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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책동네 산책]리영희처럼 읽고 생각하기

책동네 산책을 작년 4월부터 썼는데,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돌아가신 분이 세번째로 주제로 올랐다. 다들 책을 무지하게 좋아했던 분들이어서 피해갈 수 없었다.

리영희 선생하고는 이런저런 개인적 인연이 좀 있다. 신입기자 시절 국제부에서 근무했는데 아프간전에 관한 기사를 보고 리 선생께서 칭찬하는 메시지를 보내온 적이 있다. 감열지 팩스를 이용하던 시절이었는데 손수 칭찬하는 메세지를 써서 문화부 팩스로 보내셨다. 문화부 선배가 기념으로 갖고 있으라며 주셔서 고이 보관했는데 얼마전 보니 오래되서 그런지 글씨가 지워져 버렸다. 감열지는 오래 놔두면 그렇게 되나보다.

선생을 직접 뵐 기회도 있었다. 2003년 가을 즈음 선생 댁으로 찾아갈 일이 있었다. 당시 경향신문이 연재중이던 '실록 민주화운동'의 한꼭지가 <전환시대의 논리>에 관한 것이었는데 자료사진을 구하려 찾아뵌 것이었다. <역정>을 들고가서 사인을 부탁했더니 거짓말 안보태고 정말로 입이 귀에 걸리시는 모습이었다. "아니 이거. 아직도 이 책이 나오나?"라면서 뇌졸중 때문에 불편한 팔로 사인을 해주셨다.

출판계 주변을 얼쩡거린지 1년8개월. 이래저래 낯을 익힌 분들이 적지 않다. 그중엔 소주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 분들도 적지 않은데 ‘정식’ 인사를 드리지도 못하게 출입처를 옮기게 됐다. 좋아서 기자라는 직업을 하고 있지만 몇번 겪었어도 이럴 땐 난감하고 당황스럽다. 격주마다 쥐어짰던 책동네 산책도 이쯤에서 마무리 해야 한다. 다음주쯤 2010 송년 지면에 고별 칼럼을 쓸 수 있을진 모르겠다. 이 블로그에 출판계 분들이 알음알음으로 들어와 보신 것으로 안다. 그간 내가 쏟아낸 주제 넘은 소리들을 귀엽게 봐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책동네 산책]리영희처럼 읽고 생각하기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셨다. ‘1970년대 젊은이들의 사상적 은사’ 또는 ‘의식화의 원흉’이 그에게 상투적으로 따라붙었던 수식어다. 정반대의 뉘앙스이지만 이런 수식어는 대체로 그가 쓰고 말한 것들에서 유래한다. 기자로서, 학자로서, 저술가로서 선생은 참 많은 글을 썼다. 그래서 우리는 선생이 남긴 글들만 생각하기 쉽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글을 쓰기 위해 그가 누구보다 많은 것을 읽고, 궁리했다는 사실은 잊기 쉽다는 것이다.


선생은 환갑을 몇 년 앞둔 88년 <역정>(창비)이라는 자전적 에세이집을 출간했는데 오래전 읽는 이 책에서 내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모두 ‘읽기’에 대한 선생의 집념에 관한 것이다. 한국전쟁이 나던 시절 선생은 안동공립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중이었다. 선생은 집에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다가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언제인가 징역을 살 때는 학창시절에 하다 만 프랑스어 공부도 할 겸 가족에게 <레 미제라블> 원서를 넣어달라고 해서 읽었다는 대목도 나온다.

내가 기자가 된 것은 그가 현직기자에서 물러난 지 30년 가까이 흐른 뒤이지만 ‘기자 리영희’가 남긴 전설은 여전히 언론계에 남아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통일원 자료실’ 얘기일 것이다. 지금도 완전히 자유로운 편은 아니지만 과거엔 기자 또는 학자라고 해도 북한 또는 공산권에서 나온 자료에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느 북한 관련 연구자가 통일원 자료실을 자주 이용했는데 자기가 열람하는 자료마다 ‘리영희’란 사람이 앞서 열람했다는 기록이 있기에 유심히 봤더니 거의 모든 자료의 열람카드에 리영희라는 이름이 써 있었다고 한다. <리영희 평전>(책보세)을 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은 자신이 그간 쓴 현대사 인물에 관한 10여권의 평전을 선생이 모두 꼼꼼히 읽고 잘못된 부분까지 지적한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글을 쓰거나 말하기에 앞서 ‘팩트(fact)’부터 챙기는 선생의 습성을 보여준다. 선생의 평론집 <스핑크스의 코>(까치)에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바쁘다’란 제목의 칼럼이 실려 있다. 96년에 쓴 글인데 젊은 여성들이 소비주의에 휘둘리는 세태를 꼬집는 내용이다. 선생은 그 해 겨울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가죽부츠가 크게 유행한다는 얘기를 매스컴에서 들었다는 말로 글을 시작했다. 결혼식 참석차 명동에 나간 김에 가죽부츠의 인기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해 길 한쪽에 서서 지나가는 여성 20명의 구두를 살폈다고 했다. 그 결과 8명이 가죽장화를 신었더라면서 40%라는 수치를 도출한다. 이처럼 세태를 풍자하기 위한 글에서조차 선생은 근거를 제시하고 싶어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선생의 글들은 차분한 분석적 논조를 유지할 수 있었고, 웅변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시사평론집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오래됐다는 인상을 받기 쉬운데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두레), <스핑크스의 코>처럼 십수년 전 나온 선생의 평론집은 지금 읽어도 시의성이 느껴지는 글들이 많다. 우리가 선생에게서 ‘리영희처럼 쓰기’뿐 아니라 ‘리영희처럼 읽기’와 ‘리영희처럼 생각하기’도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201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