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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2010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리포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출장을 그야말로 휘리릭 다녀왔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다녀왔다. 작년은 세계경제위기에다 사스가 겹친데다 날씨마저 을씨년스러웠는데, 올해는 날씨가 무척 좋은 편이었다. 2010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관해 쓴 기사를 갈무리해둔다. 기사에서 썼지만 올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인공은 사실상 '책'이 아니라 '디지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기관지에 참관기를 써달라고 해서 보냈는데 출판계 사람들이 보게될 그 글에선 이에 대해 더 자세하게 다뤘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는 내가 가장 경계하는 모습인데,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보통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엘 가면 하루쯤 짬을 내서 하이델베르크와 라인강변, 혹은 구텐베르크 박물관이 있는 마인츠 등을 방문한다. 나는 지난해에 부지런을 떨어서 세군데를 모두 다녀왔다. 그래서 올해는 독일서 유학을 했던 분의 추천을 받아 프라이부르크에 하루 일정으로 다녀왔다. 하이데거와 아렌트, 훗설이 몸담았다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이 있고, 환경도시로 유명하다. 프라이부르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산정호수 '티티제(Titisee)'에도 다녀왔다. 쭉쭉 뻗은 전나무숲과 호수가 절경이었다. 프라이부르크 시내에선 아주 얘쁜 서점을 발견해 구경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다.

그런데, 다녀와서 사진을 보니 엉망이다. 아주 간편한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갔었는데 워낙 저질의 촬영실력에다 '검소한' 카메라가 만나 목불인견의 사진들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이번 도서전 출장에서 돌아와 내가 세운 결심은 엉뚱하게도 DS뭐라는 카메라를 사자는 것이었다. 비싼 카메라를 당장 덜커덕 살 수는 없으므로 6개월 계획으로 사진과 카메라에 대해 의식적으로 공부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좀 막연하긴 하다. 여하튼 프랑크푸르트와 프라이부르크를 방문해 건진 몇장의 사진과 에피소드는 짬날 때 올릴 작정이다.

디지털 + 콘텐츠, 출판 미래 밝힌다 ... 2010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 스토리텔링 바탕 영화·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
■ 세계경제위기 여파 지난해 이어 스릴러·성찰물 강세

2010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아르헨티나를 주빈국으로 해 지난 6일(현지시간) 개막, 10일까지 열리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세계 최대의 국제도서전으로 출판 저작권 상담 및 계약이라는 본연의 역할 외에도 신간서적을 통해 드러난 세계 지식인 및 대중의 관심사, 출판산업을 비롯한 문화산업의 동향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서구권 출판사들이 2010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내놓은 책들은 픽션의 경우 범죄 및 스릴러, 논픽션은 금융자본주의의 모순, 기후변화와 테러의 위험, 빈곤과 불평등 등 ‘지구적 위험’에 대한 성찰과 대응을 모색하는 추세가 이어졌다.

도서전 주최 측이 각국 출판사들을 위해 준비한 메시지는 ‘콘텐츠의 힘으로 변화의 파고를 타고 넘자’는 것이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전자출판, 출판과 독서의 디지털화에 관한 담론이 지배한다. 최신의 전자출판 솔루션과 전자책 단말기들이 전시되고, 콘텐츠를 발굴해 엮어내는 출판 고유의 능력을 바탕으로 영화·게임·교육 등 다른 장르와 결합해 나가기 위한 방안들도 모색된다. 디지털의 위세에 밀려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출판계가 만들고자 한 새로운 활로이자 고육책이다.


◇스릴 또는 성찰 = 논픽션과 세계 경제위기를 맞아 불기 시작한 스릴러물의 강세가 올해에도 지속됐다. 이런 현상은 특히 유럽에서 강하다. 국내에도 한 차례 소개된 적이 있는 3부작 소설 <밀레니엄>의 작가 스티그 라르손은 2004년에 작고했음에도 여전히 유럽을 대표하는 스릴러 작가로 각광받고 있다. 연쇄살인 및 인신매매와 같은 범죄의 진상을 파헤치는 스릴러물인 <밀레니엄>은 곧 국내에 재출간돼 스릴러물 독자층이 그리 두텁지 않은 한국에서의 가능성을 다시 타진할 예정이다.

