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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구워진 글

[전문가 리뷰]다윈 평전 vs. 찰스 다윈 평전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의 한권으로 나온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박성관 지음/그린비)에 관한 리뷰를 쓰면서 '현대의 인문·교양서 독자들이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는 대상이 칼 마르크스와 찰스 다윈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마르크스도 그렇거니와 다윈의 경우도 그 이름 자체로 아우라를 갖는 '위인'이다. 당연히 위인전의 단골 인물이다.

'위대한 인물'이기에 위인의 삶과 사상, 그가 미친 영향, 당시의 시대상 등을 짚어보고 평가하는 '평전'은 부피가 커질 수 밖에 없다. 교양인 출판사가 내고 있는 평전 시리즈인 '문제적 인간' 시리즈는 각권이 1000쪽을 훌쩍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찰스 다윈.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도 많고 평전 작가가 하고 싶은 말도 많은 인물이다. 작년에 먼저 번역된 <다윈 평전>(에이드리언 데스먼드·제임스 무어/뿌리와이파리)은 1600쪽을 훌쩍 넘긴다. 최근 2권으로 번역된 <찰스 다윈 평전1·2>(재닛 브라운/김영사)은 2권을 합해 2000여쪽. 이 정도 되면 '목침볼륨'이라고 부를만 하다.

작년에 나온 <다윈 평전>은 당시 기사를 쓰기 위해 중요 대목 몇군데를 발췌해서 읽고는 '나중'을 위해 미뤄뒀는데, 더 큰 놈이 달려든 형국이다. 2종을 책상에 올려놓고 정작 손은 못대고 바라보며 고민을 하다가 깨끗히 손을 들고 '전문가'에게 SOS 신호를 보내기로 했다. 이한음 선생께 청탁을 해놓고 집에가서 책장을 보니 이 선생이 번역한 책이 꽤 여러권 꽂혀 있다. 3주전엔가 봤던 <스마트 스웜>도 이 선생의 번역작이다.

워낙 대작들이고, 다윈에 대한 이 선생의 '애정'(?)이 깊어서일까? 각권의 특장점 위주로 비교를 해주셨다. 이 지도로는 2권을 완전히 꿰뚫는데는 좀 부족한 느낌이지만 이 선생이 쓴 것처럼 다윈이라는 인물의 다의적인 면모를 느낄 수는 있다. 여튼 책은 직접 읽어야 맛이다. 아랫 사람들에게 동서양 고전들을 A4 한장짜리로 요약시켜서 읽었다는 철학과 출신의 어떤 전직 대통령처럼 남을 통한 읽기는 남는게 별로 없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82)이 밝혀낸 종의 기원과 진화의 법칙은 인간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발견의 하나로 손꼽힌다. <종의 기원>은 출간 직후부터 뜨거운 찬사와 격렬한 비난·조롱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다윈을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진화론은 생물학 분야를 뛰어넘어 심리학·사회학·경제학 등 거의 전 분야에 혜안을 던져주는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는 다윈이 태어난 지 200주년, <종의 기원>이 처음 출간된 지 150주년 되는 해였다. 다윈 평전에서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에이드리언 데스먼드·제임스 무어의 <다윈 평전>(뿌리와이파리)과 재닛 브라운의 <찰스 다윈 평전1·2>가 시차를 두고 번역돼 한국 독자들을 찾았다. 각각 1600쪽과 2000여쪽이 넘는 대작이다. 저명한 과학책 번역가이자 <신중한 다윈씨>를 비롯한 과학책 저술가인 이한음씨가 이들 ‘다윈 평전’을 먼저 읽고 길 안내를 한다.

다윈, 우유부단했나? 용의주도했나?
‘다윈 평전’ - ‘종의 기원’에 초점 맞춰 사회 변화·시대 흐름 담아
‘찰스 다윈 평전 1·2’ - 책략가적 신중성에 중점, 사적인 삶 충실히 전달


다윈 평전 - 10점
에이드리언 데스먼드 외 지음, 김명주 옮김/뿌리와이파리
찰스 다윈 평전 : 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 10점
재닛 브라운 지음, 임종기 옮김, 최재천 감수/김영사
찰스 다윈 평전 : 종의 수수께끼를 찾아 위대한 항해를 시작하다 - 10점
재닛 브라운 지음, 임종기 옮김, 최재천 감수/김영사
언뜻 보면 별로 하는 일도 없는 듯하다. 가끔 산책하듯 동네 한 바퀴를 돌거나,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꽃인지 벌레인지 몰라도 한참을 들여다보곤 한다. 꽤 배운 사람 같은데 때로 저 강아지는 별나게 생겼네요, 하면서 하찮은 것을 꼬치꼬치 캐묻기도 한다. 그러다가 집 안에 들어가면 컴퓨터 앞에 몇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 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마 동네 이웃에게는 백수이거나 컴퓨터 게임 중독자로 비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비치는 모습은 전혀 딴판이다. 그는 트위터, 미니홈피, 인스턴트 메신저 등을 통해 전 세계와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백수이기는커녕 인터넷에서 활발하게 투자활동도 한다.


오늘날 다윈이 살아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는 영국 런던에서 좀 떨어진 교통 불편한 시골에 살았지만, 수만통의 편지를 통해 전 세계와 의사소통을 했다. 겉보기에는 은둔자이자 남 앞에 나서지 않는 점잖은 신사였지만, 편지로는 자신을 비난하는 자에 대한 격한 울분을 토로하기도 하고 친하지도 않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기도 했다. 게다가 젊은 날에는 멀리 오래 항해할 배에 잘 알지도 못한 채 덜컥 탔으면서도, 돌아와서는 세상을 바꿀 엄청난 생각을 품고 자신의 글은 곱씹고 또 곱씹어 가면서 완벽하게 다듬겠다며 20년 넘게 발표하지 않고 미적거렸다.

