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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과 사람

[인터뷰]<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 번역자 김덕영 박사

김덕영 박사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번역하고 있다는 얘기는 워낙 오래전부터 자주 들어왔는데 드디어 번역돼 출간됐다. 이런 분을 보면 그 지치지 않는 끈기와 열정, 꼿꼿함에 약간 질려버릴 정도다. 대단하다. 번역서에 붙은 200자 원고지 850장 분량의 해제와 역자후기는 사실 단행본으로 따로 내도 되는 분량이다. 나같은 초심자는 당연히 원전보다 먼저 해제와 역자후기를 먼저 읽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참고로 이분이 진학했다가 그만뒀다는 '금오공고'는 지금으로 치자면 일종의 '특목고'였던 모양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구미에 세워진 이 학교는 전국의 수재들을 모아 장학금을 주면서 가르쳤다고 해서 '박정희 학교' 또는 '대통령 학교'로 불렸다고 한다.

꼭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김 박사가 해제와 역자후기에 워낙 자세하게 소감과 분석을 해 놓았고, 시간도 여의치 않아 이메일로 질문을 몇가지 보냈다. 그랬더니 역시 장문의 답변이 왔다. 김 박사의 인터뷰 답변 전문도 참고로 갈무리 해둔다.

“돈·성장 몰두하는 한국 자본주의 정신·윤리·의무를 고뇌해야 한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번역한 김덕영 박사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10점
막스 베버 지음, 김덕영 옮김/길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가 쓴 고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서출판 길)을 최근 번역 출간한 김덕영 박사(52)는 현재 한국 학계의 풍토에서 보면 ‘괴물’이다.
미국의 기능주의적 사고에 경도된” 학계에서 그는 ‘미국 박사’가 아닌 ‘독일 박사’이고, 기능적·실용적 연구보다는 ‘통합과학적’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그리고 사회학 박사학위 외에 신학 박사학위를 새로 취득한 뒤에야 수차례 제안받았던 이 책의 번역을 맡았다.


<프로테스탄티즘의…>는 그로 하여금 사회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하고 독일 유학도 떠나게 만든 책이다. 그가 이 책의 번역본을 처음 접한 것은 가정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학한 경상북도 구미의 금오공고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른 뒤인 1976년쯤이다. “비록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린 나이에 일종의 ‘화두’를 얻었던 것 같다”고 그는 회상한다. 김 박사는 결국 연세대 사회학과에 진학, 독일 괴팅겐대학(석·박사)을 거쳐 카셀대학에서 게오르크 지멜과 베버에 대한 비교연구 논문으로 교수 자격(하빌리타치온)을 취득했다.

<프로테스탄티즘의…>를 원문으로 번역할 적임자인 것이다. 실제로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한 직후인 99년 이 책의 번역을 제안받았다. 그러나 즉시 거절했다. “통합과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도 가장 큰 범주인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면서다. 그 후로도 몇번의 제안을 받았으나 마찬가지 이유로 고사했다. 김 박사는 자신이 매달리고 있는 화두인 ‘지성사적 모더니티 담론’을 파헤치려면 신학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가 필요함을 깨달았고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프로테스탄티즘의…> 번역 제안을 받아들였다.

<프로테스탄티즘의…>는 어떤 책이기에 그토록 그를 설레게 했고, ‘고전 중의 고전’이란 대우를 받는 걸까. 김 박사는 번역본에 단행본 1권에 맞먹는 방대한 분량(200자 원고지 850장)의 해제를 붙였다. 제목은 ‘종교·경제·인간·근대’다. 그는 “이 책은 종교, 경제, 인간, 근대를 키워드로 삼아 근대에 대한 통합과학적 담론을 추구한 연구서”라면서 “근대 서구 시민계층의 합리적이고 금욕적인 직업윤리를 역사적으로 규정한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바로 종교(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경제(자본주의)라는 것을 밝힌 책”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해제와 별도로 옮긴이의 말도 첨부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이 책의 가치를 논한다. “실천적 측면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한국의 개신교, 자본주의, 과학(학문)에 대한 자아성찰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개신교는 “자본주의라는 경쟁사회에서 지친 영혼을 위한 피안(彼岸)이 되기보다는 시장의 첨병이자 전위대 노릇”을 하고 있고, 한국의 자본주의는 “정신, 윤리, 의무는 도외시한 채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돈만 벌고 양적으로 성장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국의 학문, 구체적으로 대학 사회는 “인간, 사회, 문화, 역사, 생태 등에 대한 심층적 고뇌는 도외시한 채 천민자본주의의 인력시장 공급처로 전락”해 버렸다는 주장이다. 베버에게 한국 개신교는 ‘소명의식이라는 종교적 윤리’를, 자본주의는 ‘금욕주의’를, 학문은 ‘근대성과 합리성, 인간의 주체성 등 통합과학적 화두를 던지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김 박사의 설명이다.

김 박사의 하빌리타치온 지도교수는 제자가 <프로테스탄티즘의…> 번역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네가 헤라클레스의 과업을 떠맡게 됐구나”라고 말했다. ‘헤라클레스의 과업’은 그리스신화 속 영웅 헤라클레스가 여신 헤라의 명을 받아 위험하고 까다로운 숙제 12가지를 완수한 것을 말한다. 게다가 김 박사는 베버의 논문 <프로테스탄티즘 분파들과 자본주의 정신>을 처음 번역해 집어넣었다. “이 논문을 함께 읽어야 베버의 지적 세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 박사는 “번역은 저술에 비해 훨씬 고통스러운데 이 책은 특히 심했다”며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베버가 주(註)에서 약자를 사용했는데 도무지 알 수 없을 때”라고 말했다. 인용문헌, 인물, 지명 등을 원어로 표기하고 넘어가고픈 유혹도 적지 않다.

책에 나온 네덜란드 신학자의 정보를 알아보러 대사관을 직접 찾아갔다가 소득 없이 돌아온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번역이란 고전 중의 고전을 전문가 중의 전문가가 완벽한 한글화를 이루는 지적 작업’이라는 평소의 소신으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2년간의 번역, 1년간 편집을 거쳐 책이 나왔지만 그는 쉴 틈이 없다. 올해 말까지 지멜의 주저 <돈의 철학> 번역문과 750쪽 분량의 베버 연구서를 탈고할 계획이다. 김 박사는 특히 ‘지성사적 모더니티 담론’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루터, 칸트, 마르크스, 니체 등의 사상가를 각각 다룬 책을 시리즈로 낼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고찰하는 연구도 준비하고 있다. (201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