하다. 하층 계급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를 부여하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노동시장을 개혁하며, 소득 및 재산에 대한 전향적인 조세정책을 모색하는 것이 바로 그 대안이다. 불평등을 치유하며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튼튼한 복지국가를 구축하고 이를 위해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는 것 이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 사라져가는 계급 사다리를 다시 건실하게 만들고,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평등, 그리고 이를 통한 더 많은 정의를 성취해 가는 것은 민주화 25년을 맞이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대한 시대적 과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관련 기사들을 쓰기 위해 기자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유익하고 감동적인 기사는 시간의 투자에 비례한다. 몇 개월에 걸쳐 한 이슈에 대해 그 고생에 몰두할 수 있는 미국 기자들의 시간적 여유가 부러웠고, 그렇지 못한 우리 기자들의 계급적 삶의 현실이 안타까웠다는 점을 밝혀둔다. (경향신문 5월12일자 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