이렇게 신중함과 대담함이 복잡하게 뒤얽힌 양상은 다윈이라는 인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골칫거리가 된다. 하지만 다윈의 전기를 읽는 독자에게는 그 점이 오히려 즐거움을 선사한다. 전기 작가의 시각에 따라 다윈의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으니까.

에이드리언 데스먼드와 제임스 무어의 <다윈 평전>은 다윈의 신중함을 좀 나약한 인간의 면모와 겹쳐본다. 다윈이 혁명적인 이론을 섣불리 발표하기를 꺼리는 모습을 잦은 병치레, 자식을 잃은 슬픔, 종교를 둘러싼 내면의 갈등과 엮어서 살펴본다. 왠지 병약하면서 소심한 인간의 모습이 떠오른다. 거기에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었다는 확신이 서야 일에 나서는 완벽주의자라는 인상까지 심어준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늙은 다윈의 초상화와 잘 어울리는 듯하다.

반면에 재닛 브라운의 <찰스 다윈 평전1·2>는 다윈의 신중함을 좀 다른 관점에서 본다. 브라운이 보기에 다윈은 우유부단한 인물이 아니라, 용의주도한 책략가에 가깝다. 자신이 직접 앞에 나서는 대신 라이엘, 헉슬리, 후커, 그레이 같은 친구들을 앞세워 싸우게 하고, 편지로 전 세계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알리는 홍보 전문가라고 말이다. 브라운은 <종의 기원>을 연구에 큰 도움을 준 비둘기 사육가 같은 사람들은 제외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에게만 선별해 증정하고, 마음에 안 드는 손님이 찾아오면 병을 핑계로 일찍 자리를 뜨고, 책의 인세를 미리 예상해서 받고 면밀하게 장기 투자를 하는 등 치밀하고 계획적인 다윈의 모습을 책 곳곳에서 보여준다. 다윈 전기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두 책이 이렇게 서로 다르게 다윈을 바라보다니 흥미롭다.

두 책 가운데 먼저 출간된 <다윈 평전>은 다윈 자신의 삶에서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인 비글호 항해와 <종의 기원>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따라서 자질구레한 사항이라는 곁가지로 흐르지 않고, 큰 줄기를 따라 다윈의 생애를 훑는 데 알맞다. 다윈이 누구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지, 그의 사상이 어떤 경로로 흘러갔는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다윈 사상을 둘러싼 사회적 변화와 시대의 흐름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짧지 않은 분량이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다윈 평전>도 만만찮은 두께이지만, 브라운의 책은 그보다 거의 두 배나 된다. 그만큼 많은 사료를 토대로 다윈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준다. 이 책은 위인 전기에서 으레 기대하는 사항들, 즉 사소한 일화나 가족, 친구, 동료, 이웃, 지인 등 주변 인물들과의 내밀한 관계, 사적인 삶을 들여다보기에 알맞다. 다윈의 짧은 전기를 읽을 때 문득 떠오르는 의문을 해소하는 데 이 책은 큰 도움을 준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첫날 다 팔렸다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말일까? 대체 <종의 기원>이 나온 뒤 서평이 몇 편이나 실렸을까? 헉슬리는 언제부터 ‘다윈의 불도그’라고 불렸으며, 두 사람은 언제나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까? <종의 기원>을 둘러싼 논란이 잦아든 뒤 다윈은 긴 세월을 어떻게 지냈을까? 이런 구체적인 상황이나 개인적 또는 사회적 배경을 알고 싶을 때, 브라운의 책은 대개 답을 제공한다.

<다윈 평전>이 <종의 기원> 논쟁 이후 다윈의 삶을 주로 그 책에 실린 사상을 확대하거나 보완한다는 시각에서 다룬 반면, 브라운은 그 이후의 다윈의 삶도 홀대하지 않고 상세히 그린다. 즉 평전의 두 요소인 평론과 전기로 나누어 볼 때 <다윈 평전>은 전자에 더 비중을 두고, 세세한 사항이 많이 들어간 때문에 <찰스 다윈 평전>은 후자에 더 치중한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실제로는 두 책 모두 양쪽 다 소홀히 하지 않는다.

<다윈 평전>이 먼저 나왔으므로 필자도 그 책을 먼저 읽고 <찰스 다윈 평전1·2>를 뒤에 읽었다. 사실 <다윈 평전>은 마침 다윈에 관한 글을 쓸 일이 있어서 참고하기 위해 펼쳤지만, 읽는 순간부터 저자들의 글 솜씨와 다윈에 대한 깊이 있고 해박한 지식에 매료되었다. 빼어난 번역문도 한몫을 했다. 좋은 평전에서 맛볼 수 있는 재미와 지식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책이다.

한편 브라운의 책은 다윈이라는 인물을 속속들이 알고 싶은 독자께 추천하고 싶다. 읽다 보면 다윈이라는 인물뿐 아니라 가족, 동료와 적의 모습, 사회상까지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다윈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월리스의 삶에 대한 궁금증까지도 풀어준다. 무엇보다도 <종의 기원> 이후의 다윈 생애를 이만큼 상세히 엿볼 수 있는 책은 없다. 부담스럽긴 해도 둘 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이한음/과학책 저술·번역가 (201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