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담당하는 후배가 3달 가까이 연수를 갔는데, 그 사이 문학을 담당하던 선배가 또 출장을 가는 바람에 엉겁결에 작가 인터뷰. 비문학 작가들의 인터뷰야 많이 했는데 소설가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처음이라 그런지 어색해서 힘들었다. 기록 차원에서 갈무리 해둔다.
88만원 세대, 신 프롤레타리아트, 프리케리아트(precariat)…. 기성 세대가 이 시대 청춘들을 뭉뚱그려 부르는 용어들이다. 각각의 용어가 생겨난 배경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빈곤과 불안, 단절과 희망없음 등을 이 시대 청춘들이 처한 상황으로 묘사한다. 김혜나(28)는 자신이 거쳐왔고 동세대 청춘들이 빠져 있는 방황과 혼란, 절망의 수렁을 직시해 대담하게 털어놓은 장편소설 <제리>로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 문학’이 주관하는 제34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김혜나는 <제리>가 루저들을 다루지만 불안과 희망없음이 반드시 루저들만의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릴 적 친구들 가운데 공부를 잘해 명문대에 가고 좋은 데 취직한 애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들도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불안해 하는 것은 마찬가지더군요. 제도권 안과 밖에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꿈꾸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겪었던 ‘젊은 루저들’의 절망 그렸죠”
제리 - 김혜나 지음/민음사 |
88만원 세대, 신 프롤레타리아트, 프리케리아트(precariat)…. 기성 세대가 이 시대 청춘들을 뭉뚱그려 부르는 용어들이다. 각각의 용어가 생겨난 배경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빈곤과 불안, 단절과 희망없음 등을 이 시대 청춘들이 처한 상황으로 묘사한다. 김혜나(28)는 자신이 거쳐왔고 동세대 청춘들이 빠져 있는 방황과 혼란, 절망의 수렁을 직시해 대담하게 털어놓은 장편소설 <제리>로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 문학’이 주관하는 제34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제리>는 불편함을 안겨주는 소설이다. 포르노 영화가 그러하듯 적나라하지만 건조하기만 한 성애묘사는 공허감을 남기고, 음지를 전전하며 하릴없이 젊음을 허비하는 등장인물들은 읽는 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김혜나는 말한다. “제 어머니도 <제리>를 읽고나서 답답했다고 하시더군요. 젊은이들이 얼마든지 노력하고 부딪치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하고 그렇게 방황만 하는지 답답하다고요. 무시하고 외면하던 사람들을 에두르거나 다른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정면에서 다루다보니 부담스럽고 불편하게들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제리> 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시작부터 뒤처졌다고 여기는 ‘루저’들이다. 수도권의 별 볼일 없는 2년제 야간대학조차 겨우 다니고 있는 주인공과 노래바나 호스트바에서 ‘선수’로 뛰는 제리, 전 남자친구 ‘강’, 그리고 어떠한 꿈이라는 게 있을 리 만무한 선후배와 친구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리직톤이 신의 저주를 받아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배고픔을 느끼듯 이들은 만나면 죽도록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격렬하게 섹스를 하지만 그럴수록 절망과 허무는 채워지지 않고 자기환멸만 커질 뿐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말한다. “내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나는 늘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문제아였고 인간쓰레기였다.” 내 안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데 누군가를 내 곁에 머물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 틈에서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나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나는 어디에도 없었고,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내 곁에 머물지 못했다.”
김혜나는 자신이 소위 말하는 ‘날라리’였다고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닐 때 항상 꼴찌였어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수업시간을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었죠.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서는 친구들하고 놀러다니고 가출하고….”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제리>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처럼 아르바이트하고 밤새 술마시고 노래방 가고, 클럽을 전전했죠. 젊음을 하릴없이 소비한 건데 별다른 선택이 없었어요.”
김혜나는 <제리>가 루저들을 다루지만 불안과 희망없음이 반드시 루저들만의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릴 적 친구들 가운데 공부를 잘해 명문대에 가고 좋은 데 취직한 애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들도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불안해 하는 것은 마찬가지더군요. 제도권 안과 밖에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꿈꾸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길고 긴 방황에서 김혜나를 빠져 나오게 했던 것은 문학이다. “스무살이 끝날 무렵 허무감이 밀려왔어요. 나는 왜 여기 있나. 왜 나는 진짜 나로 존재하지 못하고 빈껍데기처럼 살고 있나 하는 고민이 시작된 거죠.” 학창 시절 남은 유일한 기억이 국어 시간에 읽었던 문학작품이었기에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청주대 국문과 진학으로 이어졌다. 국내문학과 세계문학을 미친 듯이 읽어가며 글쓰기에 대한 욕구를 키워가던 그는 5년 동안 소설가 윤후명이 운영하는 문학교실에 나가 본격적인 창작수업을 받았다.
문예지 등에 응모해 서너번 최종심에 올랐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던 그는 드디어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했다. 김혜나는 “사람들이 제 소설을 보고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끌어안아라’라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확실히 김혜나는 문학을 통해 자기긍정이라는 구원을 받은 듯했다. 그렇다면 여전히 밤거리를 배회하며 방황하고 절망하는 이 시대의 다른 청춘들은 무엇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20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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