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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동네산책

[책동네 산책]전자책, 충격있지만 괜찮아

휴가 가기 전에 썼던 글이다. 요즘 출판업계에서는 화두가 첫째도 전자책, 둘째도 전자책, 셋째도 전자책인듯 하다. 아이패드가 킨들에 도전장을 내밀고 벌이는 각축전을 다룬 해외 언론 기사이 링크가 트위터에 시시각각으로 올라오고, 출판과 관련된 제반 관행과 제도들이 전자책 베이스로 갈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예측들이 무성하다. 출판계의 규모가 그리 크기 않고 출판사들의 규모는 영세한 상황에서 출판 패러다임의 변화는 개별 출판사와 출판인에게 거대한 쓰나미로 여겨질 법하다. 아무리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하고, 귤이 탱자로 변하는 변화가 온다 하더라도 출판계가 좋은 책, 양서, 그리고 독자가 원하는 책에 대한 신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뜻을 담고자 했다. 그런데 제목이 좀 이상하게 달려버렸다. 솔직히 더위에 지쳐 편집자에게 말을 하지 않고 지나쳤는데 지금 봐도 영 어색하다. 글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전후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최초의 베스트셀러는 작은 영어 회화 책자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일왕의 방송이 있던 바로 그날 기획이 이루어졌다. 오가와 기쿠마쓰라는 편집자가 낸 아이디어의 산물인 이 회화책이 일으킨 작지만 경이적인 성공 신화는 즉시 출판계의 전설로 자리를 잡으면서, 1981년까지 일본 최고의 판매 부수를 기록했다.’

미국의 일본사학자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뒤 일본의 대응과 일본인의 의식세계를 정밀하게 추적한 명저다. 이 책은 가까운 나라에 사는 우리도 잘 알지 못했던 에피소드들로 가득한데 일본인들이 워낙 책을 좋아하는 민족인지라 출판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도 자주 등장한다. 앞에 거론된 것은 <미일회화수첩>이라는 제목의 32쪽짜리 책인데 패전 선언 한달 뒤 처음 출간돼 1945년 말까지 35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요즘 출판계의 화두는 온통 전자책에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판인들을 만나면 대화의 절반 이상이 전자책 이야기로 채워진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해외 언론들이 아마존과 구글, 애플 등이 전자책 시장을 두고 벌이는 각축전을 시시각각으로 중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전 세계가 전자책을 둘러싼 이슈에 깊이 빠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일어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원히 아날로그적인 매체로 남을 것만 같았던 책의 디지털화는 꾸준히 진행돼 왔고 특히 21세기 들어 집필·편집·유통·독서 등 책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변화가 가속화됐다. 최근 출간된 <전자책의 충격>의 한국어판 번역자는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책의 내용을 검색할 수 있게 되는 등 자신의 경험을 나열하면서 “지난 10년 사이에 (1440년경 금속활판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 이후 500여년간 일어난 변화보다 더 많은 것을 겪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패러다임 시프트, 티핑 포인트, 양질전환 등 인간사회나 물질세계에서 발견되는 구조 변화를 기술하는 이론들은 대체로 현상의 변화가 누적되면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오가와 기쿠마쓰라는 일본의 편집자가 일왕의 패전 선언을 라디오로 듣던 순간 그를 둘러싼 세상의 구조가 한순간에 변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는 한순간에 바뀌어버린 패러다임에 큰 충격을 받았겠지만 변화를 기회로 활용할 줄 알았다. 그가 발휘한 능력은 따지고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과 싸우다 패전했으니 미군이 점령할 것이다. 미군의 점령이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은 영어 회화를 갈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영어 회화책을 만들면 되지 않는가’라는 지극히 단순한 추론을 해낸 것에 불과하다.

전자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일본의 패전 선언보다는 훨씬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런 변화를 앞에 두고 누구는 불안함을 느끼고, 다른 누구는 새로운 기회를 꿈꾼다. 그런데 독자의 입장에선 읽고 싶은 책이 많이 나오고 이런 책들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환영할 만한 상황이다. 책을 종이로 읽든 화면으로 읽든, 책을 가지고 엎어치든 메치든 책이라는 매체가 등장한 이래 이것만은 변치 않은 모습 아니었던가. 너무도 단순한 이 원리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두려워할 것은 없다. (2010. 7.31)

p.s. 요즘 전자책에 관한 책들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자책의 충격>(사사키 도시나오/커뮤니케이션북스)이 아닐까 한다. 일본의 저널리스트가 쓴 것을 번역했는데 일본과 한국은 출판 환경이 많이 다르지만 비슷한 점도 많다. 저널리스트가 쓴 것이 쉽게 읽히는데 안에 담긴 내용은 만만치 않다. 지은이는 전자책으로의 전환을 불가역한 현상이자 긍정적인 면이 있는 현상으로 보는데 음원시장과 많은 유비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음반이나 책이나 둘 다 문화상품인데 책보다 먼저 전자적 거래 형태로 전환됐으므로 책의 유통 입장에서도 참고할 사항이 많을 것이다. 지은이는 음반의 경우 전자적 거래가 일반화되면서 옛날 잊혀진 음반도 빛을 볼 기회를 갖는 등 '평평해졌다'면서 책에게도 그런 평평한 상태가 오는 것이 독자에게 좋은 일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런데 나는 수십년이 지나도 새롭게 들릴 수 있는 음반이라는 것과 시대적 배경(작게는 표기법에서부터 시작해서)을 더 날 것으로 반영할 수 밖에 없는 책은 다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그것이 그렇게 된다는 것이 꼭 좋으냐 하는 것이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위키피디아, 지식검색 등등이 등장하면서 '권위'라는 용어가 사라져버릴 상황인데, '귄위주의'라는 것과 '귄위'라는 것은 다르다고 보는 나로선 출판사가 부여하는 권위, 특정 작가가 부여하는 권위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보는 편이다. 각설하고. 전자책에 관해 최근 나온 국내저자의 책은 <e-북 르네상스 전자책 빅뱅>(이용준 외/이담)이라는 책이 있는데 앞선 책과 달리 국내의 상황이 나와 있긴 하지만 글꼴을 비롯해 편집이 워낙 읽기 힘들게 돼 있다. 그러고보니 책값도 꽤 비싸군. ㅠㅠ

전자책의 충격 - 10점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한석주 옮김/커뮤니케이션북스

전자책 빅뱅 - 10점
이용준 지음/이담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