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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책과 사람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 빠른 사람? 강준만 교수

옛날부터 강준만 교수를 한번 인터뷰 하고 싶었다. 강 교수의 활동과 생각이야 칼럼과 단행본이 주기적으로 나오므로 그걸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그를 인터뷰 하고 싶었던 것은 그가 써내는 글의 '내용' 보다는 '속도'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정말 많은 글들을 써낸다. 물론 많은 글들을 읽고 있는 것에 틀림 없다. 나는 그게 궁금했다. 사실, <미국사 산책> 출간을 계기로 하는 인터뷰라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안할 수 없어서 그렇지 속으론 그토록 빠르게, 많이 써내는 그의 작업 방식과 스타일로 인터뷰 전체를 꾸미고 싶었다.

강 교수에게 인터뷰 질문을 담은 이메일을 보낸 것인 금요일 저녁이었는데 강 교수는 A4용지 10장 가까운 답변을 토요일 낮에 보내왔다. 역시 그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준만 교수 “지구상 미국과 가장 닮은 나라는 한국”
-‘미국사 산책’ 계획된 15권 중 5권 펴내
‘이 사람은 읽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사람이 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54)다. 언론학자인 강 교수는 1980년대 후반 언론학 관련 책으로부터 시작, 90년대엔 한국 정치와 정치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모순에 직격탄을 날리는 저서들을 연이어 펴냈다. 그는 월간지 ‘인물과 사상’을 창간, 그 유명한 ‘실명비판’으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정기적인 칼럼 기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다. 강 교수는 2000년대 들어 <한국 현대사 산책>(전 18권), <한국 근대사 산책>(전 10권) 등 한국 역사 산책 시리즈를 내놓더니 급기야 미국사까지 손길을 뻗쳤다. 최근 그는 15권으로 계획된 <미국사 산책>(인물과사상사) 가운데 5권을 펴냈다. 그런가 하면 몇 년 전부터 한국인의 생활사를 탐구한 책을 2~3개월에 한 권꼴로 써낸다. 외부와의 공적인 소통은 e메일로만 하는 강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강 교수는 “1박2일 술 마시면서나 할 수 있는 깊은 이야기까지 다 털어 놓았다”며 장문의 답변을 보내왔다.
-막대한 분량의 저술을 쏟아내고 계십니다.
“언젠가 글쓰기 중독을 무슨 병으로 진단한 책이 나왔던 것 같은데, 제가 바로 그 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교수로서 해야 할 일을 빼놓곤 나머지 모든 시간은 책읽기와 글쓰기만 합니다. 늘 가족에게 미안하지요. 하지만 골프 좋아하고 사교에 많은 시간을 바치는 교수들에겐 떳떳하게 생각합니다.”
-그간 몇 권이나 쓰신 건가요.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정말 모릅니다.”(인터넷 서점에서 강 교수의 이름을 검색하면 절판된 것까지 포함해 단행본만 200권 가깝게 나온다.)
-미국사 책을 집필하신 배경은 무엇인가요.
“늘 이상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왜 미국사를 한 권의 책으로만 다이제스트해서 봐야 하느냐는 것이었지요. 한국은 모든 국가들 중 모든 면에서 미국 의존도가 높은 나라일 텐데, 미국사를 여러 권으로 촘촘하게 다룬 책도 나오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요? 그러나 당연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 제가 나섰죠. 그런 일엔 미국 유학 시 대중매체사를 전공한 제가 여러모로 유리한 입장이거든요. 대중매체사는 전체 역사를 배경으로 깔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니까요.”


