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10년 마감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문화부 출판담당을 하면서 알게된 분들에게 얼추 인사를 드렸는데 빠뜨린 분들께 이메일이나 전화로 작별인사를 계속하고 있다. ‘조만간’ 소주 한잔 하자는 이야기로 인사를 마무리하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조만간이 얼마나 흐른 뒤가 될지, 또는 정말로 소주 한잔을 하게 될지는 모를 일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다. 그간 여러 차례 부서이동을 했지만 이번처럼 여운과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한번 인사가 나면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와야 하는데 꼬리가 길어선지 자잘자잘하게 계속 출판면에 흔적을 남겼다. 지난 토요일자엔 나의 인사이동으로 연재가 끝나게 되는 ‘책동네 산책’ 마지막회를 썼다. 이 코너는 원래 전임 출판담당 선배가 시작한 코너였는데 내가 바통을 받아서 써왔다. 그런데 내 뒤를 이어 출판을 담당할 선배는 이 코너가 오래 되어서인지, 다른 생각이 있는지 계속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세계일보에서 같은 이름의 코너를 만들어서 출판계 사람들이 짤막하게 쓴 글들을 싣기 시작하기래 비공식적으로 항의를 한 적이 있었다. 이제 경향판 '책동네 산책'은 사라지게 되므로 세계일보가 단독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2주마다 한번씩 이 코너를 이어가면서 2주의 시간이 그토록 빨리 가는지 새삼 깨달았다.
아무리 잡글이라도 쓸 때는 괴롭지만 써놓고 보면 그럭저럭 보람이 남는 법이다. 갈무리를 하면서 전에 썼던 것들을 다시 읽어보니 지난해 4월17일자에 처음 쓰기 시작해 그간 45꼭지를 쓴 것으로 나온다. 게중엔 이 블로그를 개설한 동기를 소개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조각 글이라도 메모를 해놓고 나중에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더 큰 이유는 출판계 사람들을 만날 때 파워 블로거나 블로그 세계의 현안을 모르면 머쓱해지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대방이 “로쟈가 뭐뭐라고 썼던데…”라고 말을 시작하는데 내가 “예? 무슨 ‘쟈’라고요?”라고 되묻고, 상대방이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상황을 말한다. 그 순간 ‘나이도 젊은데, 더구나 기자라는 사람이…’라는 상대방의 속말이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블로그 개설엔 어떤 압박감 같은 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6월27일자 '책동네 산책' 중에서)
전에 출판담당 기자로서의 즐거움, 행복 같은 것을 쓴 적이 있었는데, 여하튼 이렇게 해서 나의 ‘공식적인’ 일기도 끝이 났다. 그래도 손가락 품을 들여 블로그를 운영하는 습관은 남았으니 건진 것은 있는 셈이다. 2011년에는 어떤 식으로든 이 블로그 컨셉과 내부 인테리어도 좀 바꿔야 할텐데 더 바빠지기 전에 아이디어를 좀 짜내야겠다. 아! 춥다.
“2010년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군요. 달력이란 게 인간이 인위적으로 시간에 금을 그어놓은 것에 불과한데 참 묘해요. 흘러가는 시간은 구분선이 없잖아요? 12월31일에서 1월1일로 넘어가는 것은 따지고 보면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46억년 전 지구가 생긴 이래 매일 있었던 일이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연말이 다가오면 각별한 감정에 빠집니다.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새해를 계획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류가 오랜 시간 농경사회에서 살면서 각인된 본능 같은 것인가 봅니다.”
“그래도 연말을 핑계삼아 자주 못 만난 사람들을 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잘한 것, 잘못한 것을 따져보기도 하고 좋잖아요. 아마 연말을 가장 반기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서점이나 출판사 사람들 아닌가 싶어요. 서점가는 12월에 들어서자마자 일찌감치 송년 분위기에 돌입했더군요. 인터넷 서점마다 분야별로 ‘올해의 책’ 이벤트가 한창이더라고요.”
“다른 문화상품들, 예를 들어 영화나 음악도 연말이 되면 각종 시상식이 열리긴 하지만 책처럼 연말을 시끌벅적하게 보내지는 않는 것 같아요. ‘독자가 뽑은 올해 최고의 책’ ‘편집자가 뽑은 최고의 책’ ‘주목받지 못해 안타까운 책’까지 다양하더군요. 1년에 3만~4만종의 단행본이 나온다는데 연말 이벤트를 통해서나마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싶은 것이겠지요. 2009년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한국인들은 1년에 평균 12권 정도의 책을 읽는데 2010년에 ‘대한민국 평균인’에 들어가셨는지요?”
“턱걸이는 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샌델 얘길 하길래 <정의란 무엇인가>도 읽어봤고,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쉽게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천안함 사건이나 월드컵처럼 독서를 방해하는 사건이나 이벤트가 워낙 많아서 독서량이 전체적으로 줄지 않았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1년에 12권을 읽는다는 건 한 달에 한 권꼴로 읽는다는 뜻인데 이런 얘길 들으면 사람들이 생각보다 책을 많이 읽는다면서 놀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한 달에 한 권도 안 읽는다면서요. 제가 보기에 독서도 양극화 현상 같은 게 있지 않나 합니다. 읽는 사람은 더 많이 더 깊게 읽는 반면, 읽지 않는 분들은 점점 더 독서와 멀어지는 현상 말입니다. 특히 디지털 멀티미디어를 일찍부터 접해온 젊은층은 ‘물질’로서의 책에 이전 세대보다 덜 친숙해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확산될 전자책이 이들의 독서율을 높여줄지 관심거리입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매체 환경이 변하면서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변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실제로 얼마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행태가 많이 바뀐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양을 잃다>(이순)란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옛날에 책장 사이에 은행나무 이파리나 나팔꽃잎을 끼워서 말려보신 기억이 있으시죠? 저는 그게 단순히 멋으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책벌레를 막아주는 효능이 있대요. 그런데 이제는 책장에 나뭇잎 넣어서 말리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디지털 시대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멋과 낭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독서도 그렇습니다. 전달하는 매체의 모양이 달라질 뿐 ‘읽는 행위’는 계속되리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낙관론자인 셈입니다.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됐네요. 아쉽지만 제가 책동네를 떠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책동네 산책’ 코너도 2010년과 함께 끝을 맺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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