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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책vs책]<나무를 심은 사람>과 <나비문명>

<나무를 심은 사람>. 더 설명이 필요없는 이야기다. 원래는 <나비문명>에 관한 서평을 준비중이었다. 아래도 썼지만 <나비문명>의 필자는 나무를 꾸준히 심어온 것으로 유명한 일본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인연도 쉽지 않다. <나무를 심은 사람> 팝업북이 새로 나온 것이다. 이런 걸 '윈-윈'이라고 하던가? 마사키의 <나비문명>을 읽으며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떠올리지 못했는데 공교롭게 같은 주에 나오니 쌍을 이루기 딱 좋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런데 <나비문명>이라는 책은 나와 조금 더 깊은 사연이 있다. 마사키 선생은 지난해 이맘때쯤 '생명평화결사'인가 하는 곳에서 주최한 '즉물즉설'(즉석에서 묻고 답한다) 프로그램에 강연자의 한분으로 참가했었다. 당시 그는 한국에서 100일 동안 걷는 '워크나인' 행사를 하고 있었다. 당시 매주 열리는 즉물즉설을 경향신문이 지면에 연재하고 있었는데 문화부원이 돌아가면서 취재를 했다. 그런데 내가 맡은 분이 마사키 선생이었다. 매우 도인스러운 외모와 차분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아래 기사에도 길게 인용했지만 '나비문명'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참신하게 들렸다. 전혀 다른 차원의 문화와 문명을 만들자는 그 비유는 매우 쉬우면서도 설득력이 있게 들렸다. 아, 저 양반의 내공이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다.

당시 행사를 진행하시던 분이 쉬는 시간에 이분이 이런저런 책을 냈는데 한국에도 좀 소개시켰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는 편집자들을 불렀는데 안온 것 같다면서 아쉬워하는 말을 했더랬다. 나는 강연 내용이 꽤나 인상이 깊어서 녹취록 전문을 이 블로그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인문사회 출판사에 근무하는 편집자들을 술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생기면 마사키 선생 얘기를 하곤 했다. 내가 책은 안읽어봤지만 얘기는 참 신선하더라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잊어버렸는데 책세상의 편집자께서 올 상반기이던가, 이 책을 번역하기로 했다고 일러줬다. 그리고 드디어 책이 나온 것이다. 출판기자이자 독자로서 아이디어를 소개를 한 셈인데 막상 이렇게 나오고보니 이 기분 또한 새롭다. 책이 나오기까지 나오 공모를 한 셈이니 마지막까지 '애프터서비스'를 해야했다. 뭐, 그게 아니었더라도 소개할만하고, 읽을만한 책이다.

[책vs책]‘나무를 심자’…생태 복원 속에 피어나는 ‘행복 한아름’

나무를 심은 사람 (팝업북) - 10점
장 지오노 지음, 신대범 옮김, 조엘 졸리베 그림/두레아이들
나비문명 - 10점
마사키 다카시 지음, 김경옥 옮김/책세상

인류가 근대의 급류에 올라탄 이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작용’이란 십중팔구 착취·파괴·절멸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종종 사나운 표정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자연의 ‘반작용’, 앞으로 예견되는 분노에 찬 자연의 ‘역습’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작용은 여전히 착취·파괴·절멸이다.

드물지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작용’이 공생·보호·복원인 경우가 있다. 최근 방한한 제인 구달이 공저로 펴낸 <희망의 자연>은 멸종위기 생물종을 복원하기 위해 ‘미친 짓’이라는 소릴 들어가며 헌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의 성공담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부와 명예를 거머쥔 이들의 성공담에서 느끼는 감동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순간이지만,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는 것은 지난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그래서 끈기와 희생이 필요하다. 변화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자연을 보호하고 복원하는 작업이 ‘투입·산출’이라는 건조한 기능주의적 과정이었다면 세속적 성공담이 주는 감동과 생태적 성공담이 주는 감동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21개국 언어로 번역되고, 프레데릭 백에 의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 <나무를 심은 사람>, 그리고 일본의 유명한 농부 마사키 다카시가 쓴 생태·평화 에세이 <나비문명>은 이 질문의 답을 품고 있다. 자연을 보호·복원한다고 표현할 때 보호자(인간)-피보호자(자연)의 공식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며, 자연을 보호·복원하는 일에 나선 인간은 정신적·육체적 변화와 깨달음, 행복을 얻는다는 것이다.