김미정 문학동네 저작권팀장은 “예년에도 그랬지만 연쇄살인 등 스릴러·서스펜스물이 대세”라면서 “굳이 대비하자면 2009년엔 롤리타 신드롬을 비롯한 비정상적인 애정관계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저작권 에이전시인 북코스모스의 홍순철 대표는 “영어권의 경우 스릴러 퇴조가 감지됐지만 유럽권은 스릴러 강세가 여전하다”면서 “경제불황의 일시적인 여파로만 볼 수 없는 하나의 정착된 흐름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고 분석했다.

2008년 시작된 세계 경제위기가 논픽션에 미친 영향 역시 여전하다. 2009년 도서전에서 감지됐지만, 정치·경제·사회·환경·국제적인 ‘정의’의 문제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대 출판부는 로널드 드위킨의 를 2010년 가을 신간목록 상위에 올렸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법철학자 드위킨은 이 책에서 그리스 시대로부터 시작해 정의와 윤리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탐구했다. 국내에도 번역된 평전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쓴 영국의 저명 경제·경영작가 로버트 스키델스키의 등 성장에 대한 집착을 비판하고 진정한 경제적 행복의 의미를 탐구하는 책들이 주목을 받았다. 김보경 웅진지식하우스 주간은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정의란 무엇인가>는 미국에서도 워낙 주목을 받았던 책이기도 하지만 이 책 외에도 정의의 문제를 파고드는 책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 디지털! 디지털! 디지털! = 미국의 출판전문지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2010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다룬 기사의 제목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조만간 전자책(E-Book) 전시회가 될 것인가?’라고 달았다. 2010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보여주는 디지털에 대한 열망 또는 강박을 빗댄 것이다.

출판의 전자화, 책의 전자화 담론이 현실성을 띠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부터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기대와 관심, 우려는 높아갔으나 전자책 시대로의 이행은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2010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풍경은 ‘작은 변화들이 쌓여 조그만 변화가 하나만 일어나도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 ‘티핑 포인트’에 도달한 듯한 인상을 준다.

전시장 곳곳에서 진행된 세미나와 프레젠테이션은 디지털에 관한 주제가 점령하고 있다. 디지털 담론과 장비가 도서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이 분야가 성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기존 출판계의 영역이 그만큼 축소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심지어 더글러스 러시코프라는 미디어 전문가는 도서전 개막과 함께 열린 전문가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디지털 혁명이 계속되면서 출판산업은 인력을 현재에 비해 40%로 줄여야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주최 측은 출판산업과 미디어산업 사이의 디지털 격차를 줄인다는 목표를 내걸고 ‘스파크(SPARK)’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선보였다. 문학·출판서비스·정보관리·교육·모바일·디바이스 등 6개 주제로 나누어 프레젠테이션이 이뤄지는 ‘핫 스팟’, 출판사와 영화·게임 등 미디어 관계자들의 만남을 위한 ‘스토리 드라이브’가 그것이다. 위르겐 부스 2010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집행위원장은 지난 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야기의 바다가 지닌 잠재력은 한계가 없다”면서 “테크놀로지는 단순히 운반의 도구에 불과하며 콘텐츠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우리가 도달한 결론”이라고 말했다.


주최 측이 <잉크 하트> 등의 청소년용 판타지 소설을 쓴 다음 연이어 영화로 제작한 독일의 코넬리아 푼케를 개막식에 초청한 것도 이 같은 의도를 반영한다. 한국에도 번역된 푼케의 신간 <레크리스>는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쓰였으며 현재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스토리의 힘이 주목받고 강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쉬운 예로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모두 책에서 출발해 영화, 게임 등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미 수차례 복습된 스토리텔링의 힘에 대한 주최 측의 강조는 그리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론 전자출판과 전자책 담론에 무분별하게 휩쓸려 가면서 불안해 하던 세계 출판계가 스토리텔링이라는 본연의 장점을 재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010.10.11) **사진출처는 도서전 홈페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