-미국사 산책의 집필 기준은 무엇입니까.
“많은 연구자들이 그러하듯 ‘제국의 흥망성쇠’라고 하는 관점에서 미국사를 보고자 했습니다. 독자들이 미국사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읽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세계사를 끊임없이 거론했고, 한국적 관점도 살리자는 뜻으로 한·미관계사도 동시에 다뤘죠. 제가 늘 강조하는 게 총체적 시각인데 우리는 분업과 전문성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걸 분리해서 따로 보는 데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런 분리주의에 정면 도전하고자 했습니다.”
-미국 역사의 원동력을 요약하신다면.
“미 제국을 만든 3가지 원동력은 ‘국토의 축복’ ‘선민의식’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토 활용도 기준으로 보면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토를 갖고 있죠. 또 미국 건국의 기초는 선민의식이고, 공격적인 해외팽창도 탐욕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이지요. 아메리칸 드림은 신화이며 사기라고 하지만,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주로 성공의 열망에 들뜬 사람들이 몰려든 곳입니다. 실용적일 수밖에 없지요.”
-한국인의 미국 인식은 어떠하다고 보십니까.
“지구상에서 미국과 가장 닮은 나라는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일 중독입니다. 또 출세지향성입니다. 셋째는 평등주의와 물질주의의 결합이죠. 한국의 미국 의존도가 높고, 원정출산을 불사할 정도로 미국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것이 단지 미국이 가장 강한 나라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두 나라 사이에 뭔가 비슷한 친화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한국이 워낙 친미 국가라 미국을 닮아가게 된 게 아니겠느냐는 주장도 가능하겠지만, 그것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 미국에 대해 친미·반미의 이분법 경향이 강합니다. 특히 진보 쪽은 하워드 진, 노암 촘스키 패러다임이 지배적인 것 같은데, 이건 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 분들은 늘 ‘미국 찬가’가 울려퍼지는 미국 안에서 어두운 면만을 집중 고발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작업이 보석같이 소중합니다만, 미국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 독자가 진과 촘스키 책을 읽고 미국을 이해하면 심각한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든 추악한 면만을 골라 묘사하면 괜찮은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요? 미국의 문제는 모든 강대국들이 저지르는 ‘강대국의 문제’이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 관련 책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지만, 의외로 그 중간이 부족합니다. 미국의 명암을 동시에 보면서 축복이 저주가 되고 저주가 축복이 되는 양면성을 동시에 고찰하는 책은 드물다는 겁니다. 제 책은 두 가지 면을 다 보자는 뜻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내시는 책마다 참고문헌이 방대한데요, 항간엔 ‘조교만 죽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그건 서울식 농담입니다. 서울 대학들에선 조교를 혹사시켜도 되는지 모르지만 여기에선 그런 거 안 통합니다.”
-방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인가요?
“오랫동안 신문·잡지 등 수많은 정기간행물을 주제별로 분리해 파일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지요. 개인적으로 월급 주는 조교까지 두고, 자료가 많아 별도의 사무실을 전세 내기도 했죠. 정말 한국 최고의 아카이브를 만들겠다고 발버둥 쳐 왔습니다. 책 인세도 다 여기에 바쳤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이 아날로그형 아카이브 구축을 자꾸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느끼게끔 만들었습니다. 사무실 공간의 한계에 의욕 감퇴까지 겹쳐져 몇 년 전에 피땀 흘려 모은 자료 대부분을 폐지수집상에게 그냥 넘기고 말았습니다. 정말 통곡하고 싶더군요. 그런데 이제 와서 땅을 칠 정도로 후회가 드는 겁니다. 인터넷으로 커버가 안 되는 자료들이 너무 많아 ‘앗, 속았다!’를 외치게 된 거지요.”
-다방면에 걸친 엄청난 다작인데요, 함량이 떨어진다는 오해가 있지 않나요.
“오해가 아니라 정당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오해가 있다면, 글쓰기와 책의 성격에 대한 구분을 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제가 쓰는 책들의 대부분은 다작을 해도 무방한, 아니 다작을 해야만 할 그런 성격의 책입니다. 전 기초공사를 한다는 생각입니다.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분야의 글쓰기를 제가 먼저 선을 보임으로써 자극을 주고 싶다는 거지요. 질이 너무 높으면 곤란하지요. 적당해야 다른 분들이 저의 기초작업을 보고 힘을 내 저를 밟고 다른 큰일들을 해낼 것 아니겠습니까?”
-향후 어떤 책들을 내실 계획이신가요.
“차분하게 생활사를 하나씩 해나갈 생각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빨리빨리’입니다. 전 이 코드 하나로 한국사회의 많은 것, 아니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 교수는 향후 집필을 고려하는 생활사 주제 키워드들을 e메일에 첨부했다. 달동네·명품·택배·스승·보신탕 등 무려 A4용지 1장이 넘었다.) <2010.4.14>


미국사 산책 1 - 10점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미국사 산책 2 - 10점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미국사 산책 3 - 10점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미국사 산책 4 - 10점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미국사 산책 5 - 10점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