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촉박해 어쩔 수 없이 발췌해서 읽고 짧은 소개글을 써야 했다. 나중에 정독하고픈 욕심이 발동하는 책이다. 짤막한 소개기사에 여러권의 다른 책들을 인용했듯 근래에 내가 본 책들 가운데 시간과 공간을 비틀어서 본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더 끌린 것 같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선 시간과 공간이라는 주제가 골치 아픈데 '철학적 접근'이라는 설명까지 더해지면 손사레를 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장이 매우 차분하고 평이하며 곳곳에 적절한 사례들이 동원되고 있어 크게 겁먹지 않아도 될 듯 하다.
발췌해서 읽으면서 눈에 띈 것은 두가지다. 여러 철학자들이 시간과 공간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는 과정은 논리학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 일테면 '시간이 뒤로 흐른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제와 명제들을 세워가면서 증명해 나가는 것이다. 이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의미심장한 사실을 알려주는데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어떤 확고부동한 물리적 사실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논리적 추론에 따른 부분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또하나 놀라운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의 위대함이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매우 유명한 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양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주석달기'라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었는데 시간과 공간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워놓은 기둥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만 '제대로' 알아도 현대 철학의 줄기를 짚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발췌해서 읽으면서 눈에 띈 것은 두가지다. 여러 철학자들이 시간과 공간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는 과정은 논리학의 그것을 따르고 있다. 일테면 '시간이 뒤로 흐른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제와 명제들을 세워가면서 증명해 나가는 것이다. 이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의미심장한 사실을 알려주는데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어떤 확고부동한 물리적 사실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논리적 추론에 따른 부분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또하나 놀라운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의 위대함이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매우 유명한 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양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주석달기'라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었는데 시간과 공간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워놓은 기둥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만 '제대로' 알아도 현대 철학의 줄기를 짚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시·공간의 수수께끼 파헤친 철학입문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지금은 ‘시간’의 한 지점이며, 여기는 ‘공간’의 한 지점이다. 누구나 ‘지금 여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은 우리에게 너무 친숙하고 시간과 공간의 법칙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시간과 공간에 관한 우리의 상식은 허점투성이이며, 온갖 궤변과 역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의 역설은 예술가들이 상상력을 펼치는 고전적인 무대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와 프랑수아 스퀴텐과 브누아 페테르스가 그린 그래픽 노블 ‘어둠의 도시들’ 시리즈는 하나의 공간과 똑같은 공간이 동시에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다가 존재가 사라지고 마는 사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무수히 양산된 시간여행 이야기들에 비해 참신한 느낌을 준다.
시간과 공간의 역설에 대한 탐구는 예술가들만의 몫은 결코 아니었다. <4차원 여행>은 고래의 철학자들이 시간과 공간의 수수께끼를 부여잡고 벌인 씨름을 추적한 철학입문서다. 시간과 공간을 정의하는 것부터 간단치 않다. 예를 들어 우리는 ‘초·분·시간(hour)’ 등 동일한 간격으로 시간(time)이 흐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간에 대한 이러한 측정단위는 실제에 상관없이 인간이 정한 기준에 불과한 것인가(시간 측정기준에 관한 규약주의), 아니면 끊임없이 흐르는 1초, 1초는 실제로 시간이 가진 속성인가(시간 측정기준에 관한 객관주의)? 이처럼 무궁무진하게 던져진 질문과 논증들을 따라가다보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얼마나 추상적이며, 우리가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시간과 공간의 토대가 얼마나 무른지를 깨닫게 된다. 문장은 좀 딱딱한 편이지만 몰입을 위한 수고를 쏟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2010.9.18)
4차원 여행 - 로빈 르 푸아드뱅 지음, 안재권 옮김/해나무 |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지금은 ‘시간’의 한 지점이며, 여기는 ‘공간’의 한 지점이다. 누구나 ‘지금 여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은 우리에게 너무 친숙하고 시간과 공간의 법칙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시간과 공간에 관한 우리의 상식은 허점투성이이며, 온갖 궤변과 역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의 역설은 예술가들이 상상력을 펼치는 고전적인 무대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와 프랑수아 스퀴텐과 브누아 페테르스가 그린 그래픽 노블 ‘어둠의 도시들’ 시리즈는 하나의 공간과 똑같은 공간이 동시에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다가 존재가 사라지고 마는 사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무수히 양산된 시간여행 이야기들에 비해 참신한 느낌을 준다.
시간과 공간의 역설에 대한 탐구는 예술가들만의 몫은 결코 아니었다. <4차원 여행>은 고래의 철학자들이 시간과 공간의 수수께끼를 부여잡고 벌인 씨름을 추적한 철학입문서다. 시간과 공간을 정의하는 것부터 간단치 않다. 예를 들어 우리는 ‘초·분·시간(hour)’ 등 동일한 간격으로 시간(time)이 흐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간에 대한 이러한 측정단위는 실제에 상관없이 인간이 정한 기준에 불과한 것인가(시간 측정기준에 관한 규약주의), 아니면 끊임없이 흐르는 1초, 1초는 실제로 시간이 가진 속성인가(시간 측정기준에 관한 객관주의)? 이처럼 무궁무진하게 던져진 질문과 논증들을 따라가다보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얼마나 추상적이며, 우리가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시간과 공간의 토대가 얼마나 무른지를 깨닫게 된다. 문장은 좀 딱딱한 편이지만 몰입을 위한 수고를 쏟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2010.9.18)
'~2010 > 구워진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문가 리뷰]다윈 평전 vs. 찰스 다윈 평전 (0) | 2010.09.26 |
---|---|
[리뷰]나는 왜 쓰는가 & 책을 읽을 자유 (0) | 2010.09.24 |
[흐름]'좌충우돌' 친환경생활 체험기 러시 (0) | 2010.09.16 |
[리뷰]스마트 스웜 (0) | 2010.09.14 |
[리뷰]연산군-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 (0) | 2010.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