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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흐름]'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 이후…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 종합순위 1위에 오르고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기 시작하던 순간부터 출판계 인사들은 이 현상을 '미스터리'라며 의아해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출판사, 특히 인문서를 내는 출판사 편집자들의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이 책을 들여온 김영사의 마케팅 실력이 혀를 내두를 정도라면서 은근히 폄하하는 반응도 있었다. 이건 요즘도 마찬가지다. 어떤 학자가 이 책의 원제가 <정의: 옳은 일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인데 번역하면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바꿔치기 했다면서 비판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이 책의 '대박'이 책 자체가 가진 저력 때문인지, 출판사의 '실력' 때문인지, 이 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새와 맞물리는 '시운'을 타고난 때문인지 솔직히 나도 궁금했다. 어쩌면 앞에 나열한 것들이 모두 작용했다고 보는게 정답일게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리뷰기사를 쓰기 위해 밤을 새워 읽었다. 얼마전 아내가 이 책이 대학원 수업의 기본교재가 됐다면서 뽑아들길래 다시 한번 짧게 훑어봤다. 수도 없이 많은 페이지가 접혀 있고, 밑줄이 쳐져 있었는데 처음 급하게 휘리릭 읽을 때는 책의 꼴이 나름대로 머릿속에 잡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까 그리 녹록치 않은 책이란 사람들의 지적이 그럴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이 책은 50만부라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주 베스트집계에서 2위로 내려앉았으니 힘이 점점 빠지는 중이다. 하지만 인문서로서 50만부라는 기록은 당분간 깨지기 힘들거다. 2010년 출판계 뉴스 가운데 당연히 앞쪽에 놓여야 하는 사건인 셈이다. 더구나 마이클 샌델의 책을 낸 미국 출판사쪽은 샌델의 강의 동영상을 한국에서 방영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니 그렇게 되면 다시 한번 힘을 받을 것이다.

자,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 정도로 해두고 이제 '앞으로'의 문제가 남는다. 너무 호들갑스럽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차제에 인문서, 사회과학서 분야가 '동반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이 기사에 깔려있지 않다고는 못하겠다. 기사에도 인용됐지만 출판쪽 사람들은 기준을 높고 좁게 두고 있는듯 했다. 반면 서점쪽에서는 '인문' '사회과학'을 넓게 분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형서점은 책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으니 나름 신빙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 연말 출판 결산을 쓸 때 '<정의란 무엇인가>와 인문 혹은 사회과학 분야'로 한꼭지가 채워질 것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 이후…
-출판계 “어려워서 인문학 관심 멀어질라”
-서점가 “무거운 주제의 독자관심 늘어나”

정의란 무엇인가 - 10점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김영사

인문서로는 8년 만에 처음으로 종합베스트셀러 목록 1위에 올랐던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김영사)(사진)가 총 50만권(출고 기준)이 판매됐다. 출간된 지 5개월 만이다. 웬만해선 초판 2000~3000권조차도 쉽게 소화되지 않는 한국의 인문서 소비 현실에서 지극히 이례적이다. 하나의 ‘신드롬’으로 자리잡은 형국이다.

지난 5월24일 출간된 <정의란 무엇인가>는 7월 첫째주에 처음으로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이하 교보문고 기준). 7월 마지막주~8월 둘째주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문학동네) 제3권에 자리를 내줬지만, 8월 셋째주부터 다시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책은 10월 셋째주에 조정래의 소설 <허수아비춤>(문학의문학)에 자리를 내주기까지 총 12주 동안 1위 자리에 있었다.

정치철학을 다루는 책이 이토록 오랫동안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신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당연히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는데 간추리자면 일단 지적 호기심 또는 지적 허영 등이 지적된다. 책이 한번 종합베스트셀러 목록에 진입하면 입소문과 독자들의 호기심이 일으키는 상승작용 때문에 자체 동력으로 얼마간 판매가 지속된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공정사회론’, 김태호 총리 지명자의 인사청문회 거짓말 논란과 낙마,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의 딸 특별채용 파문 등이 이 책이 계속 회자될 수 있는 소재를 제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실이 정의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논리다.

이제 관심은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로 쏠린다.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동녘), <왜 도덕인가>(한국경제신문사) 등 샌델 교수의 다른 저작들이 추가로 소개됐거나 소개될 예정인데, 샌델에게 모아졌던 독자들의 관심이 다른 인문·사회과학 서적으로도 확산될 것인가란 질문이 제기된다.

출판계는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장재경 김영사 홍보팀장은 “다른 인문서들이 조금 같이 움직이는 것 같긴 하지만 시장 자체가 워낙 위축돼 있다 보니 아직 피부로는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미정 책세상출판사 편집과장은 “한 권의 책이 넓은 의미의 인문서 시장 자체를 키우거나 독자들의 인문서 독서 욕구 진작에까지 실효성 있는 영향력을 끼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어느 출판사 대표는 “워낙 쉽다고 해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집어들었던 독자가 어려움을 느끼고 포기함으로써 다른 인문서에 대한 관심마저 차단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점 쪽 얘기는 다르다. 인문서 시장이 지난해에 워낙 크게 위축됐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긴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 인문서 판매량은 다소 늘었으며, 하반기에도 무거운 주제와 두꺼운 책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나온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민음사), 조지 레이코프의 <도덕, 정치를 말하다>(김영사), 발간 예정인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와 같은 책들이다. 교보문고에서 베스트셀러 집계를 담당하고 있는 김현정씨는 “과거 같으면 독자층이 매우 협소했을 이런 책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늘어난 배경에 <정의란 무엇인가>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자기계발서대로 한다고 인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 판명된 마당에 인간과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소장은 “1980년대 같은 수준은 아니어도 인문시장이 커질 것으로 본다”면서 “암울한 현실이 그런 책을 읽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0.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