1953년 처음 나온 고전 <나무를 심은 사람>은 번역본이 여럿 나와 있는데 새로 나온 책은 앞뒤에 입체로 펼쳐볼 수 있는 ‘팝업’ 페이지가 달려 있다. 나무 하나 없고 냇물마저 말라버려 암울하고 황량한 고산지대가 연두색과 진초록의 수풀이 우거지고 시냇물이 흐르는 곳으로 바뀐 모습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나무를 심은 사람>은 홀로 산 속에서 고독하게 살면서 매일 도토리와 자작나무를 심은 남자 엘제아르 부피에의 이야기다.


황폐했던 땅은 40여년 뒤 거대한 숲으로 다시 태어났고, 사람들 사이에 경쟁과 다툼·의심만 가득했던 이 지역은 젊음과 웃음이 넘치는 곳이 됐다. 부피에가 숲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었다면, 숲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과는 조금 다르게 마사키 다카시는 똑같이 나무를 심는 사람이지만 두런두런 재밌게 말하는 재주가 있다. 그는 도쿄교육대 사학과를 나와 인도를 방랑하다 80년부터 규슈 산 속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2000년부터는 나무를 심어왔다. 2007년부터는 일본 평화헌법의 핵심인 9조를 지키기 위한 평화순례를 정기적으로 진행했다. 지난해엔 일본의 조선 지배를 사죄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양국 젊은이들과 함께 남한 땅을 100일간 걸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책 앞에 등장하는 우화에 압축돼 있다.

“한 그루 나무가 있었습니다. 봄이 와 애벌레들이 한꺼번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이파리를 먹어치우면 분명 나무가 죽어버릴 거야.’ 애벌레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잎을 다 먹으면 나무가 말라서 결국 아무도 살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나무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너는 곧 나비가 될 거야. 나비가 되면 누구도 잎을 먹지 않는단다. 꽃에 있는 꿀을 찾게 되지. 그리고 꿀의 달콤함에 취해 춤도 춘단다. 그러면 꽃이 열매를 맺지.’ 여름이 되었습니다. 나무에는 꽃이 피고 달콤한 향기가 피어올랐습니다. 나비가 된 애벌레는 투명하고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꽃과 놀았습니다. 가지는 언제부턴가 다시 푸르러졌고, 꽃에서는 열매가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는 자원고갈과 환경파괴, 전쟁 등을 낳은 서구문명으로는 아무것도 풀 수 없다면서 서구문명과 단호히 결별하고 자연과 일체가 될 것을 촉구한다. 나뭇잎을 파먹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나뭇잎 파괴하기를 멈추게 되듯 의식의 변화를 통해 공존과 평화의 문명으로 탈바꿈하자는 것이다. 웅숭깊은 사색이 없었다면 이처럼 단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생태와 평화의 메시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 메시지가 주는 감동은 심오하지만 출발점은 소박하다. 나무를 심자. 나무가 내는 소리라도 들어보자. 자연은 위대하다. (2010.10.16)

P.S. <나무를 심은 사람>에 삽입된 팝업페이지는 너무 귀엽다. 본문 삽화도 그렇고. 이 책을 문화부장과 편집부 부장 등 선배들에게 보여줬더니 '캬~. 이제 이런 책들도 나오는구나'라면서 감탄이다. 책이 얇고 너무 예쁘다. 어린이 컨셉이지만 어른들도 꼿아두고 싶은 책이다. 프랑스 갈리마르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