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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과 사람

'평화그림책' 시리즈 두번째 낸 이억배

이억배 작가는 이름에서 '포스'(?)가 느껴지는 분이라 이름이 매우 귀에 익은 분이다. 소탈해 보이지만 고집이 있어 보였다. 중학교 때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는데 역시 어릴 적부터 소질이 있었음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얘들아,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평화그림책' 시리즈 두번째 낸 이억배씨
-2년여 민통선 안쪽 답사, 분단 현실 사실적 묘사… 아이들에게 '평화 메시지'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 10점
이억배 글.그림/사계절출판사

그림책 <비무장 지대에 봄이 오면>(사계절)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꼭 60년째 되는 날 발행됐다. 이 책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다룬 그림책 <꽃할머니>에 이어 한국과 중국, 일본의 그림책 작가들이 함께 기획해 3국에서 펴내고 있는 ‘평화그림책’ 시리즈의 두번째에 해당한다.
2년여 동안 민통선 안쪽을 수십차례 답사하고 비무장지대 생태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아가며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린 이억배씨(50)는 가방에서 낡은 스케치북 한 권을 꺼냈다. “중학생이던 1973년 것인데 집에 있는 자료를 정리하다 발견했어요. 여기 보면 반공포스터가 있어요. 반공포스터를 잘 그렸다고 칭찬받던 소년이 분단을 다룬 평화그림책을 그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입장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이씨처럼 반공교육을 받고 자라온 어른들에게 분단은 현실이자 명쾌한 문제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분단을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유치원생·초등학교 저학년 자녀 혹은 조카로부터 “북한 사람들은 동족이라면서 왜 떨어져 살아요?”라거나 “군대는 왜 가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이해가 갈 것이다.
이씨는 한·중·일 그림책 작가들이 모여 평화그림책을 만들자고 논의하던 초기부터 자신은 비무장지대를 다뤄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어떻게 구체화시킬 것인가에 들어가선 부담감이 컸다고 했다.
“제 그림이 워낙 현실적 화풍이다보니 자칫 양쪽의 극단적 논리에 휩쓸릴 수 있겠다 싶어 무척 경계했습니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평화란 무엇이고, 분단 현실은 어떠한 것인지 어린이들이 차분하게 바라보고 성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책은 북쪽이 고향인 할아버지가 봄날 전망대를 찾아와 북녘 하늘을 망연히 쳐다보지만 이듬해 봄엔 손자와 함께 굳게 닫힌 철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고향의 하늘을 바라보는 꿈을 꾼다는 줄거리다. 그 사이엔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군인들, 인간이 그은 경계에 아랑곳하지 않고 비무장지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다양한 동물과 식물들이 계절의 변화에 맞춰 등장한다. 버려진 채 녹슬어가고 있는 기차와 총탄에 맞아 구멍이 난 철모, 곳곳에 설치된 지뢰 표지판,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철조망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이씨는 말한다. “분단에 대해 지긋지긋할 정도로 들었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비무장지대를 실제로 가보면서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대학 시절 대형 걸개그림을 그리는 등 민중미술 활동을 했던 그였지만 북쪽에 가까이 갈수록 자신에게 각인됐던 분단과 냉전의 DNA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전율을 느꼈다는 것이다.
“밑그림 상태에서 이 책을 초등학생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있었어요. 보여주고 나서 통일에 대해 물었는데 당연히 모두가 찬성할 줄 알았는데 한 아이가 ‘북한은 거지인데 통일되면 거지들을 어떻게 먹여살릴 거냐’라면서 반대한다고 하더군요. 머리가 띵했습니다. 이 아이의 반응을 보면서 오히려 이 그림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이 한국전쟁 발발 60년이 되는 날에 나왔는데 종전일이 됐을 때 이 책의 수명이 다하겠지요.” (2010.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