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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 속의 풍경

너무나도 귀여운 '마녀 위니' 사인

평소 저자 간담회를 가도 사인을 부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유명 저자들인 경우 사인 부탁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쑥스럽기도 하고 촌스러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습성에서 벗어났다. 내 아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마녀 위니' 시리즈를 그린 코키 폴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실은 폴 할아버지가 지난 1월인가에 방한을 했을 때 내 아이를 본 적이 있다. 서울 어린이 도서관에서 마녀 위니의 마법 모자 만들기 행사가 있어서 데려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폴 할아버지는 내 아이를 불러내 매우 재미난 캐리커쳐를 그려주기도 했다. 이 그림은 집에 걸려 있다. 그래서 어제 아이에게 아빠가 코키 폴 할아버지 만나러 가니까 편지든 그림이든 그려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마녀 위니와 슈퍼 호박>의 표지 그림을 제법 그럴듯하게 베껴그리고 뒷장에 편지까지 썼다. 이걸 폴 할아버지에게 전했더니 무척 기뻐하면서 새로나온 <마녀 위니와 우주 토끼> 책 안쪽에 위와 같이 정성들인 글씨와 그림을 써주었다. 아이는 아직 어려서 저자 사인본을 가져가도 잘 모르는데 여하튼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얘기가 나온 김에 저자 사인본에 관한 얘기를 하나 덧붙인다. 한국 기자들은 대체로 나와 비슷해서 한국에선 저자 간담회를 해도 사인을 부탁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런데 지난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재미난 광경을 봤다. 켄 폴릿이라는 영국 작가가 쓴 대하소설 <거인들의 몰락>이 독일어로 번역된 것을 계기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회견이 끝나고 펜기자, 사진기자 할 것 없이 책을 한권씩 증정받아선 줄을 서서 작가에게 사인을 받는 것이었다. 공짜책에 사인을 받고서는 무척 즐거워 하는 표정들이었다. 아, 공짜책 좋아하는 건 독일 기자들도 마찬가지구나 싶었다. 이색적인 광경이어서 사진을 한장 찍어뒀다. 저자는 사인을 받는 기자들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는다.


아 참, 요분이 바로 코키 폴 할아버지 되시겠다. 간담회장 뒤편에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는데 그새를 못참고 그 그림에다 이것저것 익살스러운 '장치'들을 그려넣고 있다. 보시다시피 왼손잡이다. 폴 할아버지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태어났고, 남아공에서 자랐는데 할머니가 화가여서 어려서부터 그림을 많이 보고 많이 그리고 자랐다고 한다. 아버지는 법대를 가서 변호사가 되길 원했지만 자신은 미대를 가고 싶어해서 갈등이 좀 있었단다. 사회생활은 광고회사에서 과자나 사탕 같은 제품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 어린이들 미술 재능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
-마녀 위니 시리즈의 일러스트레이터 코키 폴, 세번째 방한

마녀 위니와 우주 토끼 - 10점
밸러리 토머스 지음, 코키 폴 그림, 노은정 옮김/비룡소

부스스한 머리와 빨간 매부리코, 색동 양말과 찌그러진 고깔모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30개국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 ‘마녀 위니’. 요술 지팡이를 흔들어 엉뚱하고 기발한 일들을 벌이는 마녀 위니 시리즈를 그리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코키 폴(59)은 만년필과 붓을 마치 요술 지팡이처럼 사용한다. 아이들이 다가와 사인을 부탁하면 슥삭슥삭 순식간에 익살스런 그림들을 그려낸다.

짐바브웨에서 태어나 현재 영국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폴은 마녀 위니 시리즈의 11번째 책 <마녀 위니와 우주 토끼>(비룡소) 발간에 즈음해 한국에 왔다. 29일 기자들과 만난 폴은 “한국에서 제 그림이 왜 이렇게 인기가 있는지 저도 궁금하다”는 너스레로 말문을 열었다. <마녀 위니와 우주 토끼>는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살펴보던 위니가 요술로 로켓을 만들어 고양이 윌버와 함께 우주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예쁜 별에 도착한 위니가 윌버와 함께 도시락을 먹으려 하는데 갑자기 이상한 동물이 나타난다. 쫑긋한 두 귀와 날카로운 이빨, 심술궂은 표정의 우주 토끼들이다. 우주 토끼들은 위니의 도시락을 뺏어서 맛을 보지만 모두 뱉어낸다. 대신 로켓에 달려들어 뜯어먹기 시작한다. 다급해진 위니가 요술 지팡이를 휘둘러 당근과 상추가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게 하지만 우주 토끼들은 로켓을 뜯어먹느라 정신이 없다.

위니의 부스스한 머리카락만큼이나 어지럽고 너저분하게 펼쳐진 물건들, 책장 가득한 알록달록한 색깔은 새 책에서도 변함이 없다. 폴은 “지난번 작품인 <마녀 위니와 슈퍼 호박>에 위니가 호박으로 헬리콥터를 만들어 하늘을 나는 장면이 나온다”면서 “이 그림을 그리면서 우주로 떠나는 이야기를 그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각 페이지마다 태양에서부터 달, 수성, 금성, 지구 등 천체가 순서대로 나오는데 폴은 수많은 별들 사이에 자신의 사인을 교묘하게 숨겨 놓기도 했다.

한국을 세번째 찾은 폴은 방한할 때마다 어린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하는 행사를 연다. 그는 “한국 어린이들의 미술쪽 재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면서 “이런 재능이 핏속에 흐르고 있는게 아니라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 어린이들은 디자인과 색감 모두 훌륭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 국제학교에서 그림을 그려보는 워크숍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한 그룹의 아이들이 월등하더라고요. 영어로 진행했으므로 어느 나라 아이들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한국 아이들이라고 하더라고요.” 마녀 위니 시리즈는 책의 앞뒤쪽 속표지에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을 싣고 있다. 폴은 “앞으로 한국 어린이들의 그림도 싣고 싶다”고 말했다.

“그림책에 실리는 그림의 역할은 이야기가 잘 전달되고 오래 기억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폴은 어린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할 때 가장 강조하는 것이 ‘상상력’이라고 했다. 선생님인 자신의 그림을 똑같이 따라하기 보다는 각자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비평적 시각을 갖도록 하기 위해선 ‘가장 좋은 그림책’과 ‘절대로 다시 나와선 안될 그림책’을 각각 뽑아보도록 하는 것도 좋다고 귀띔했다. “아이들이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서 나온 그림책을 많이 보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나라와 문화만 알고 오만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2010.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